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1일 새해 벽두부터 전국에서 가장 큰 실내공연장인 체조경기장이 문을 여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이날 공연이 열리는 것도 의아한데, 이 무대의 주인공이 다름아닌 아이돌 그룹 '샤이니'라는 사실은 더욱 놀라웠다. 조용필이나 이승철 등 나름 대중음악계에서 수십년간 공연 노하우와 대량 히트곡을 가진 '특수 계층'의 뮤지션만이 누릴 수 있는 독점권을 이제 막 데뷔 3년차 신인 아이돌그룹이 보란 듯 획득한 건 '사건'에 가까웠다. 그것도 공연의 가장 비수기일 때 말이다. 당시 이 무대엔 국내 팬 뿐만 아니라, 대만, 일본, 중국, 태국 등 아시아 팬들이 한꺼번에 몰려 식을 줄 모르는 샤이니의 인기를 반영했다.
아이돌의 체조경기장 단독 콘서트의 원조격은 SS501이다. 지난해 2월 아시아투어 서울 앙코르 공연을 이 무대에서 가진 그들은 아이돌 그룹이 이제 '방송용'에 그치는 이미지 상품이 아니라, 가창과 실연을 통한 라이브로 관객에게 어필하는 '무대용' 밴드의 위용을 과시한 사례로 평가받았다.
올해 아이돌 그룹들이 잇따라 수천석의 대형 무대에서 라이브 공연을 선보인다. 이들의 라이브 공연은 이제 '진풍경'이 아닌 '흔한 풍경'으로 자리잡았고, 팬들도 10대 위주가 아닌 다양한 연령층을 끌어올 만큼 아이돌 공연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아이돌 그룹의 공연, 무엇이 달라지고, 한계는 무엇인지 조명해본다.

◆ 여름 시즌에 쏟아지는 아이돌 그룹의 '괜찮은' 라이브 무대

당장 14일 잠실 종합운동장 보조경기장에서 비스트, 포미닛, 지나가 소속된 큐브 엔터테인먼트가 벌이는 '유나이티드 큐브 콘서트-환타지 랜드'는 현재 트렌드를 가장 '핫'하게 맛볼 수 있는 기회. 노래는 물론이고 방송에서 보기 힘든 혁신적 댄스들이 화려하게 펼쳐졌다.
비가 키운 아이돌 그룹 엠블랙은 20일 6000명이 들어갈 수 있는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Men in MBlAQ'이란 제목의 무대를 연다. '시크돌'이라는 별칭 답게, 무대를 세련 또는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후끈 달굴 예정이다. 20∼21일 악스코리아에선 FT아일랜드의 라이브 무대가 열린다. 아이돌 그룹 중 유난히 라이브 무대를 많이 가졌던 이들은 이번 무대에서 팝과 록이 어우러진 대중성 강한 곡들로 관객을 만족시켜줄 것으로 보인다.
2PM은 9월2∼3일 잠실 실내체육관(6000석)에서 'HANDS UP ASIA TOUR in SEOUL' 콘서트를 펼친다. 큰 규모 만큼 화려한 무대 구성이 꾸려질 예정. 9월17∼18일 3000석을 수용하는 올림픽홀에선 '꽃미남' 밴드 씨엔블루의 무대가 마련돼 있다. '블루 스톰(Blue Storm)'이란 이름의 무대에서 이들은 멤버의 총천연색 개성을 통해 '화끈'하면서 '끈끈'한 무대를 선보인다.

◆ "아이돌이라 부르지 말고 뮤지션돌이라 불러주세요"

작곡가 겸 프로듀서 방시혁은 '지금의 아이돌'을 '뮤지션돌'로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의 말을 빌어 해석하면 뮤지션돌은 비주얼과 안무가 뛰어난 아이돌의 기존 특징은 간직한 채 음악의 진정성과 악기 연주 등의 분야에서도 능력을 발휘하는 신(新) 아이돌이다. 그의 예측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우선 음반에서부터 아이돌은 프로듀서가 시키는대로 '입만 벙긋' 노래하는 수동적 태도에서 벗어나, 멤버 본인이 직접 작사나 작곡, 심지어 프로듀서까지 도맡는 멀티 플레이어로서의 능력을 유감없이 펼치고 있다. 또 짧게는 3년, 길게는 7∼10년까지 연습생 시절을 겪으면서 음악에 대한 태도를 좀 더 진지하게 바라보게 되거나, 음악을 향한 열정과 욕심을 더 크게 가지거나 자신의 목표 의식을 더욱 또렷히 세우는 식으로 음악의 외연과 내면을 확장시킨다. 1, 2년 속성 과정에서 태어난 예전 아이돌과 달리, 오랜 인내의 시간속에서 숙성된 뮤지션십을 자신도 모르게 체화시킨다는 의미다.

라이브 무대도 오래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선보이는 자신감의 발현장이다. 립싱크로 시간을 때우던 기존 아이돌의 한계도 요즘 '뮤지션돌'에선 찾아보기 힘들다. 춤을 추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가창을 보여주는 건 기본. 80년대 록밴드의 연주실력 만큼은 아니더라도, 왠만한 라이브 무대에서는 욕먹지 않을 정도의 꽤 괜찮은 연주력을 선보이는 아이돌 록밴드의 기량은 점점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솔직히 두려운 건 이들의 한계와 실력이 어디까지인지 종잡을 수 없다는것이다. 뒤처질까 걱정되는 게 아니라, 너무 앞서갈까 두려워진다고 할까.

◆ 케이팝(K-POP)으로 인기 몰이 VS 재미 반감시키는 실연의 한계

아이돌 그룹이 라이브 무대에 약하다는 선입견은 2000년 중반 이후 와르르 무너졌다. 이유는 한류를 타고 건너간 아시아권에서 수많은 라이브 무대와 마주했기 때문. 국내에선 '방송'때문에 적었던 라이브 무대 기회를 해외에선 어김없이 펼쳐보여야했다. 국내 대중음악의 한류는 순전히 '라이브 무대'에서 이뤄지고 평가받기 때문이다.
만약 한류(지금은 케이팝, 세계속의 한국 대중음악이란 공용어를 찾기위해 일본의 J-POP의 형태를 따랐다)가 지속되지 않았다면, 아이돌 그룹의 국내 라이브 무대 기회는 전무했을지도 모른다. 라이브 무대는 실력이 아니라 경험이 잣대다. 아무리 좋은 실력을 지닌 뮤지션도 무대 경험이 적으면 관객의 호응은 커녕, 무대에서 실력 발휘도 제대로 못하지만, 경험 많은 이들은 실력이 다소 부족해도 얼마든지 능숙하게 무대를 휘어잡을 수 있다. 한국의 많은 아이돌 그룹들이 시간이 갈수록 더 큰 국내 라이브 무대에서 자신감을 획득하고 자신의 기량을 펼치는데에는 해외에서 다진 무대 경험이 밑바탕이 된 것이다.
이 '역수입'의 효과는 그러나 문제점도 안고 있다. 트렌드한 음악에 주력하다보니, 정작 음악에 가장 중요한 요소들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 아이돌의 음반은 대부분 실연 보다 컴퓨터 소스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아 정작 라이브 무대에선 음반의 효과를 그대로 적용, 실현시킬 수 없는 한계에 직면한다. 그러다보니, 아이돌이 꾸리는 대부분의 무대는 연주자는 없고 MR(반주음악)에 맞춰 멤버들의 가창과 춤을 드러내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실연을 통해 보여줄 수 있는 소리의 현장감과 감동을 떨어뜨려 '라이브의 제맛'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물론 몇몇 록을 중심으로 하는 아이돌 밴드는 실연을 통해 재미와 감동을 주려고 하지만, 2%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늘어나는 아이돌 밴드의 라이브 무대 만큼, 신경써야할 장치들도 많다는 걸 명심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