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시인 이상의 삶과 작품을 독특한 서사로 재구성한 창작뮤지컬이 무대에 올랐다. 작년 연말 트라이아웃 공연을 거쳐 지난 18일 정식 무대에 오른 <스모크>다. 공연을 작/연출한 추정화는 “트라이아웃 때보다 더 극적이고 흥미로운 극을 만들고자 노력했고, 공연을 많이 바꾸었다”며 “관객 분들의 고통이 치유될 수 있는 뮤지컬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스모크>는 배우에서 창작자로 변신해 뮤지컬 <인터뷰>, <케미스토리> 등을 작/연출했던 추정화가 이상의 시 ‘오감도’에서 모티브를 얻어 쓴 작품이다. 좌절 끝에 삶을 포기하려는 ‘초’, 바다를 꿈꾸는 순수한 청년 ‘해’, 그들에게 납치된 여인 ‘홍’이라는 세 인물을 통해 시인 이상의 내면과 작품세계를 그려낸 이 공연은 지난해 12월 연말 트라이아웃 공연에서 강렬하고 비밀스러운 분위기로 관객들의 관심을 끈 바 있다. 동시에 일부에선 ‘난해하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지난 23일 배우들과 함께 작품의 주요 장면을 언론에 선보인 추정화는 “당시 난해하다는 관객들의 말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는데, 생각해보니 다 맞는 말이었다”며 “작품을 어떻게 더 극화시킬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트라이아웃에 참여했던 배우들을 비롯해 김재범 등 새로 합류한 배우들이 낸 의견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그러나 작품이 가진 원래의 ‘결’은 잃어버리지 않으려 했다고 추정화 연출은 전했다. “나는 하고 싶은 게 많아 좌절도 많은 사람이었다”는 추정화 연출은 “좌절 속에 있다 보니 이상의 소설 <날개> 중 ‘날자 날자 딱 한번만 날아보자’는 구절이 너무 좋았다. 그의 글을 보다 보면 시대와 맞지 않아 절름발이처럼 살고 있는 고통스런 예술가의 모습이 보였다. 고통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한 시인의 이야기를 통해 관객들이 치유를 받으시면 좋겠다”고 작품에 담아내고자 했던 의미를 설명했다.
 

연출가의 설명대로 이날 40분 가량 공개된 주요 장면에서는 식민지 치하 암울한 시대를 살았던 천재 시인 이상의 고통과 갈등, 좌절과 불안이 해, 초, 홍이라는 세 인물을 통해 독특한 방식으로 펼쳐졌다. 이상의 시와 소설 속 구절들이 녹아 든 음악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허수현 음악감독은 이상의 내면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기 위해 스무 곡의 넘버 중 열 곡을 다시 쓰기도 했다고.
 

배우들도 각기 출연 소감을 밝혔다. 이번 공연에서는 김재범과 김경수, 박은석이 시를 쓰는 남자 초 역을, 정원영, 고은성, 윤소호가 그림을 그리는 소년 해 역을, 정연과 김여진, 유주혜가 고통을 품은 여인 홍 역을 맡았다.
 
트라이아웃 공연에도 출연했던 윤소호는 “그 때는 이상의 모든 스토리를 다 담아내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이번에는 이상의 성장 과정 등이 내용에 더해지면서 더 이해하기 쉬운 공연이 됐다. 개인적으로는 해가 고통스러워하는 마지막 장면에 대한 설명이 더 명확해져서 좋다”고 달라진 점을 설명했다.
 
트라이아웃 공연 멤버 중 한 명인 박은석도 “내러티브의 부족한 부분이 많이 보완됐다. 초라는 캐릭터가 좀 더 이상의 인격과 많이 맞닿아 있는 캐릭터가 돼서 연기하기도 즐겁고, 처절함이나 슬픔, 절망을 많이 안고 갈 수 있게 됐다”며 만족감을 표했다.
 

최근 윤소호와 함께 JTBC <팬텀싱어>를 통해 주목받은 고은성은 “예전보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 주시는데 한 편으로는 그만큼 잘 해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도 생긴다”고 토로하며 “최대한 주어진 여건 안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소호 역시 “방송 후 무대에 서는 마음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어떤 경로로든 저희를 알게 되어 공연장을 찾아주시는 분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지금 이 자리에서 열심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모크>는 배우 김수로와 김민종이 함께 꾸린 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가 뮤지컬 <인터뷰>와 연극 <밑바닥에서>에 이어 세 번째로 선보이는 공연이기도 하다. 이날 프레스콜의 사회자로 나선 김민종은 “이제 시작이고 더욱 좋은 작품을 계속 만들어 가려 한다. 지켜봐주시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스모크>는 오는 5월 28일까지 대학로 유니플렉스 2관에서 볼 수 있다.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기준서(www.studiocho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