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고, 없어지고’. 올해 8월 여름 페스티벌은 나름의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해까지 ‘최다’를 자랑하며 봇물처럼 쏟아진 페스티벌이 올해는 세월호 영향과 재정 악화 우려로 하나둘 자취를 감춘 것이다.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는 이름 난 페스티벌도 날짜를 줄이거나 전격 취소하는 형국이다.

매년 페스티벌의 강력한 우승후보로 점쳐지던 ‘안산밸리 록페스티벌’은 세월호 참사로 인한 국가적 슬픔에 동참하기위해 전면 취소 결정을 내렸고, 입지 조건이 뛰어난 ‘지산밸리 록페스티벌’은 특별한 이유없이 행사를 중단했다.

가장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인천펜타포트 록 페스티벌’과 신생이지만 막강한 자금력으로 탄탄한 구성과 라인업을 내세운 ‘현대카드 시티브레이크’, 역시 신생이지만 틈새 라인업을 좇아 개성을 부각시키는 ‘슈퍼소닉 페스티벌’만이 대표 여름 축제로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날짜는 이틀에서 하루가 줄었다. 여기에 끼 넘치는 세계적 여성 뮤지션과 아이돌 그룹을 한데 모아 올해 첫선을 보이는 ‘나우 페스티벌’이 가세해 올해 페스티벌의 ‘4강 구도’가 마련됐다.

어쨌거나 여름 페스티벌은 그 열기만큼 뜨겁게 달아오를게 분명하다. 위축된 음악 시장의 흐름과 별개로, 관객은 여전히 뛰고 마시고 흔들면 된다. 페스티벌이 요구하는 것은 그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 페스티벌 시장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
올해 페스티벌이 잇따라 취소된 데는 세월호 참사의 영향이 크지만, 속내는 다르다. 지난해 봇물처럼 쏟아진 페스티벌 시장의 수익성은 대부분 마이너스였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전언이다. 적게는 수억원에서 많게는 수십억원까지 적자가 나자, 제대로 된 스타급 라인업을 챙기지 못한 페스티벌은 올해 개최할 엄두를 못낸다는 것이다.
지산 록페스티벌의 경우 앞으로 계속 개최될 수 있을지 여부가 불투명한 상태. 한 공연기획자는 “페스티벌의 그간 브랜드 인지도와 역사만으로 관객의 지갑을 여는 시대는 끝났다”며 “성공의 열쇠는 어떤 강력한 라인업을 세우느냐에 달렸다”고 강조했다.
특히 앞으로 페스티벌은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더 심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섭외력을 갖추고도 개런티 경쟁에서 밀릴 경우 젊은이들이 많이 몰리는 페스티벌의 특성상 가장 보고 싶은 페스티벌 한 곳으로 쏠리는, 이른바 ‘편마모 현상’이 가중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전망이다.

◆ 올해 페스티벌의 개성과 전략은
미쓰에이의 수지가 가장 보고 싶은 공연 1위로 꼽은 무대다. 대중적인 선율에 기대면서 독특한 사운드로 달콤한 위로를 안기는 스탠딩에그의 무대는 과하지 않는 편안함으로 보는 이를 들썩거리게 한다. 어쿠스틱 사운드와 브릿팝 사운드를 동시에 펼쳐보이는 이 팀은 맑고 투명한 멜로디에 추억을 부르는 감성적인 창법으로 늘 신선함을 유지하고 있다. 결코 앉아서만 청취할 수 없는 알싸한 매력을 놓치지 마시길.

‘정통 록’ 인천펜타포트 록페스티벌(1~3일 송도 달빛축제공원)
가장 먼저 페스티벌의 시작을 알리는 ‘인천 펜타포트’는 ‘정통 록’의 면모를 올해도 이어간다. 슬로건도 ‘그린! 프리덤! 홀리데이!’로 정해 록의 싱싱함과 젊음을 대변하고 있다. 1일 첫째날엔 독특한 분장과 거친 무대로 록마니아들을 사로잡는 쇼크록의 리지보든(Lizzy Borden), 메탈 기운이 철철 흐르는 수어사이덜 텐던시즈(Suicidal Tendencies), 일본 메탈신에서 가장 유명한 크로스페이스(Crossfaith)가 출연해 숨막히는 메탈의 미학을 선보인다. 이날 헤드라이너인 이승환도 이 열기에 가세해 관객의 점핑 속도를 줄지 않게 할 작정. 2일 무대는 일렉트로닉과 개러지, 사이키델릭, 브릿팝 등 다양한 록 장르가 선보인다. 이디오테입, 장미여관, 크래쉬 등을 거쳐 헤드라이너인 카사비안(KASABIAN)까지 놓칠 수 없는 무대들이 즐비하다.
3일엔 후렴 떼창이 가능한 팀들이 나와 노래 향연을 벌인다. 스타세일러(Starsailor)와 트래비스(Travis)를 앞세워 어반자카파, 로맨틱펀치, 불독맨션 등이 밀어주는 무대는 뮤지션과 관객이 한몸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을 듯하다. 3일간 모두 100팀이 출연한다.

‘트렌드의 보고’ 현대카드 시티브레이크(9~10일 서울월드컵경기장)
‘현대카드 시티브레이크’는 ‘트렌드의 보고’다. 현재 세계 팝과 록 시장을 이끌고 있는 마룬파이브(Maroon 5)와 ‘국제 가수’ 싸이를 끌어들여 가장 트렌디한 음악의 장으로 만들 계획. 여기에 헤비메탈의 상징인 오지오스본(Ozzy Osbourne)가 또다른 헤드라이너로 이름을 올렸고, ‘팝록’의 대부 본 조비 출신의 기타리스트 리치 샘보라(Richie Sambora)가 록 향연을 이끌어간다.
뉴메탈의 거장 데프톤즈(Deftones), 얼터너티브 록밴드 후바스탱크(Hoobastank), 영국의 사이키델릭 록밴드 스피리튜얼라이즈드(Spiritualized), 아카펠라 그룹 펜타토닉스(Pentatonix) 등 개성 강한 뮤지션의 무대도 준비돼 있다.
이름은 낯설지만, 호기심을 극대화하는 해외 라인업에는 팝펑크를 대표하는 밴드뉴파운드글로리(New Found Glory)와 호주 출신 여성 싱어송라이터 캣 프랭키(Kat Frankie)가 포함됐다.
국내 뮤지션 라인업도 탄탄하다. 이적, 넬, 옐로우몬스터즈 등 실력파 뮤지션들이 이 페스티벌에 동참한다.

‘깜짝 쇼’ 슈퍼소닉 페스티벌(14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슈퍼소닉’은 ‘깜짝 쇼’의 행진을 2년 연속 이어간다. 지난해 사상 처음 조용필을 페스티벌 무대에 서게 한 데 이어, 올해는 록밴드 퀸을 불렀다. 프레디 머큐리없는 퀸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지만, 첫 내한공연이라는 점과 퀸의 명곡을 어김없이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 머큐리의 보컬 역은 ‘아메리칸 아이돌’ 출신의 아담 램버트가 맡는다. 프랑스 국민밴드 피닉스와 팝의 신예 어그레이트빅월드의 이름도 눈길을 끈다.
당초 이틀로 예정된 공연이 하루로 줄었지만, 그만큼 알찬 무대를 준비했다는 게 주최측의 설명이다.
주목할 밴드로는 세계적으로 가장 핫하게 떠오른 영국 밴드 The 1975다. 국내 밴드로는 독특한 디스코 음악으로 전세계 음악 시장을 노크하고 있는 술탄오브더디스코, 인디록 1세대 밴드 노브레인과 크라잉넛(콜라보레이션 공연), 블루스 록의 진가를 선보이는 게이트플라워즈가 가세했다.

‘아이돌의 진격’ 나우 페스티벌(15~16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AIA 리얼라이프 : 나우 페스티벌’은 페스티벌 무대에선 보기 드문 ‘아이돌 군단’의 진격으로 승부수를 던진다. 무대의 도발 여전사 레이디 가가를 앞세워, 빅뱅·투애니원·에픽하이·악동뮤지션·이하이·워너 등 YG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들이 대거 참여한다. 싸이는 ‘시티브레이크’에 이어 ‘나우 페스티벌’에도 이름을 올렸다. 또 갤럭시익스프레스, 로큰롤라디오, 크레용팝 등 싱싱한 감각의 젊은 밴드들이 또래 세대 관객과 호흡을 맞출 예정이다.

식상함의 연속…“그래도 즐기자”
4개 페스티벌이 발표한 라인업은 국내 무대에 여러 번 다녀간 아티스트들이 대부분이다. 이미 본 무대를 다시 보는 것에 대한 피로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하지만 5년 전부터 탄생하기 시작한 ‘페스티벌 제너레이션’(축제 세대)은 페스티벌의 콘텐츠가 아닌, 페스티벌 그 문화 자체를 즐겨야한다고 강조한다. 한 공연 관계자는 “이제 페스티벌에선 ‘무엇을 보는가’보다 ‘어떻게 노느냐’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관객이 많아졌다”면서 “그게 지금 페스티벌의 가치”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