시선을 끄는 건 쌓은 검은 비닐봉지들, 그것은 고독사를 한 청년들의 유품이자 무덤이자 미처 발화되지 못한 채 썩은 알이다. 무대 전체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 혹은 검은 재는 1차 세계대전에서 두 발을 잃고 돌아온 상이용사, 전쟁의 참상을 몸으로 받아낸 채 돌아온 ''형''의 두 발이 녹은 삭은 흔적이다. 동시에 살아난 자의 슬픔이 눈물로 얼룩진 바닥이다. 공중에 매달린 검은 봉지를 뚫어 흐르는 물에 세례를 받듯 온몸으로 받아내는 장면은 죽은 자의 슬픔을 온전히 받아드리려는 의지로 볼 수 있다.

오브제, 라는 관점에서 소외된 인물을 교차로 편집해 풀어낸 윤성원의 연기는 80분 내내 1인극을 끌고 가야 하는 부담 외에 일정 부분 현대 무용에 가까운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표현력이 우려를 없애고 기대 이상이라는 점에 동의하리라 보지만, 극 말미 상체를 드러내는 장면에서 무용수라도 좋을 근육질의 몸매는 죽음에 가까운 인물 혹은 사회적 압박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인물을 표현하기에 적당해 보이지는 않는다. 이는 상징주의에 가까운 무대,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로테스크한 작품을 보는듯 뒤틀린 무대에 비춰 그러하다. 그러나 해석하기에 따라 그의 강인한 몸은 1904년 2024년 사이 스러져간 젊은 영혼들을 위한 애도의 시 그가 울면서 중얼거리는 ''슬픈 자''의 것이기도 하다.*

붉은 웃음이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궁금했어요. 포스터 속 남자의 표정의 의미도 궁금하고 저게 붉은 웃음이라는 말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굉장히 궁금했어요. 내용을 보니 1인극인 것 같은데 1인극의 경우 배우 혼자서 무대를 꽉 채워야 하다 보니 연기력뿐만 아니라 아우라까지 같이 있어야 되는 부분이라 나오는 배우의 연기력은 확실하겠다 싶은 생각도 같이 들었답니다. 무대는 바닥에 깔린 흙 위로 왼쪽은 쓰레기 더미, 오른쪽은 책상과 의자와 함께 어지럽게 뿌려진 종이들로 구성되어 있어요. 처음 무대를 보았을 때는 이게 어떤 의미인가 했는데 왼쪽은 2024년, 오른쪽은 1904년을 배경으로 한 공간이었어요. 시대 구성상 약 120년이 차이가 나는데 왜 생각보다 잘 어우러져 보여서 신기했어요. 이런 게 좋은 무대 연출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극 러닝 타임이 약 75분 정도로 대단히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1인극이다 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길게 느껴졌어요. 또한 배우의 에너지와 눈빛이 포스터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좋아 보였어요. 이런 것들이 합쳐서 배우 혼자 무대를 꽉 채운 느낌이 들어 좋았던 것 같아요. 배우의 연기가 좋았어서 앞으로도 이 배우의 다음 공연을 눈여겨서 보게 될 것 같아요. 관극 후 붉은 웃음에 대하여 생각해 보니 명확하게 의미를 내릴 수는 없지만 현실과 과거를 심오하게 표현한 것을 본 것으로 마무리를 하려고 해요. 제 생각보다 너무 어려운 연극이어서요. (ㅎㅎ) 이번 연극도 잘 보았습니다.

연극 "붉은 웃음". 원작 레오니트 안드레예프. 주연 윤성원. 전쟁이 할퀴고 간 자리에 인간의 영혼 대신 남은 공허한 붉은 눈. 선명한 주제 의식을 담은 포스터가 인사하며 극장 안으로 들어가도록 안내하였다. 그는 전쟁에서 돌아와 허름한 빈 방에 낡아빠진 책상과 의자를 가져다 놓고 미친듯이 글을 쓰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의 동생은 형을 이해하지 못한다. 종이 위에서 펜이 흰개미마냥 사각거리며 움직이지만, 정작 쓰여진 것은 아무것도 없고 뜻모를 선 만이 삐뚤삐뚤하게 가득할 뿐. 그는 말과 몸짓으로도 그가 전쟁터에서 겪은 살과 총알의 일방적인 싸움을 이야기한다.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격분하듯이. 넓은 평원 위에 쓰러진 병사들이 하나의 살아있는 동물의 살덩이처럼 꿈틀거리듯 누워있는 모습을, 전쟁의 포연으로 얼룩진 두 손이 더 이상 말을 듣지 못할 정도로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총알과 대포에 서로의 살이 으깨지는 광경에서 보았던 땅 속에서 나와 세상으로 진군하는 "붉은 웃음"을! 이야기의 끝에서 작가 레오니트는 예언했을지도 모른다. 100년 후에 자신의 조국에서 일어난 아무 명분도 없는 전쟁이 다시 한번 "붉은 웃음"을 불러내리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