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열과의 인터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6년 <알타보이즈>와 2007년 <김종욱 찾기>를 통해 짤막하게나마 가진 인터뷰에서 그에게 받은 인상은 나이에 비해 신중하고 철든(?) 배우라는 점이었다. 그러니 <스프링어웨이크닝>에서 사춘기 열병을 앓는 멜키어는 28살이 된 그에게 또 하나의 도전임이 틀림없다. 열정적으로 또 다른 사춘기를 통과하고 있는 배우 김무열을 만났다.


지금은, 스프링어웨이크닝


 <스프링어웨이크닝> 연습이 한창이다. 분위기는 어떤가.
이 작품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어 그런지 에너지가 넘친다. 스텝 한분 한분까지도 열정이 넘쳐서 연습실 문 열고 들어가자마자 느껴질 정도다.

이 작품은 뮤지컬 관계자와 마니아들에게 상당히 기대를 모으고 있지만, 아직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작품은 아니다. 배우로서 어필을 하자면.
기존의 뮤지컬 형식에서는 상당히 탈피한 작품이다. 연극에서는 여러 실험적인 시도가 이뤄지고 있지만, 뮤지컬은 그렇지 않다. 원작은 100년 전 희곡이지만 표현주의의 시조가 된 작품이라 여러 가지 파격적인 시도가 보여진다. 처음 보시는 분이라도 상당히 매력을 느낄 정도로 대중적이기도 하다. 음악은 듣는 것만으로도 신나도 좋다.

극 중 모범적이고 똑똑한 캐릭터인데다 사춘기를 겪는 소년(멜키어) 역을 맡았다.
어느 정도 연습이 지나오니까 멜키어가 모범적이진 않은 것 같다. 똑똑하고 자기 주장이 강한 건 맞다. 그만큼 의문이 있으면 알아내려 하고 굉장히 열정적이다. 그런데 이런 아이가 15살이다. 어떻게 보면 어린 아이의 그것으로밖에 표현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나중에 그가 10~20년 지나 보면 웃길 수도 있다. 괴테를 읽고, 그 당시 금기서를 독파했다고 하고, 사회에 반항하지만 역시 아이인 것이다.

28살 김무열이 15살 사춘기 아이를 표현하기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맞다. 순수함 가득한 친구를 연기할 때 마다 내 자신이 너무 무겁게 느껴진다. 내 머리가 한 없이 무겁게 느껴지고 내 몸이 더럽게(웃음) 느껴질 때도 있다. 속세에 찌든 느낌 말이다. 그래서 함께 공연하는 친구들과 옛날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그 때의 나를 떠올려 본다. 학교를 배경으로 한 영화도 많이 보고.

똑똑한 모범생 소년이라면 자칫 정형적인 캐릭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멜키어가 위험한 게 잘못 연기하면 되게 재미없는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그래서 깊이 있게, 생동감 있게 표현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영리하지만 그 안에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들이 인생에서 처음 겪고 있는 아이다. 몸의 변화조차도 낯설어 하는 시기고. 꽃으로 치자면 활짝 핀 꽃이 아니라 봉우리가 져서 두근거리는 생동감을 지녔다. 이제 제일 중요한 것 같다.

브로드웨이 공연은 봤나.
기획사에서 공개를 안 해서 유튜브나 동영상 사이트를 샅샅이 뒤져 간신히 얻어봤다. 실수로 지워져 버렸는데 다시 못 찾고 있다(웃음). 내가 본 건 오프 브로드웨이 버전이라 워크샵 분위기가 났지만, 그 영상을 보고 멜키어란 역할을 해보고 싶었다. 특히 마지막 한 장면만으로도 끌렸다.

영화와 무대에서 냉정하고 영리한 캐릭터를 주로 연기한 것 같다.
지금 멜키어는 상당히 다르다. 냉정함 속에 열정이 가득한 사람이고, 뭔가 싸워서 이기려고 하는 의지가 강한 인물이다. 물론 언젠가는 지금까지 맡아온 것과는 완전히 다른 역할에 도전해 보고 싶다. 외형상 살을 찌워야 하는 것들이라도 도전할만한 역할이라면 언제든 도전하고 싶다. <쓰릴 미> 시즌2에서는 처음보다 내가 표현해 보고 싶어서 일부러 살을 많이 빼기도 했다.


자리잡은 카페 내부가 너무 시끄러워 자리를 옮겨 인터뷰를 진행했다. 야외로 옮기자 김무열은 ‘담배 한 대 피워도 되죠?’라며 한 까치 물었다.

쓰릴 미는..

6개월 동안 원캐스팅으로 무대를 끌어간다. 부담스럽진 않나.
<지하철 1호선>을 원캐스팅으로 무대에 올랐다. 러닝타임이 2시간 30분이니까 <스프링…>과 비슷하지만 그땐 물론 지금보단 비중이 작았다.  체력 관리를 위해 지금 술과 담배를 끊으려고 한다. 담배는 오래 전에 끊었지만 다시 피우게 됐다. 이런 점심시간에는 한번 피고 싶다(웃음). 술도 좋아하지만 공연 끝날 때까지는 피해서 기본적인 체력관리를 하려고 한다. 주위에서 살을 찌우라고 권유하셔서 살도 찌울 생각이다.

담배는 왜 다시 피우게 됐나.
뮤지컬을 시작하면서 목 관리를 위해 끊었었다. 끊은 지 6년 만에 영화 작전을 촬영 하면서 다시 피우기 시작했다. 씬에 담배 피우는 장면도 있었고, 배우들과 친해지기 위해서였다. 우리나라에서 남자들끼리 친해지는 방법은 담배를 피는 것이지 않나(웃음). 안 피면 모여있을 때 ‘담배 한 대 피러 갑시다’ 이럴 때 혼자 남아 있다(웃음).

지난 2년은 가히 김무열의 해라 할만하다. 영화 드라마에서까지 활약을 보여줬는데, 그 인기의 시작은 <쓰릴 미> 아닌가. 그 당시 26살 신인 배우가 도전하기에 쉽지 않은 무대였을 것 같다.
무대는 배우 정서에 상당히 많은 영향을 끼친다. 처음 그 대본을 봤을 때 살인하고, 유괴하고, 동성애에 방화까지…나 이 공연하면서 싸이코가 되겠다 싶었다(웃음). 게다가 그 당시 상대 배우는 뮤지컬계의 4대 천황 류정한 선배님이었기 때문에 부담감이 컸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는 어린 신인이었으니까. 그런데 모든 게 잘 맞아 떨어진 것 같다. <쓰릴 미> 이전에 연극을 한 편 했었는데 연기적으로 많은 도움이 됐고, 김달중 연출님이 배우가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공간을 주셨다. 류정한 형님은 단지 날 후배로서가 아니라, 배우 대 배우로 의견을 주시고 도움을 주셨다. 그리고 사실 초연이었으니까. 다른 분들이 초연을 하고 내가 앵콜을 했으면 이렇게 안 됐을 수도 있다.

2007년부터 올해 초까지 여러 스케줄을 소화한 것으로 알고 있다. 영화, 드라마에 출연했고 동시에 두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무리를 한 건 스케줄 상의 문제였다. 내 의지와는 다르게… 그땐 개인적으로도 많이 힘든 시기였다. 그래도 무대를 책임지는 건 나니까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무조건. 그렇지 않나, 나약한 생각을 해서 손해 보는 건 나밖에 없었다. 그런데 되돌아 보니까 상당히 많이 도움이 됐다. <미친키스>와 <김종욱 찾기> 같은 경우 너무 대립되는 작품이라 이 사이를 왔다 갔다 하다 보면 재미있기도 했다. 그런데.. 다시는 여러 개를 하고 싶진 않다(웃음).

영화, 드라마, 무대 연기가 서로 다를 것 같다.
공연은 현장성이 곧 예술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가며 감을 잃지 않도록 노력한다. 드라마는 촬영 기간이 길어서 가다 보면 캐릭터가 잡히곤 했다. 영화는 씬 마다 워낙 심도 있게 찍어서 감독님의 의도가 많이 들어가는 것 같다. 셋 다 해보니 재미있다. 배우로서 어느 한 곳에 국한되지 않고 경험을 해봐서 좋다. 지금도 어느 장르에 고여있지 않고 여기저기 나아가고 싶다.

제일 잘 맞는 장르가 있지 않나(웃음).
그건 잘 모르겠다. 솔직히 난 내 연기를 눈 뜨고 못 본다. 영화는 나중에 봤을 때 자괴감에 빠질 정도였다. 감독님의 의도를 이해 못했구나..연기도 딱딱해 보이고, 상대방과의 호흡에 있어서도 탁 해줘야 하는데, 그걸 내가 못한 게 눈에 보이더라.

브라운관을 통해 김무열에 관심을 가진 팬들도 있을 것 같은데.
음하하하. 난 공연에 기반을 두고 있는 배우라고 하는데 무리가 없다. 아직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배우 김무열을 드러냈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래도 나 때문에 공연을 처음 접하는 분들이 있을 때면 자랑스럽긴 하다.

김무열에게도 쓰디 쓴 무명의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만 두고 싶었던 적은 없었나.
여러 에피소드는 있다. 아는 분이 만든 악극의 앙상블로 들어갔는데, 작품에 투자가 안됐었나 보다. 연습을 어설프게 시켜서 자기네 학교 동문에 가서 노래를 하자고 하시더라. 난 미리 이야기가 돼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다(웃음). 연습도 안 된 상태에서 배우들이 일렬로 서 노래를 했고, 그 분은 옆에서 ‘도와달라’고 하고… 이건 아니다 싶었지만 친한 친구와 그래도 공연을 하자고 약속 했다. 다음 날부터 주연급 선생님들이 한 분 한 분 안 나오셨다. 일주일이 지나니까 앙상블밖에 남지 않았다(웃음). 다음 날 친한 친구도 안 나왔다. 전화도 안 받고(웃음). 결국 공연 두 번 하고 망했다. 한번은 1200석이었는데 120명 왔나? 하지만 그만둘 생각은 안 했다.

도중에 나오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었나.
그 때 당시 그만두면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그러느니 앙상블로라도 들어가서 선생님들 하시는 것을 보고, 몸을 계속 이쪽에 두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에는 무대에 올라가면 돈을 받는다는 개념도 별로 없었다. 첫 번 째 작품은 6개월 하고 20만원을 받았다. 제작사가 돈이 없어서 식당에 돈을 못 주는 구나…식당 아주머니가 좀 불친절하구나..이 정도만 느끼고(웃음).

지금 달라진 게 있다면.
작품 자체를 많이 본다. 뭔가 느껴지지 않은 작품이라면 하고 싶지 않다. 무리해서 하느니 쉬면서 준비를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언제든 도전할 수 있게. 그때보단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고 할 수 있다.

처음부터 뮤지컬 배우를 꿈꿨나.
뮤지컬은 아니었고, 연기자가 되고 싶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연극 연기를 배워와서 연기 예술은 연극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밖에 나와서 공연을 여러 개 보면서 그런 생각은 많이 허물어졌다. <지하철 1호선> 때 김민기 선생님을 만나면서 뮤지컬에 대해 많이 배우고, 노래도 배웠다.

노래를 원래 잘했나.
지금도 그렇지만 가장 큰 숙제는 노래였다. <쓰릴 미> 전까진 레슨을 받아본 적이 없다. 어렸을 때도 친구들 중에 노래를 제일 잘하는 아이는 아니었다. 열 명 중 세 번 째? 그러다 <지하철 1호선> 오디션을 보기 위해 혼자 노래 연습을 많이 했다. 작품 연습 하는 동안을 내내 녹음해서 집에 가는 지하철 안에서 계속 들었다. 시간만 나면 노래하고.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태풍>이란 뮤지컬이 있었다. 그 OST를 아는 형님에게 선물 받았는데, 그걸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틀어서 따라 불렀다. 연습하니까 늘긴 늘었다. 나중에 <지하철 1호선> 오디션 점수표를 봤는데, 김무열은 10점 만점에 노래가 8, 9였다. 그런데 연기는 4, 6이더라(웃음)

배우로서 욕심나는 작품이나, 감동받은 작품이 있나.
뮤지컬 중에서는 <아이다>를 굉장히 재미있게 봤다. 공연을 보기 전에 CD로 음악을 들었는데 너무 좋은 거다. 우리나라 공연은 생각한 것과는 약간 달랐지만 재미있게 봤다. 난 소극장 위주의 공연을 많이 해왔고, 큰 뮤지컬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는데 정말 <아이다>는 해보고 싶었다.

왜 대형 뮤지컬과 자신이 맞지 않다고 생각하나.
성향 자체가 소극장에서 디테일하게 쪼개 들어가는 게 어울린다. 대형 뮤지컬은 스케일이 커서 목소리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본다. 지금 대형 뮤지컬을 한다면, 관객으로서 김무열을 봤을 때 ‘에? 안 어울리는데?’ 이럴 것 같다. 공연을 본 후에는 ‘욕심 부렸네~’ 이럴 것 같고(웃음).

앞으로 어떤 모습을 기대할 수 있을까.
아직 어리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게 얼마 없다. 더 노력해서 세월이 흐르면 깊이가 깊어지고 넓어져서 많은 걸 담아낼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이건 내 숙제이고, 배우들의 숙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장르를 구분하지 않고 도전하는 것이다. 계속 발전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글: 송지혜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ong@interpark.com)
사진제공 : 뮤지컬 해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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