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국내 첫 무대에 올라 전석 매진되며 큰 사랑을 받았던 연극 <프로즌>이 재연을 앞두고 있다. 여자아이들을 유괴해 살해한 연쇄살인자와 딸을 잃은 엄마, 그리고 이들을 지켜보는 정신의학자의 이야기를 담은 이 연극은 인간 내면의 어둠을 주저없이 파고들며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바 있다. 지난 22일, 개막을 3주 앞둔 <프로즌>의 연습실을 방문했다.
 
대학로 인근의 한 연습실에서 기자들을 맞이한 배우들은 예상과 달리 멀쩡한(?) 얼굴이었다. 작품의 무게가 만만치 않은 만큼, 배우들의 얼굴에도 날카로운 아우라가 어려 있으리라 짐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배우는 역시 배우였다. 연습이 시작되자 배우들은 금세 불안과 어둠, 고통 속으로 잠겨 들었다. 덩달아 연습실의 공기도 팽팽해졌다.
 

극은 정신과 의사 아그네샤가 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집을 떠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아그네샤는 연쇄살인마 랄프와 피해자 낸시 사이에서 양쪽의 고통을 지켜보는 인물이자 그녀 자신도 또 다른 고통과 죄의식에 시달리는 인물이다. 짐을 꾸리다 갑작스런 발작을 일으키는 그녀의 혼란스런 모습이 작품의 전체 분위기를 암시하는 듯했다.
 
이어 낸시와 랄프의 독백이 차례로 펼쳐졌다. 딸 로나가 실종된 후 힘겨운 일상을 살아가다 마침내 딸의 죽음을 알게 되는 낸시, 로나를 살해한 후 이곳저곳을 떠돌다 수감된 랄프, 범죄자의 뇌 구조를 연구하는 아그네샤의 이야기가 각기 따로 전개되다가 차차 절묘하게 맞물린다. 세 명의 배우가 퇴장 없이 촘촘한 호흡을 주고받으며 극을 이끌었다.
 

연기파 배우들로 꾸려진 <프로즌>의 출연진은 초연부터 이 작품의 인기를 견인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낸시 역의 우현주와 랄프 역의 이석준·박호산, 아그네샤 역의 정수영이 초연에 이어 다시 한번 무대에 오르고, 랄프 역에 <비><데블 인사이드>의 이창훈이 새롭게 합류했다.
 

연습이 끝난 후 배우들과 페이스북 [보고싶다](www.facebook.com/allaboutplays)에서 라이브 인터뷰를 진행했다. 배우들은 어느새 극에서 빠져나와 편안한 얼굴로 인터뷰에 응했다. 인터뷰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배우들이 이렇게 극에서 홀가분히 빠져나올 수 있는 데에는 정수영 배우의 공이 크다고. 정수영의 엉뚱한 모습이 곧잘 의도치 않게 연습실에 웃음을 퍼뜨린다는 것.
 
인터뷰는 OX 퀴즈와 키워드 토크 등 두 가지 코너로 진행됐다. OX퀴즈 중 배우들이 만장일치로 O로 답한 직문은 ‘이 작품, 솔직히 하기 힘들다’이다. 재연이 다가오는 것이 두려웠다는 이석준은 “다른 작품과는 좀 다른 호흡과 패턴으로 가는 작품이라 힘들어요”라고 토로했다. 그는 초연 때 스스로를 학대하는 장면에서 턱이 돌아가 통증의학과 치료를 받기도 했다고.
 
새로 합류한 이창훈은 “처음 캐릭터에게 다가가는 입장이다 보니 알다가도 모르겠고, 안다고 착각하는데 아니었던 과정을 겪고 있어서 힘들어요”라고 말했다.
 

힘든 만큼, 배우마다 각자의 충전 방법이 꼭 필요하다고. 우현주가 작품의 후유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택한 것은 바로 맥주. 초연 때 매일 혼자서 맥주를 한 캔씩 마셨다는 그녀는 “매일 상갓집에 가 있는 느낌이었어요. 왜 사람이 울고 나면 뭔가에 뒤덮여 있는 듯한 느낌이 들잖아요. 가슴이 아프고 많이 울어서 피곤한 상태에서 벗어나오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에 저 혼자서 맥주를 한 캔씩 마시는 시간이 필요했어요”라고 말했다. 박호산은 함께 공연하는 동료들에게서 큰 힘을 받았다고.
 

이번 공연은 우현주 배우가 대표로 이끌고 있는 극단 맨씨어터의 창단 10주년 공연이기도 하다. 맨씨어터는 창단공연 <썸걸즈>를 시작으로 <터미널><14인 체홉><은밀한 기쁨><흑흑흑 희희희> 등의 작품을 선보여 왔다. 배우들에게 창단 10주년을 맞이한 소감을 묻자 정수영은 “연극계에 있을 수 있도록 가장 큰 힘이 되어준 곳”이라고, 박호산은 “기본적으로 서로 생각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라 이 극단을 만나게 된 것이 너무 기뻐요”라며 극단에 대한 애정을 애정을 표했다.
 
우현주 대표는 이처럼 배우들이 극단을 사랑하는 이유에 대해 “연극이라는 것 자체가 굉장히 외롭고 확신이 안 서는 순간이 많은 작업이거든요. 내가 이걸 계속 할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는 순간 서로 용기를 북돋아주고 힘들 때 위로가 되어주는 단체가 되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라며 웃음지었다.  
 

이날 인터뷰에는 2011년부터 맨씨어터에 합류한 전미도 배우가 특별 게스트로 함께 했다. 그간 맨씨어터 덕분에 좋은 연극을 많이 할 수 있었다는 전미도는 “창단 10주년을 기념해서 다 같이 뭔가 해보려고 준비하고 있어요”라며 깜짝 소식을 전하기도.
 
이와 함께 전미도는 <프로즌>에 대해 “초연이 전석 매진됐다는 것 만으로도 작품에 대한 보증은 분명히 됐다고 생각해요. 정말 재미있습니다. 특히 세 명의 랄프가 정말 다 달라서, 이번에 세 명의 랄프를 다 보고 나름의 연기 분석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어요”라며 관객들에게도 이석준·박호산·이창훈 배우의 랄프를 모두 만나볼 것을 추천했다.
 
연극 <프로즌>은 오는 6월 6일부터 7월 16일까지 예그린씨어터에서 볼 수 있다.
 

▶ <프로즌> 배우들 페이스북 라이브 다시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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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즌> 생생한 연습 영상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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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기준서(www.studiocho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