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볼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장은아

하루 아침에 혜성처럼 등장한 신데델라가 아니다. Mnet <보이스 코리아> 시즌 1에 출연하기 까지, 그의 부모님의 말을 빌리자면 "가수라는 허공만 바라보는 것 같이" 보이는 시기가 10년 가까이 있었다. 조바심은 마음 속에 숨겨두고 '분명 무언가가 있을 거야'라는 다짐만으로 묵묵히 걸어온 장은아는 이윽고 "그간의 고생이 이렇게 뮤지컬에 대한 뜻으로 펼쳐지는 것 같다"는 지금을 맞이하고 있다. 2012년 뮤지컬 <광화문 연가> 일본 공연을 시작으로 지난해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마리아, <머더 발라드>의 사라, 그리고 올해 <서편제>의 송화 역을 맡은 장은아는 탄탄한 가창력을 기본으로 신인 답지 않은 안정적인 연기를 더하며 자신의 가치를 서서히 드러내고 있는 한 사람이다.

가수로서 힘들었던 시간 지나고 나니
뮤지컬에 큰 뜻이 펼쳐지고 있어

"뮤지컬은 사실 얼떨떨하게 시작한 거였어요. 굉장히 운이 좋기도 했고요. 그 전에 가수로서 앨범을 내고 음원을 출시하기도 했지만 이름을 알린 건 영화 <국가대표> OST나 그룹 러브홀릭 객원활동 정도였거든요. 가수로서는 일이 거의 없었죠. 그렇게 쌓아왔던 가수 경력과 음악의 길을 생각하면, 내가 지금 뮤지컬을 하기 위해서 그렇게 고생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현재 그룹 더블유 앤 자스의 멤버이기도 한 장은아가 대중 앞에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린 건 TV 경연 프로그램을 통해서다. 큰 키에 시원한 이목구비, 강렬한 보이스와 콜라보레이션 무대에서도 상대방과 균형을 맞추는 매너 등으로 세간의 관심은 그녀에게 쏠렸다. 그리고 재능과 매력을 겸비한 신인 배우에 더더욱 목마른 공연계 역시 그녀를 놓칠 리 없었다.

"<광화문 연가>를 하면서는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두 달간 연습을 했는데 김태한 오빠한테 일대 일로 붙어서 하루에 12시간 동안 하드 트레이닝을 받았죠. 이지나 선생님도 워낙 말씀을 직설적으로 하시니까.(웃음) 그래서 전 좋았어요. 정말 관객분들께 지적을 받지 않을 정도로 해낼 수 있었던 건 그런 과정 덕분이었고 그 과정에 지나 선생님이 계셔서 너무 다행이었다고 생각해요."

뮤지컬을 시작하고 나서 모든 사람들의 말을 조언으로 듣고 받아들였다는 그녀다. "그 누구든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져야만 했다"며 활짝 웃는 그녀는 처음 보는 프로덕션의 모든 사람들에게 먼저 가서 말을 걸고 선생님이 되어 달라고 할 만큼 타고난 붙임성을 자랑한다.

"제 성격이 불편하면 뭐든 잘 못해요. 그래서 제가 먼저 상대에게 다가가서 막 후비죠. (웃음) 다른 배우, 앙상블 다 찾아 다니면서 알려달라고 했던 것 같아요.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를 할 때는 평소 선배로 존경하던 (정)선아한테 가서 많이 가르쳐달라고 했어요. 선아 성격도 시원시원해서 둘이 참 잘 맞았고 정말 많이 도와줬어요. 공연 끝나고 감사하다고 대기실에서 같이 운 적도 많아요."


꿈과 현실의 조화를 이루게 해준 음악과 미술

어릴 때부터 미술을 했기에 큰 고민 없이 미대에 진학했지만 대학 내 가요제에 나가 금상을 수상하면서 '정말 노래를 해 보고 싶다'는 마음을 굳히게 되었다. 그 전까지 그 누구도 장은아가 노래를 잘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게 아이러니 할 정도다.

"음악하고 싶다는 욕망이 너무 강했는데, 가수로서 일이 잘 안 풀릴 땐 미술로 위로 받고, 그렇게 힘을 얻어 다시 음악을 하고, 음악과 미술, 이상과 현실이 나름 서로 조율이 잘 되었던 것 같아요. 가수활동만 하기에는 일이 너무 없어서 그림을 그려 팔기도 했는데 잘 팔렸어요. 그걸로 먹고 살았죠. 부모님이 불안해 하셔서 대학원에 진학해서 생계를 위해 조교도 했었고. (웃음) <보이스 코리아> 나간 후로는 일단 그림을 접었는데 그 이후부터 거짓말처럼 밴드도 하게 되고 뮤지컬도 시작하게 됐어요. 부모님도 뮤지컬 하는데 크게 응원해 주세요."

음악과 미술이 있었지만 연기는 그녀의 인생에 없던 무엇. 일단 부딪혀 보는 행동파 그녀에게도 연기는 무서운 존재로 다가왔었다.

"어릴 때부터 성대모사로 친구들에게 인기도 많았고, 좀 천연덕스럽게 하는 면이 있었어요. 연기는 <광화문 연가> 때 처음 해 보는 거였는데, 쭈뼛쭈뼛거리다 혼나는 것 보단 일단 해 보고 나서 혼나는 게 낫겠다 싶어서 얼굴에 철판을 깔았거든요. 그런데 연출님이 "어머, 너 괜찮네, 너 뭐 해왔니?"라고 하셔서 정말 내가 많이 이상하진 않구나, 싶어서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부딪혔어요. 누군가 고칠 부분은 이야기를 해 주시겠지, 그러면서 조금씩 고쳐지겠지, 생각했거든요. 이후에 배우분들이 연기책도 사 주시고 지현준 배우한테 조언도 많이 얻고 연극들도 많이 보러 다녔어요. 그러면서 연기에 대해 좀 더 이해하게 된 것 같아요."

학창시절 성적은 나빴을지언정, 지각이나 결석은 정말 싫어했다는 그녀의 꼼꼼하고 책임감 강한 성격은 공연 연습 때에도 적용된다. 그래서 연습할 때는 잠을 못 자는 그녀고, <서편제>를 앞두고 있는 지금 역시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다 고백한다.

"머리맡에 악보를 두고 자요. 정말 긴장해야 할 시기인 것 같거든요. 며칠 전 첫 음악 연습을 하는데 대단하신 분들이 다 모였으니 정말 잘 해야지, 싶어서 솔로곡을 다 익혀갔는데 김문정 음악감독님이 동호와 듀엣곡을 시키시는 거에요. 그것만 안 해 가서 좀 찜찜했었는데. (웃음) 그 다음에 '살다보면'을 쫙 했더니 감독님이 "용서해 준다"고 하시더라고요. 어찌나 다행이던지. (웃음)"


잘 하고 싶다, 그 이상의 욕심이 드는 <서편제>
믿고 보는 배우로 한 발짝 나아갔으면

<서편제>의 전 배우들이 모인 자리에서 장은아는 그간 느끼지 못했던 '묵직한 기운'에 압도당했다고 한다. '작품에 누가 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던 게 지금은 '<서편제>라는 산을 넘지 못하면 앞으로 그 어떤 작품도 잘 해내지 못할 것 같은' 긴장과 자기 다짐으로 확장되었다.

"세 번 연속으로 공연하시는 배우들도 많고, 지금까지 오기에 사연도 많았던 작품이 <서편제> 잖아요. 그래서인지 이번 공연을 잘 올려야겠다는 마음들이 확 응집되어 묵직한 기운이 프로덕션 전체에 느껴졌어요. 한 달 반 전부터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너무나 매력있고 재미있어요. 결과가 어떻게 나올진 모르겠지만 재미있다, 좋다, 정말 잘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힘든 길이 다 보이지만 그 과정을 통해 스스로 크게 얻는 게 있을 거라는 강한 느낌, 힘을 집중해서 쏟아내려는 그런 무언가가 제 안에 있는 게 느껴져요."

한때 한 방으로 크게 뜨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사람, 10년 간 차근차근 끈질기게 쉼 없이 무언가를 했던 사람, 그리고 그것이 조금씩 빛을 발하고 있는 것 같아 행복하다는 사람 장은아. 지난 <머더 발라드> 공연 당시 "제 공연을 일부러 찾아주시는 관객들이 아주 조금은 생겨났다"며 팬의 이름을 다 기억하며 고마워하는 그녀는 앞으로 "믿고 보는 배우"가 되는 것이 소망이라 말한다.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차)지연 언니 같은 경우도 <아이다> <서편제> <카르멘> 등 그 모습이 확확 바뀌는데 막상 그렇게 하는 배우들이 많지 않잖아요. 저 역시 '이 배역은 안 어울리잖아'가 아니라 '이 사람이 이 역을 하면 어떨까?'하는 기대를 하게 만들고 싶어요. <머더 발라드> 공연 때 어느 관객이 "2014년에도 믿고 볼게요"라고 하시는 말씀에 정말 힘이 났어요. 작품 하나하나 할 수록 잘하고 싶은 욕심이 커져요. 개인적인 욕심이 아니라 작품을 위한 욕심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그 무엇이든 새로운 모습이 되었으면" 배두훈

배두훈을 직접 만난 후 가장 놀란 건, 평상시 그의 모습이 무대 위와 많이 달랐다는 점이다. 노래하는 무대에서 그는 펄펄 뛰어 다니며 노련한 가수 못지 않게 배짱 좋은 모습이었고, 뮤지컬 무대에서는 차분하면서도 절절한 기운이 가득했었다. 메이크업 후에 얼굴 톤이 좀 더 어두워졌을 만큼 해사한 낯빛과 잔잔한 미소, 조근조근하게 말을 이어가는 그와의 대화를 통해 얼마나 많은 얼굴이 그에게서 빚어 나오게 될 지 기대가 더욱 커졌다. 당시 해군 신분으로 '바다의 정우성'이란 별명을 얻으며 Mnet <보이스 코리아2> 세미 파이널 라운드까지 진출했던 그는 이제 공연 무대로 뱃머리를 돌렸다. 뮤지컬 <풍월주>의 사담을 시작으로 앞으로 계속될 배우로서의 향해, 그는 대단히 신중하고도 다부지게 노를 저어갈 듯 하다.

배두훈, 세상에 이름을 알리다

많은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 낳은 가장 좋은 결과는 세기의 위대한 가수 한 명을 탄생시키는 것보다 재능 있고 개성 넘치는 많은 사람들을 세상에 소개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배두훈에게도 <보이스 코리아2>는, 비록 결승 문턱에서 안타깝게 탈락했지만 연기라는 또 다른 무대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었음이 분명하다.

"방송으로 볼 때와는 달리 직접 해 보니 정말 쉬운 게 아니구나, 참가했던 사람들이 정말 대단했던 거구나, 생각했어요. 노래를 잘 할 수 있는 환경이 결코 아니었거든요. 방송 녹화를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하기도 하고, 세 번째 라운드는 자정이 넘어서 노래를 부른 것 같아요. 체력관리면에서도 힘들었고요."

힘들었지만 최선을 다했던 과정이 주는 상은 적지 않았다. 다시 군대로 복귀해 해군 홍보단 활동을 이어가서는 일주일 동안 부산을 세, 네 번 갈 정도로 공연 횟수는 더욱 늘어났다. 힘들었지만 뿌듯했던 시간, 그리고 지난해 9월 제대 직후 <풍월주> 오디션으로 그는 또 하나의 기회와 맞닿았다.

"제대한 그 주에 <풍월주> 오디션을 봤어요. 오디션은 준비할 때마다 많이 긴장돼요. 오랫동안 연기를 하지 않아서 그 감을 찾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었죠. 오디션 준비할 때는 많이 떨렸는데 희한하게 막상 할 때는 떨리지 않더라고요. (웃음)"


가수는 평생 함께하는 벗, 연기는 성취하고 싶은 대상

현재 배두훈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기과 휴학 중이기도 하다. 오만석, 강필석, 최재웅, 진선규 등 연기 잘하기로 소문난 이들이 배우로서 결을 더하던 그곳에서 배두훈은 노래를 부르길 소망했다는 것이 다소 의외일 수도 있겠다.

"노래를 좋아했고 20대 초반엔 음반을 같이 해보자는 사람이 있어 덜컥 계약을 하고 5년 정도 연습생 시절을 보내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 시간을 거치고, 또 <보이스 코리아>를 하면서 제가 보컬리스트로서 영향력이 큰 사람이 되기는 힘들겠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개성이 강했던 다른 참가자들에 비해 전 두고두고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스타일이 아닌가, 싶었거든요. 또 가수로서 앨범 계약을 하고 방송 등 상업적으로 활동을 하는 현실적인 부문에서 다른 사람들과 제 생각이 많이 다른 것 같기도 하고요. 지금 생각해 보면 노래로 저를 마음껏 표현하지 못하게 될수록 연기에 더욱 마음이 끌렸던 것 같아요."

오랜 시간 그를 외롭게 했던 노래는 이제 평생 충분히 즐기고 사랑할 수 있는 벗이 된 반면, 연기는 제대로 성취하고 싶은 목표가 되었다. 대학 입학 후 다양한 경험을 해 본 것 같은 동기들에게 괜스레 위축되었던 마음은 "무엇이든 부딪혀 경험하고 판단하려고 했다"는 그의 노력으로 인해 깊고 너른 시선의 바탕으로 변모해 갔음을 그도 조금씩 깨닫는 지금이다.

"원래 흑인음악을 좋아했는데 밴드 억스를 통해 굉장히 다양하고 색다른 음악과 무대를 접하고 있어요. 퍼포먼스가 강한 팀이라 무대 위에서 어떻게 표현하는지 맛을 알아가게 되었고, 연기에도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노래를 제 장기, 무기로 해서 승부를 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내 장점 중의 하나로 활용을 하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담을 시작으로 규정할 수 없는 새로운 모습들을 향해

"저 역시 연습 초반엔 '남자와 남자의 사랑'이라는 걸 의식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연습을 할수록 어떤 대상을 향한 그 마음 자체가 중요한 점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굳이 동성애라기 보다 이 사람이 너무 좋고 지켜주고 싶고 아끼고 싶은 마음인 거죠. 그런 마음으로 열을 대하고 있고, 관객분들도 우정이나 가족간의 사랑 등 저마다의 마음으로 작품을 느끼시지 않을까, 생각을 해요."

과거 출연했던 두 세 편의 교내 작품을 제하고 첫 프로 무대 작품이 되는 <풍월주>에서 그는 사담 역을 맡아 섬세하고도 묵직한 연기, 부드럽고도 절절한 목소리로 많은 이들에게 작품의 설득력을 더해주고 있다. 열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는 자, 동성애 이전에 염려하고 생각하고 아끼는 자를 향한 아낌없는 헌신이 배두훈의 사담을 더욱 깊은 인물로 만드는 것이 분명하다.

"연습 환경이나 모든 것이 낯설었죠. 배우나 스텝들도 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라 그들과 가까워지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웃음) 다들 저보다 나이도 많고 바쁘신 분들이라 다가가기가 힘들더라고요. 지금은 배우분들이나 스텝분들이 다들 좋아서 재미있게 하고 있지만 '오늘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매번 들기도 해요. 그래서 다음 걸 준비하는 데 좀 더 더뎌지는 것 같고요."

풍족하지 않았던 유년시절의 가정 환경, 여동생을 둔 오빠이자 맏아들로서 한번 더 인내하며 스스로의 몫을 차분히 다해왔던 성격 때문이기도 하겠다. 그는 섣불리 다작으로 경력을 더해가는 것을 스스로 경계하고 있다.

"주변에서 추천도 해 주시고 또 아직 신인이니 제의가 들어오는 작품은 다 해보라고 조언을 해주기도 하세요. 하지만 그럴수록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싶어요. 아직 보여드린 게 많지 않기 때문에 어느 작품을 하든 새롭게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고, 무슨 작품을 하더라도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의 모습을 확 바꿀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좀 다른 모습, 매 공연마다 새로운 모습들을 발견해서 보여드리고 싶어요. <풍월주> 이후에 공백 기간이 길지 않았으면 하지만, 1년에 한 두 작품을 하더라도 제 마음이 하고 싶어하는, 그런 작품을 하고 싶어요. 이제 시작이잖아요. 2015년, 2016년을 준비할 수 있는 올해가 되었으면 합니다.(웃음)"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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