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를 메우는 사람 공간, 시간, 인간, 이 세 가지를 메워주는 사람임을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세트가 바뀌면 공간이 바뀌는 거고, 낮에서 밤, 3개월 뒤, 1년 뒤 라고 하면 때가 바뀌는 거고, 그것들을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하니 이 사이를 메우는 것이 실제 공연 작업인 것이지요. 또한 배우, 스텝들 등 여러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한 방향으로 모아주는 사람, 방향을 제시해 주는 사람 역시 연출가라고 생각합니다.



우연이 운명으로 고등학교 3학년 여름에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영상원 입학 시험을 보는 친구를 따라 갔다가 우연히 연극원 요강을 보고 지원했습니다. 당시 막연히 광고를 하고 싶었는데 연극 연출가가 되면 뭐든지 할 수 있겠다고 생각을 했지요.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이었는데 그래도 최종까지 갔다 결국 탈락했어요. 이듬 해 재수를 하던 중 한예종 시험 본 게 생각나 다시 지원했고 운이 좋게 합격했습니다.

대부분의 한예종 동기들은 이미 연극 경험도 많고 의욕과 목표가 있었지만 전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들어간 터라 적응하기 어려웠어요. 그래서 군대에 빨리 갔지만 호루라기 연극단에 차출되었고 2년간 연기, 극작, 연출 등을 했습니다. 그 시간이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모든 것이 운명 같다고 생각합니다. 복학 후 교내 작품도 많이 했고 이후 극단 차이무에서 조연출을 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이상우 선생님이 연출가도 글을 써야 한다고 줄곧 말씀하셨는데 그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작품을 써서 연출을 같이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머릿속의 소재 직접 작품을 쓸 때는 머릿속에 들어와 있는 소재인가가 중요하죠. 아이디어들을 적어 놓은 노트를 가지고 있는데 “이런 거 해 보면 어떨까?”하고 먼저 제안하는 스타일입니다.

음악 중요해 뮤지컬 연출작을 정할 땐 우선 음악이 좋아야 합니다. 음악이 좋으면 드라마는 어떻게든 고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얼마나 음악과 드라마가 잘 연결되어 있는지, 음악을 들었을 때 그림이 떠오르는지. 어떤 OST는 한 번도 공연을 보지 않아도 음악만 들으면 그림이 떠오르고 캐릭터가 어떤지 대략적인 흐름이 느껴지지요.





드라마에 강해 라이선스 작품들을 많이 한 편인데, 초벌 번역된 것을 보면 정말 알 수가 없을 때가 많습니다. 국내 정서와 맞지 않는데 ‘우리가 이렇게 했으니 그대로 해’라고 번역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거든요. 그걸 못 받아들이는 편입니다. 최대한 우리 관객들이 쉽게 수용할 수 있도록 드라마를 다른 연출가보다 좀 더 신경을 쓰는 게 강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번역과 협력연출 작업도 스스로에게 큰 공부가 됩니다.

원숙미 더해져야 연출가로서 아직 어린 나이입니다. 서른 살에 본격적으로 연출을 시작했지만 아직도 연출가들이 다 모이는 자리에서는 커피 심부름을 하죠. (웃음) 카리스마라는 것이 아직은 부족한 것 같아요. 작업 할 때 모두들 연출가로서 존중해 주시지만 나만의 스타일, 혹은 전체를 강하게 끌어갈 수 있는 카리스마는 시간이 더 흘러 경험이 쌓여야 생길 것 같아요. 독재와 독단이 아니라, 저 사람과 작업하면 될 것 같다, 하는 생각, 한 마디를 했을 때 상대가 맞다고 수긍할 수 있는 힘, 이것은 깊이에 관한 것이니 좀 더 원숙해져야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몬테 크리스토> 부산 공연 때 1막 엔딩 솔로 부분에서 윤공주 씨 마이크가 갑자기 꺼졌어요. 고장이 난 거죠. 그 때 술을 마시고 퇴장해야 하는 조휘 씨가 다시 나와서 자기 머리에 붙은 마이크를 대 주고, 공주 씨는 거기다 대고 노래를 했어요.

또 협력연출로 로버트 요한슨과 작업할 때는 논쟁을 많이 하게 되요. 미국에서 계속 작업을 해 온 60대 연출가가 2, 30대가 주인 한국 관객들의 정서에 가깝게 갈 수가 없으니까요. 사소한 것 하나에도 느낌이 크게 달라지는 게 많으니 보편적인 것이 무엇인지, 한국 관객들이 잘 받아들일 수 있는 지 끊임 없이 이야기를 주고 받습니다.



<북 오브 몰몬> 몰몬교에 대해 잘 모르고, 정서나 개그 포인트도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굉장히 재미있게 봤습니다. 몰몬교를 알아야 웃을 수 있는 포인트가 있지만 이야기의 중심은 몰몬교 선교사들이 우간다에서 겪는 일이고 그 설정 안에서 재미있는 일이 굉장히 많아요. 결말에 주인공 이름을 딴 ‘북 오브 아놀드’라는 경전으로 새로운 종교가 탄생하는데, 결국 내가 뭘 믿느냐에 따라 달렸다는 이야기를 코믹하게 잘 풀었습니다.

<피핀> 다양한 음악, 마술, 서커스 등으로 보여주고 있어서 관객의 오감을 만족시켜주는 느낌이었습니다. 신기해 하면서도 노래에 빠져들고, 같이 춤추고 박수 치며 어떻게 시간이 흘러갔는지 모를 정도였어요. 이제 엄청나게 새로운 메시지를 담은 작품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새로운 형식으로 푸는 것이고, 그런 면에서 음악, 드라마 중 어느 하나만 강조하는 게 아니라 배우들의 연기, 음악, 아크로바틱 등 총체적으로 결합해 하나의 극으로 만들어 내는 부분에서 굉장히 좋았습니다.




한국 뮤지컬 시장이 좁기 때문에 결국 해외로 진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타 배우들 위주의작품이 아니라, 미장센이든, 드라마든, 음악이든 외국인들이 봤을 때도 받아들일 수 있는 작품, 그것들 때문에 한국의 뮤지컬을 보러 올 수 있는 작품이 나와야 시장이 커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최근 개인적으로 프랑스 뮤지컬에 관심이 많아졌는데, 아크로바틱, 기예 등을 우리나라도 충분히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부분이 있어요. 국내 관객들은 이미 드라마, 음악의 좋고 나쁨을 분명히 판단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에 이젠 새로운 요소들, 볼거리들을 총체적으로 묶어서 보여드리는 게 앞으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무대, 드라마, 음악 등이 모두 잘 어우러져 최상의 것을 보여줘야 하죠. 10년, 20년 후에는 승부가 나야 될 것입니다.



전체 관객의 70% 이상이 1년에 공연을 많아야 세, 네 편 보시는 분들이고, 이 분들을 기준으로 작업을 합니다. 공연 한 편을 보는 2시간 40분 정도의 시간 동안 즐거움을 얻기 위해 몇 십 만원 이상의 돈을 쓰고, 저녁식사에 집에 오가는 시간까지 더하면 하루 5, 6시간을 쓰시는 건데, 그걸 충분히 채워드리려고 정말 많은 배우와 스텝들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관객들도 최대한 열린 마음으로 편안하고 즐겁게 즐기셨으면 좋겠어요.

일부 뮤지컬 마니아분들이 건강한 비판보다는 개인적인 욕심을 이야기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작품을 아끼는 고객이니 자신들의 이야기를 반드시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비난은 얼마든지 하실 수 있는 것이지만 노력 자체를 폄하했을 때 스텝들은 굉장히 힘이 많이 빠집니다. 공연은 스텝, 배우, 관객들이 같이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열린 마음으로 다른 관객들과 함께 편안하게 즐기면서 봐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정리: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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