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이에도 괜히 어색한 사람이 있듯 공연 중에도 유독 ‘내겐 너무 먼 당신’이 있다. 그 중 첫 머리를 차지할 이름 중 ‘발레’가 끼어있다는 건 발레 입장에선 억울할 노릇이다. 말만 없다 뿐이지, 이처럼 화려하고 본능적이며 고도의 훈련으로 만들어 내는 신체와 아름다운 음악의 향유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한 가지 약점이라면, 고고하고 콧대 높아 보이는 이미지 정도. 그런데 이 또한 알고 보면 우리가 지레 선을 긋고 외면한 것일 수 있다. 실상은 시원 털털한 성격까지 가진, 한번 친해지면 계속 만나고 싶은 매력적인 친구가 바로 발레다.
자, 이제 발레의 숨어 있는 이야기를 찾아보고, 오는 8월 말 모던 발레를 들고 첫 방한하는 '보스턴발레단' 내한 공연에 대해 살펴본다.

공연전 싹둑 잘라버린 치마
‘치마 길이’와  발레 史 
발레의 시작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15세기)의 궁정발레에서부터 시작해, 프랑스와 러시아에서 꽃을 피웠다. 그런데 이 역사와 함께 눈 여겨 볼건 여성 무용수들의 치마 길이다. 애초 일반 시민이 아닌 왕족들이 유흥과 고급문화를 위해 존재했던 발레는 처음 의상도 매우 권위적이었다고 한다. 심지어 루이 13세는 여자 무용수들은 발목을 덮는 의상을 입어야 한다고 명령을 내렸으니, 무겁고 화려한 가발에 부풀려진 스커트, 높은 굽 때문에 여성 무용수들은 그저 우아하게 걷기만 한 게 고작이었다.

그런데 18세기 한 여성 무용수가 ‘일’을 터트렸다. 발레리나 마리 카마르고가 충동적으로 발목을 덮은 치마를 싹둑 잘라버리고 무대 위를 활보한 것. 남자 무용수에 비해 소극적으로 춤을 출 수 밖에 없었던 여성 무용수들에게 자유를 건넨 하나의 사건이었다. 이후 한번 짧아진 치마 길이는 걷잡을 수 없이 짧아져 갔고 여성 무용수들의 테크닉도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낭만주의 시절에는 로맨틱 튀튀(tutu, 발레 의상을 칭함)라로 불리는 무릎길이의 종모양 스커트에서 나중에는 접시처럼 펴져 다리를 모두 드러낸 클래식 튀튀가 발레 의상의 대명사처럼 군림했다.


 **‘짐이 국가다’라고 외쳤던 프랑스 전제군주 루이 14세가 수십편의 발레 무대에 직접 출연한 발레 스타였던 사실을 아는가. 이 사람의 발레 사랑은 진정 순수하기까지 해서 영토 넓히기에 정신 없었던 시절에도 발레에 출연, 모두 27편의 무대에 섰다. 태양왕이라는 칭호도 사실 그가 열 다섯살에 출현했던 <밤의 발레>라는 작품 때문에 얻었다고 한다.
루이 14세가 한창 발레에 빠져있을 때는 일주일에 서너차레 발레에 출연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는 세계 최초로 발레학교를 세우는 등 발레의 중흥의 일등 공신이기도 하다. **




내 취향을 찾아볼까?
발레라고 다 같은 발레는 아니다. 나풀거리는 로맨틱 튀튀를 입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뿜는 무대가 있는가 하면, 짧고 귀여운 클래식 튀튀를 입은 무대도 있다. 그런가 하면 전통적인 의상과 줄거리에서 벗어난 새로운 연출의 현대 발레도 사랑을 받고 있다.

나풀나풀 신비로운 낭만주의 발레
그 유명한 발레 <지젤>에서 보면, 공기 중을 걸어 다니는 듯한 무용수들의 몸동작에 경탄이 절로 나오곤 한다. <지젤>은 낭만주의 발레의 대표적인 작품. 인간이 추는 것 같지 않은, 물 위를 미끄러지는 듯한 무용수들의 이런 동작은 1832년 안무가 필리포 탈리오니에 의해 만들어졌고, 그의 딸인 마리 탈리오니가 [라 실피드]에서 처음 선보였다. 
이 덕분에 파리 관객들은 주역 마리 탈리오니에게 '미풍처럼 날아와 엉겅퀴처럼 가볍게 떠다닌다'라고  찬사를 보냈다. 이 당시 마리오 탈리오니의 인기가 어찌나 좋았던지, 그녀에게 정신이 팔린 산도둑들에게 납치되어 즉석에서 춤을 춘 다음에야 풀려난 적도 있다고 한다.
낭만주의의 포인트는 바로 발 끝을 완전하게 세워 추는 동작을 일컫는 ‘푸앵트’. 이 덕분에 낭만주의 발레는 나풀거리는 옷을 입고 공기 중을 떠 다니듯 춤 추는 창백한 요정들을 창조할 수 있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지젤> <라 실피드> 등이 있다.





법도와 형식을 갖춘 고전주의 발레 
 ‘고전’이란 단어 때문에 아주 오랜 옛날 만들어진 형식 같지만, 사실 1850년 대 이후 낭만주의 발레가 유럽에서 인기가 시들해질 무렵, 러시아에서 고전주의 발레가 막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러시아 황실의 초청을 받은 프랑스 안무가 프티파와 레프이바노프에 의해 체계가 세워졌다. 고전주의 발레는 한 마디로 무대 위에 질서와 규칙, 법도를 만들어 형식을 따르도록 하는 발레라고 보면 된다.
안무를 할 때 모든 무용수들이 서는 자리를 치밀하게 계산하고, 일정한 규칙과 절차를 만들어 다채롭게 안무를 선보이는게 특징. 예를 들어 서곡에는 솔리스트(독무가)가 내용과 상관없이 춤을 보여주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2인무(파드되)는 이때 처음 소개되는 되었다. 대표적인 고전주의 발레는 <잠자는 숲 속의 미녀>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인형> <해적> 등이 있다.


사람의 몸 말고 뭐가 더 필요하지? 발란신의 신고전주의
순수하게 무용가의 ‘몸’ 하나를 강조한 발레다. 발레뤼스(러시아 상트 페데르부르크와 모스크바 최고의 무용가들 35명으로 구성된 발레단)에서 안무가로 활동한 조지 발란신은 화려한 무대장치와 동화 속 이야기를 보여주는 러시아식 발레가 춤의 의미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 발레의 불필요한 마임과 의상, 무대 장치를 최소화하고 다양한 몸 동작을 보여주는 발레를 선보인다.
그의 발레에는 대부분 줄거리가 없는 게 특징이다. 화려한 무대와 의상을 대신해 음악의 리듬을 정확하게 맞추고 독창적이고 풍부한 동작으로 선보인다.
발란신은 1935년 미국으로 가, 뉴욕발레시티의 전신인 아메리칸 발레단을 만드는데 심플한 속도감을 즐기는 미국인들의 대단한 호응을 받는다. 전세계 발레단도 고전과 현대 발레를 잇는 중요한 다리 역할을 한다고 평가하며 신고전발레라 칭하며 너도나도 발란신의 작품을 올리고 있다. 이외에도 아이디어와 참신함으로 무장한 모던발레들이 인기다.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는 형식의 미학으로 최고의 찬사를 받고 있는 고전 발레 <백조의 호수>를 모두 남성 출연자로 선보여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사랑을 받았다. 여성 무용가들의 전유물이었던 백조에 남성 무용가들의 역동적인 춤은 해외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했다. 비슷하게 스웨덴 출신의 안무가 에크도 <백조의 호수>를 새롭게 재해석했다. 왕자 지그프리드의 성장통을 코믹하게 그렸는데, 백조가 대머리로 나오고 왕자는 자기세계에 갇혀 사는 인물로 묘사된다.**



발레, 이것이 궁금하다
Q 유명한 남성 발레리노는 누가 있나
A  처음부터 여성 무용수들이 더 눈에 띈 건 아니었다. 루이 14세가 발레 스타였던 것처럼 애초에 발레는 남성의 예술이었다. 그런데 마리 카마르고가 황제의 칙령을 어겨가며 치마를 잘라낸 이후 대중의 관심은 발레리노에서부터 발레리나올 급격하게 쏠린다. 게다가 마리 탈리니오가 물위를 걷듯 나풀거리는 모습을 보인 순간, 발레는 여성의 예술이 된 것도 사실. 하지만 1909년 ‘무용의 신’으로 일컬어 지는 바슬라브 니진스키의 등장하면서 남자 무용수의 시대가 열린듯 했다. 그 정도로 그는 천재적이었고 폭풍과 같은 인기를 얻었던 것. 그의 과감한 에로티시즘과 낭만적인 요정의 춤은 유럽에 큰 충격을 가져가 주었고, 그를 역사상 최고의 발레리노로 칭송받게 했다. 하지만 그의 활약은 26살까지만 볼 수 있었다. 그 뒤에는 피해망상 등으로 괴로워하다 29살 정신분열증으로 사망하는 비운을 맞는다.

Q 발레리나들은 왜 팔자로 걸음을 걸을까?
A 발레 의상을 입지 않아도 발레리나는 그 특유의 팔자 걸음걸이만으로도 알 수 있어 멀리서도 알아볼 정도. 사실 발레리나의 균형잡힌 몸매와 어울리지 않는 걸음걸이긴 하다. 이는 ‘앙 드오르’라고 하는 발레의 가장 기본적인 자세 때문인데, 발 뒤꿈치를 맞대고 발끝을 180도로 벌리는 이 자세는 오랜 기간 혹독한 훈련을 통해 이뤄진다. 그 유명한 현대 무용가 이사도라 덩컨은 무용수를 옥죄던 코르셋뿐만 아니라 몸을 혹사하는 앙 드오르를 부정하고, 발레 슈즈도 벗어던진 걸로 유명하다. 그녀는 오늘날 현대무용의 창시자로 기억되고 있다.

Q 발레 무용수 등급에 따른 명칭은 무엇일까.
A 발레단의 서열 중 가장 높은 위치는 프린시펄이나, 프리마 발레리나로 칭한다. 그 아래로 솔리스트, 코리페, 코르 드 발레로 나뉜다. 대부분의 발레 무용수들은 입단해 코르 드 발레부터 차근차근 올라가 프린시펄이 된다. 또한 서열에 엄격한 유럽은 미국이나 아시아와는 달리 ‘발레리나’는 주역급 무용수에게만 칭한다는 사실도 알아두면 좋을 것.

Q 발레 공연, 언제 박수를 쳐야 할까
A 발레는 음악회와는 달리 공연 중간에라도 박수를 칠 수 있다. 박수는 무용수들에게 큰 힘이 되는 원천이니 아낄 이유가 없다. 주역 무용수가 처음 등장할 때도 박수를 쳐주는 게 예의. 하지만 박수를 치지 말아야 할 때가 있다. 바로 푸에테(한쪽 다리로 지탱하며 다른 다리로는 휘두르듯 하는 32회전 동작)를 할 때다. 몸의 균형과 정신집중이 요하는 기술이기 때문에 관객들의 박수는 무용수를 곤혹스럽게 한다. 푸에테가 끝나면 큰 박수를!


세계 정상의 모던 발레 어때?
보스턴 발레단 내한 공연 미리 보기
발레 애호가라면 귀가 솔깃한 소식이 있다. 미국 4대 발레단 중 하나인 보스턴발레단이 내한 공연을 갖기 때문. 클래식과 모던 발레 모두에 능숙한 이 발레단은 한국 첫 내한공연에서 모던 발레의 진수를 선보일 계획이다. 최근 국내시류도 클래식 발레에서 모던 발레로 관심이 옮겨가고 있던 터라, 이들의 공연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공연의 포인트는 앞에서 언급한 신고전주의의 창시자 발란신이 안무한 발레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단 것. 또한 발란신에게 영향을 받은 트와일라 타프와 크리스토퍼 휠든의 무대로 조지 발란신의 신고전주의가 젊은 세대로 오면서 어떻게 진화했는지 직접 확인 할 수 있는 기회다. 


조지 발란신이 선보이는‘콘체르토 바로코’는 음악을 가장 잘 이해해 ‘안무의 모짜르트’라 불리는 그의 명성이 잘 부각될 작품이다. 바흐의 ‘D단조의 두 개의 바이올린 콘체르토’ 에 맞춰 안무되었으며 발란신의 신고전주의적인 이미지가 돋보일 것. 클래식과 모던을 오가는 안무를 기대하는 관객이 국내에서도 많다.

크리스토퍼 휠든의 <폴리포니아>는 낭만과 희극적 요소가 만나 유머러스 하면서도 과감하게 연출된 작품이다. 고전발레의 움직임과는 대조적으로, 무대에서 구르거나 밀어내는 모습은 매우 강렬하게 관객에게 다가올 것.

마지막으로 트와일라 타프의 <다랑방에서>를 기대해보자. 21세기 모던발레의 거장이라 불리는 트와일라 타프는 현대발레 안무가 중 가장 인기 있는 사람 중 한 명. 그는 특별한 주연과 조연이 없이 춤과 뮤지컬을 혼합하거나 미술이나 비디오 등의 다른 예술 장르와 교류를 꾀하기도 하고 발레와 재즈 테크닉을 결합하는 등 독특한 스타일로 20세기 천재적인 안무가라는 평을 듣고 있다.
이번 공연에 소개될 <다락방에서>는 폭발적이고 정열적으로 안무된 작품으로 트와일라 타프의 특유의전염성으로 객석을 압도할 것으로 보인다.

글: 송지혜 기자(인터파크INT song@interpark.com)
사진제공: 보스턴 발레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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