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은 앞만 보고 달리던 공연계가 숨 고르기를 한 해다. 올해 초부터 불어 닥친 경제한파와 환율상승 등의 악재는 라이선스와 내한공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고, 2000년 이후 매년 수많은 공연을 쏟아내던 공연계는 장르를 막론하고 주춤거리는 양상을 보였다. 하지만 고통 없는 성장은 없는 법. 특히 양적인 팽창을 거듭하던 뮤지컬 장르에 있어서는 내실을 다질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렇다고 조용하게 아무 일 없이 지난 간 2009년도 아니었다. 가요계의 중심 아이돌들의 뮤지컬 진출이 더욱 활발해졌고, 국내 제작사의 미국 진출도 이뤄졌다. 이외 2009년 공연계에선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매년 급격한 성장을 이뤄왔지만 언제부터인가 수요보다 공급이 앞서고 있는 것 같은 뮤지컬 시장에서 제작사들이 전통적인 해법으로 제시한 방법은 ‘스타’의 출연이다. 매년 방송과 영화를 오가는 대중적인 스타가 뮤지컬이나 연극 무대를 오르는 건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양상이었다. 하지만 하루를 분초로 나눠 쓰며 스케줄 대로 방송가를 돌아야 하는 아이돌의 무대진출은 올해 더욱 두드러졌다.
지난해 빅뱅의 멤버 승리의 출연으로 큰 재미를 본 뮤지컬 <소나기>가 FT 아일랜드의 멤버 재진을 캐스팅 한 것을 시작으로 올해엔 슈퍼주니어의 예성(<남한산성>), 성민(<아킬라>)가 연이어 무대에 진출했다. 이어 브로드웨이 신작 <금발이 너무해>에는 그룹 소녀시대의 제시카가 출연하며 정점을 이뤘고, 1월에 소개되는 뮤지컬 <모차르트!>엔 동방신기의 시아준수(김준수)가 주인공으로 캐스팅 됐다. 특히 시아준수가 보여준 폭발적인 티켓파워는 앞으로도 뮤지컬에 처음으로 도전하는 아이돌이 줄을 이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2009년은 연초부터 금융위기로 전세계가 홍역을 치룬데다 신종플루의 공포까지 겹쳐 IMF 이후 가장 우울한 한 해였다. 환율 상승으로 예정돼 있던 클래식 내한공연이 줄줄이 취소됐고, 가족 공연도 신종플루 사태로 취소되는 사례가 생겼다. 공연장에서 마스크를 쓴 관객을 보는 건 흔한 일이 됐다.
이런 분위기는 인기가 검증된 작품을 ‘안전하게’ 올리는 현상으로 이어져 <맘마미아> <시카고> 등과 같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작품들이 다시 올라갔다. 브로드웨이의 고전이라 불리는 <브로드드웨이 42번가> 등 관객들에게 낯설지 않은 작품들도 소개돼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굵직한 신작도 눈에 띄었다. 상반기 뮤지컬 <드림걸즈>와 <스프링어웨이크닝>을 비롯해 하반기 브래드 리틀의 <지킬앤하이드> <영웅> <남한산성>이 무대에 올랐고, 8년만의 라이선스 무대 <오페라의 유령>도 주목을 받았다. 특히 <영웅>과 <남한산성>은 각각 일제시대와 병자호란이라는 외부 침입의 역사를 다뤘다는 공통점이 있다.

 


<스프링어웨이크닝>을 시작으로 <금발이 너무해> <웨딩싱어> 등 브로드웨이 화제작들이 줄줄이 소개됐다. 특히 <스프링어웨이크닝>은 2009년 최대 기대작으로 공공연하게 꼽혀 올 정도로 파격적인 시도와 작품성으로 기대를 모아왔다. 2006년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첫 선을 보인 이후 극찬을 받으며 브로드웨이로 옮겨 공연한 이 작품은 이듬해엔 토니어워즈 8개 부문을 수상했다. 김무열, 조정석이라는 인기 배우와 화제가 된 넘버들, 새로운 연출로 시선을 모았지만 대중적인 흥행에선 기대만큼 좋은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이어 훨씬 대중적인 브로드웨이 신작 <금발이 너무해>와 <웨딩싱어>가 연말에 새롭게 가세해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 있다. 세계적으로 히트한 영화 원작 로맨틱 코미디란 공통점이 있는 이 작품들은 각각 제시카, 황정민/박건형이라는 스타 카드를 꺼내 연말 흥행몰이 중이다.
이외에도 소극장 연극으로 브로드웨이 최장기 공연 기록을 가진 일인극 <내 남자는 원시인>이 초연됐다. <클레오파트라>로 뮤지컬에 도전한 공형진이 이번에는 일인극에 도전해 주목을 받고 있기도 하다.


 


때 아닌 알몸 연극 바람이다. 그 불씨에 불을 지핀 작품은 지난 8월 소개된 연극 <논쟁>. 네 명의 남녀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태초부터 있어왔던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이 작품은 포털사이트 검색어 1위를 차지하며 연일 매진을 이어나갔다. <교수와 여제자>는 <논쟁>에 이은 노출 연극이지만 단순히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노출인지, 아닌지에 대한 찬반 양론이 뜨겁다. 지난 1990년대 연극 <미란다>로 대표되는 선정적인 연극들이 다시 우후죽순 나타날지에 대해서도 주목 받고 있다. 어찌됐던 <교수와 여제자>는 공연도중 남성 관객의 무대 난입 등 연일 화제를 뿌리는 등 뜨거운 호응에 힘입어 시즌2에 돌입했고, 오픈 런 공연 중이다.



 


올해 명동예술극장과 남산예술센터가 개관하며 움츠러들었던 연극계가 활기를 띄고 있다. 최악의 경기침체 속에서도 ‘전통’과 ‘실험’이라는 연극정신을 불어넣은 작품들은 연극을 목말라하던 관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중. 옛 명동국립극장을 리모델링한 명동예술극장은 <맹진사댁 경사>를 시작으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리> <세자매> <밤으로의 긴여로>, 최근엔 <베니스의 상인>을 공연 중이다. 남산예술센터는 <오늘, 손님이 오신다> <길삼봉뎐> 등 실험성 있는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이와 함께 연극계 최대의 축제로 자리매김한 ‘서울국제공연예술제’도 성황리에 치루어졌다. 아르코예술극장 등 서울 대표 극장 6곳에서 ‘아날로그와 디지로그’라는 주제 아래 연극 19편, 무용 17편, 복합장르 4편 등 12개국에서 온 40개 작품이 40일간 공연돼 색다른 무대를 경험하고픈 관객들의 욕구를 새로운 무대로 충족시켜주었다는 평가다.

 


2009년 연극계에서 ‘엄마’를 빼고 논할 순 없다. 대표적인 작품은 <친정엄마와 2박 3일>. 헌신적인 엄마와 딸이라는 전형적인 관계가 강부자, 전미선의 진정서 있는 연기로 표현돼 객석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이 작품은 연일 매진을 이어나가며 전국 투어 공연을 진행하기도 했다.
최근엔 김상경, 김성수가 대학강사 아들 역으로 더블 캐스팅 된 <엄마, 여행갈래요?>가, 모녀에서 모자로 범위를 넓히며 엄마와 아들간의 가슴 저린 정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순정만화’를 연출한 류장하 감독의 섬세한 연출이 더해지며 연말 흥행몰이 중이다.
<가을 소나타>는 7년만에 만난 엄마와 딸이 날선 말로 묵혀놓은 분노와 서운함을 터틀는 연극. '눈물바람' 트렌드에서 벗어난 모녀 이야기로 주목받고 있다.
모정 열풍은 2010년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신경숙 동명의 원작 소설을 무대로 옮긴 <엄마를 부탁해>가 전혜선, 길용우 등 쟁쟁한중년 연기자들과 함께 내년 1월 선보인다.


 

그동안 <난타>와 같은 넌버벌 퍼포먼스 이외에는 한국 작품이 통하지 않았던 미국에 변화의 조짐이 감지됐다. 그 대표적인 주자는 <드림걸즈>. <드림걸즈>는 그 동안 라이선스 비용을 지불하고 그대로 외국 작품을 들여오는 방식에서 벗어나 한국의 제작사 오디뮤지컬컴퍼니가 직접 제작에 참여해 한국 초연 이후, 미국 공연까지 이어져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11월 7일 아폴로씨어터 극장에서 개막한 이 작품은 시카고, 보스턴, 로스앤젤레스, 시애틀 등 1년간의 투어에 돌입할 예정이다. 미국 공연에 캐스팅 된 배우들은 현재 브로드웨이에서 촉망 받는 배우들로, 극중 캐릭터와 동일한 흑인 배우들로 구성, 현지의 호응을 받고 있다.
한국 말과 한국 배우를 그대로 무대에 올려 호응을 받은 경우도 있다. 창작 뮤지컬 <마이스케어리걸>이 뉴욕뮤지컬페스티벌(NYMF)에서 최우수신작뮤지컬상과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하며 한국 뮤지컬의 위상을 한 단계 끌어 올린 것. 최고 극본(강경애), 음악(윌 애런슨), 연출(변정주), 앙상블부문에서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면서 뉴욕 뮤지컬 관계자들과 관객들의 호평을 받은 바 있다.


 

‘건즈앤로지스’ ‘미스터빅’ 등 8~90년대를 풍미한 강렬한 록밴드와 비욘세 등 섹시 디바가 잇달아 내한공연을 가졌다. 특히 건지앤로지스는 첫 내한공연으로 이들의 강렬한 록을 기대하는 팬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17년 만에 새 앨범 ‘차이니즈 데모크러시’를 발표하고 월드 투어에 나선 이들은 20년 이상 활동하며 사랑받은 히트곡을 쏟아냈다. ‘웰컴 투 더 정글’ ‘노벰버 레인’ ‘노킹 온 헤븐스 도어’ ‘패러다이스 시티’ 등 히트곡과 ‘차이니즈 데모크러시’ ‘스크랩트’ 등의 신곡, 멤버별 연주곡 등 30여곡을 열창했다.
이들은 독특하고 파워풀한 무대 매너로 국내 팬들을 환호케 했지만 모두 순조롭게 공연된 건 아니다. 건즈앤로지스의 2시간 반이나 늦게 사작해 팬들을 당황케 했다. 게다가 보컬 엑슬 로즈의 강렬한 샤우팅 창법이 그날의 공연에서는 제대로 발휘되지 못했다는 평가.
비욘세 가창력과 탄력있는 몸매, 완벽한 무대 매너로 사랑받는 비욘세는 두 시간 동안의 입이 벌어지는 화려한 무대로 팬들을 열광케 해 명성을 지켜냈다. '스매시 인투 유', '아베 마리아', '암스 오브 디 에인절', '브로큰 하티드 걸', '라디오', '비디오 폰', '에고', '이프 아이 어 보이' 등을 잇따라 선사하며 객석을 환호케 했다.





**공연 전문가가 본 2009년**



글: 송지혜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ong@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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