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없는 가수'의 뮤직 비디오는 1990년대 가요판을 한 방에 뒤집어버릴 만큼 강렬했다. ‘투 헤븐(TO Heaven)’, ‘불멸의 사랑’, ‘가시나무’, ‘아시나요’로 이어지는 조성모표 발라드는 부드러운 음색과 가창력이 황금비로 배합된 히트상품 이었다. 소년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뽀얀 얼굴로 뜀틀을 뛰어넘는 야생마 같은 모습에 대한민국 여성들은 환호했다. 물론, 양손을 볼에 대고 “널 깨물어 주고 싶어” 라고 외쳤던 30초 광고를 보고 그에게 ‘아듀’를 외치는 여인들도 있었다. ‘한 방에 훅 갈 수 있다’는 가장 큰 고비, 군대도 다녀왔다. 서른 두 살, 고민도 많아졌고 생각도 많아졌다. 어제는 밤 10시부터 새벽 5시까지 연습실에서 드럼을 치고, 기타를 쳤다. 2009년에는 진짜 조성모의 모습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소년을 벗고, 남자가 되다

몰라보게 홀쭉해진 조성모의 모습이 이슈가 된 적이 있다. 하얀 피부, 통통한 볼살이 트레이드 마크였던 그가 구릿빛 피부, 선 굵은 남자로의 변화의 노선을 선택햇던 것이다. 미소년의 얼굴, 그의 미성을 아꼈던 팬들에게 이건 일종의 배신 아니었을까?

"변해야 하니까요, 안타까워도 어쩔 수 없어요. 저도 더 이상 소년이 아니고 자기들(팬)도 더 이상 소녀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니까(웃음). 저 요즘엔 아저씨라는 소리도 듣는걸요? 사실 예전에는 ‘피터팬 증후군’이 있었죠. 나이 먹는 것도 싫었고, 변하는 것도 싫었고, 발라드 가수 이미지에 맞지 않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것도 싫었어요. 그런데 자연스러워져야 한다는 걸 배운 거죠. 1집 때는 제가 ‘빈소년 합창단 목소리’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굉장한 미성을 냈잖아요. 솔직히 지금도 그 목소리를 낼 수는 있는데, 지금 서른 셋 제 나이에, 아니다! 만으로 서른 둘이네(웃음). 서른 둘 제 나이에 그 목소리를 낸다고 생각해보세요, 어휴. 듣는 사람이 얼마나 부담스럽겠어요. 가수의 목소리도 나이에 맞게 성장하고 변해야 하는 게 맞아요. 이제 공연을 통해서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가장 솔직한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해요."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숨김 없이 보여줬던 솔직함 때문일까?
여린 소년 이미지에 갇혀 있는, 눈물 흘리는 남자의 대명사로 조성모가 꼽혀왔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동서남북 사방에서 모진 풍파가 불어 닥치는 가요계에서 11년을 버텨온 남자, 그 또한 조성모 아닌가. 
 
"어렵지만 인생의 굴곡은 누구에게나 있는 거니까요. 누구나 겪는 성장통을 지난거라고 생각해요. 스물에서 서른이 될 때, 서른에서 마흔이 될 때. 성공과 실패가 죽을 때까지 반복되지 않겠어요? 4년 공백기간 동안 느꼈던 점이 ‘아, 나는 정말 내 나이에 맞게 살지 못했구나’라는 거였어요. 스무 한 살에 데뷔한 이후 11년 동안 제 나이에 맞는 과정을 겪지 못한 거잖아요. 취업, 학교, 그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들과 사랑까지도. 공백기 동안은 제가 놓치고 살았던 것들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지금은 제가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어요. 음악가로서의 조성모, 지금까지 사랑을 받은 것에 대해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 이런 거요.”

"그 때는 모든 게 복잡했어요”

신인가수의 신화, 초대박 성공스토리로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는 ‘얼굴 없는 가수’ 조성모의 데뷔 이야기를 꺼내자 “아, 그 때 뮤직비디오에 출연 했어야 했는데”라며 호탕하게 웃어 보인다.

"지금은 연습생 시절에 트레이닝을 받잖아요. 노래, 춤, 연기까지 모든 걸 다 갖춘 상태에서 데뷔를 하는데 저희 때만 해도 그런 게 없었어요. 앨범을 준비하는 시간이라기 보다는 심부름 하는 시간이었죠. 가방모찌라고 하면 딱 느낌이 오시려나? (웃음). 작곡가 형 집에 가서 청소도 하고, 작업실에 가서 악기 세팅하고, 짐 들어주고. 제가 딱 그 마지막 세대에 끼어있거든요. 다듬어진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촌스럽다는 이유로 뮤직비디오 출연을 못했어요. 자기 뮤직비디오에 출연 못하는 게 기분이 좋았겠어요? 그래서 제가 2집 때는 출연했잖아요, 약간의 힘이 생긴 다음에(웃음).”

전설로 남은 조성모의 성공적인 데뷔를 두고 방송국에서는 “되는 놈은 어떻게든 된다”는 말이 오갔다. ‘투 헤븐(TO Heaven’)의 뮤직비디오가 처음으로 공중파를 타던 날, 갑작스런 태풍으로 인해 평균 시청률 20% 미만이었던 프로그램이 시청률 40%를 넘어섰고 다음 날 온 국민의 관심사가 노래의 주인공에 쏠리게 된 것이다.

“그 때는 정말 당황했어요. 큰 인기가, 정말 하루 아침에라는 말을 실감했거든요. (故)이주일 선생님도 이주일 만에 인기를 얻었다고 해서 이주일 이라고 하셨다는데, 저는 정말 하루 아침이었잖아요. 제가 ‘나는 스타가 되겠어’, ‘세상을 뒤집는 가수가 되겠어’라는 생각을 잠깐이라도 했더라면 그렇게 놀라지 않았을 텐데 정말 ‘아, 음반 한 장 내보고 싶다’가 제 소원이었거든요. 그래서 겁을 먹고 당황했죠. 그 인기가 저를 뛰게 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어깨에 짐이 많았던 것 같아요. 지금의 저라면 제대로 즐겼을 것 같은데. 즐겁게 노래하고, 그 기분을 무대에서 녹여내는 무대를 만들어 냈을 텐데. 그런 아쉬움은 있어요.”

왕년의 화려한 명성 속에서 자신의 부족했던 점을 되짚는 조성모의 표정에서 그가 외치고 있는 ‘남자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때는 한마디로 복잡했어요. 인기도 잡고 싶었고, 음악도 하고 싶었고 이미지도 잡고 싶었어요. 그러니까 부자연스러울 수 밖에요, 모든 게. 요즘은 솔직해지고 여유 있어 보인다는 말을 자주 들어요. 욕심을 버리니까 자연스러워지는 것 같아요. 제가 지금 ‘저 스타가 되고 싶어요’라고 말한다면, 얼마나 우습겠어요. 11년 동안 겪었던 일들을 하나씩 정리하면서, 제가 가수로서 무대에서 설 수 있다는 그 자체가 얼마나 크고 대단한 일인가를 깨달았어요. 그래서 지금은 온전히 무대에 서기 위해서 끊임없이 담금질을 하고 있는 거죠.”


"배고픔, 느껴봤죠”

공연, 무대에 대한 소중함을 알게 된 가장 큰 계기는 역시 군대였다.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경기대학교 축제, 공익요원 근무 당시, 구리시민축제 행사에서 보여준 조성모의 열정적인 무대 매너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자 또 한 번 특유의 호탕한 웃음을 보인다.

"저희 학교니까 그래야죠, 학교 졸업을 안 시켜주는 걸요?(웃음). 사실 대학교 축제는 돈을 많이 받을 수 있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대학교 축제에서는 열정이 있고, 젊은 패기가 있어서 좋아요. 언제나 앵콜을 외쳐준다는 점도 좋죠. 구리시민축제는, 제가 구리시민이기도 했지만 제 근무지였으니까. 무조건 열심히 해야 했죠. 전 항상 열심히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린다니까요(웃음). 공익을 할 때는, 공연에 대한 그리움이 정말 컸죠. 제가 공연을 하고 싶다고 해서 제가 하고싶은 공연을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사실, 저는 화려한 무대에도 많이 서봤던 사람인데 시(市)행사는 예산이 많지 않잖아요. 열악한 무대에서 노래를 할 때 배고픔도 많이 느꼈어요. 가수로 무대에 섰던 시간을 생각하면서 ‘그 때 내가 조금 더 잘할걸’ 이라는 생각으로 무대의 소중함을 새삼 느꼈죠. 2년 정도는 무대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지냈던 것 같아요.” 

이번 공연을 앞두고 밤 10시부터 새벽 5시까지의 악기연습 시간이 조성모의 하루 일과로 추가됐다. “이번 공연에는 제 퍼포먼스가 많아요. 드럼도 치고, 일렉 기타, 어쿼스틱 기타, 피아노도 연주해요. 원래 바이올린도 예정되어 있었는데 그건 참기로 했어요. 바이올린은 조금 더 내공을 쌓은 후에 보여드려야 할 것 같아요.”

콘서트에서 부를 모든 곡들의 편곡에 관여하고 있다는 조성모는 프로듀서 업무에도 관심이 많다. “무대에서 퍼포먼스를 하기 위해서 악기를 배운 게 아니라 프로듀서가 되기 위한 과정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고 악기를 공부했어요. 모든 악기를 알아야 편곡을 할 수 있잖아요, 지금도 계속 공부하고 있고, 앞으로는 프로듀서로서의 모습도 보여드리게 될 것 같아요.”

“얼만큼 잘되야, 조성모가 다시 일어섰다는 말을 들을 수 있을까요?”

여느 신인가수보다 치열하고 끈질기게 무대를 갈망하고 있는 조성모에게 ‘현재 전력을 다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물었다.

“저는 지금 제가 내는 앨범 한 장, 공연 하나가 모두 재기앨범, 재기공연이에요. 데뷔 초반에 과분한 사랑을 받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 이후의 걸음걸이가 힘들었어요. 전 한 걸음씩 차근차근 올라온 사람들하고는 달랐잖아요. 처음부터 정말 완벽하게 잘됐으니까요. 그런 부분에서 부담감이 많아요, 누구보다도. 전작보다 잘되지 못하면 사람들은 실패한 거라고 말하잖아요. 예전에는 앨범이 270만장이 팔렸어요. 200만, 150만장 앨범이 팔리는 건 우스운 이야기였단 말이에요. 하지만 지금 음반시장, 공연시장의 상황이 예전 같지 않잖아요.

그런데, 지금 제 앨범이 얼만큼 잘 나가고, 제가 얼만큼 인기를 얻어야 “야, 조성모 다시 서는 거야?, 조성모 다시 우뚝 섰네”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저는 항상 재기인 것 같아요. 제 인생의 경쟁자는 그 누구도 아닌 맨 처음, 성공했던 저에요. 과거의 기억이 제 인생을 이끈다는 사실이 나쁘지 않아요. 저를 채찍질해주고, 저를 움직이는 에너지가 되주니까요. 지칠 때도 있죠, 그때는 50대가 된 제 모습을 생각하면서 용기를 내요. 그 때의 저는 잘하고 있을 것 같아요. 잘되고 안되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때의 저는 스스로 잘하고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거든요.”

내년 일본진출을 계획하고 있는 조성모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국사책 다시 보기였다.
“해외활동을 해야겠다는 야망이 있었던 건 아닌데, 신기하게도 공익을 했던 4년 공백기간 동안 일본팬이 늘었어요. 내년부터는 일본에서 앨범도 내고, 활동도 하게 될 것 같아요. 제 음악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잖아요, 저는 그곳에서 한국 사람, 한국가수로 서는 거니까 제 주체성을 확실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장 먼저 했어요. 그래서 얼마 전부터는 한국 역사를 다시 공부하고 있어요. ‘우리 한국은 이렇습니다’라고 정확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전국투어의 포문을 여는 체조경기장에서의 대형 공연을 통해 조성모는 자신의 열정을 불태울 생각이다. 패션쇼(passion-show) 공연은 '열정은 고통을 수반한다'는 메시지도 담고 있다. '좀 촌스럽지 않느냐'며 기자에게 되묻는 조성모의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공연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자체가 저도 촌스럽다고 생각 하는데요(웃음). 어떻게 해요, 이런 의미 마저 없다면 정말 음악하는 장사꾼이 된 것 같잖아요. 존경했던 선배님들도 항상 자신들의 공연에 의미 부여를 하셨거든요, 저도 그 길을 따라가고 싶어요. 제가 오르는 무대에 의미 부여를 하면서 열정적으로 살고 싶어요, 조금은 촌스럽게.”

가벼워진, 여유있는 발걸음을 걷고 있는 그. 프로듀서로의 변신, 본격적인 일본 진출을 앞두고 온전히 공연에 집중하고 있는 조성모의 모습에서 자연스러움과 편안함이 느껴졌다. 한층 깊어진 감성과 음색으로 찾아온 조성모가 참으로 반갑다.








글: 강윤희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kangjuck@interpark.com)
사진: 갤럭시아 커뮤니케이션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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