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롯데씨어터 배우 대기실은, 처음 가본 사람에게는 꽤나 복잡하게 느껴진다. 몇 번의 계단을 오르고 모퉁이를 돌아서야 그곳에 도착했다. 김선경과 인터뷰를 할 장소다.
무대 리허설 후 대기실에서 만난 김선경은 약간 예민해 보였고, 신경은 온통 무대 쪽으로 쏠려 있는 듯 했다. 2년 여 만에 다시 오르는 무대는 그에게 설레임일 것이지만, 그저 좋아가기만 하기에는 그는 누구 보다 베테랑 배우다. 무대에서 완벽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 그에게 자기 만족은 좀체로 찾아오지 않는 거 같다. 

“첫 무대를 앞두고 흥분되고 기뻐요. 그렇지만 나는 연습이 충분치 않다고 생각하면 무대에서 100% 즐기지 못하는 사람이에요. 이번 [맘마미아]는 다른 배우들과는 다르게 중간에 투입이 되는 거니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죠. 요즘 집에서도, 거리에서도, 거울을 보면서도, 그 무엇을 하더라도 이 작품만 생각해요.” 

그는 이번 [맘마미아]에서 도나로 무대에 오른다. 그의 출연 소식에 ‘김선경과 도나는 딱이다’ 라는기대에 찬 소리가 여기 저기서 들리고 있다.
사실 [맘마미아]는 그와 인연이 있는 작품. 지난 2004년 초연 당시 김선경은 박해미와 함께 도나 역에 더블 캐스팅 됐었다. 하지만 그 당시 그는 [맘마미아]가 아닌 [킹앤아이]를 선택했다. “지금 내가 하기엔…”이란 이유였다.
그리고 김선경은 그 동안 무대 공백을 깰 작품으로 [맘마미아]를 선택했다. "기가 막히게 재미있는 작품"이라며 즐거워한다. 그리고 도나에 김선경의 색을 조합하고 있는 중이다. 기존 거세 보이는 도나 캐릭터에 당위성을 부여해 관객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게 목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도나'를 만들기 위해서다.  김선경은 이를 위해 그저 어느 정도 노력하고 있다는 게 아니다. 그러기엔 그의 무대 사랑과 애착이 너무 크다. 어금니를 물고, 잠을 줄이면서 연구하고 노력한다.
“난 교만한 배우를 싫어해요. ‘난 잘하니까, 몇 번만 연습해도 충분해’ 이러면 혼자 작품에서 튀어서 망쳐버리기 일쑤에요. 관객들은 공연을 쉽게 보러 오지 안잖아요. 하루에 돈 만원 쓰는 사람이라면 며칠 용돈을 모으고 모아서 오는 사람들도 많죠. 그런 분들 앞에서 최상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건 배우로서 직무유기에요. 난 오로지 관객을 위해 무대에 서요. 평론가를 위해서도 아니고, 관계자를 위해서도 아니고… 오로지 그들을 생각하며 무대에 서는 거죠.”

다시, 무대로
[맘마미아] 이야기를 해나가면서, 김선경 특유의 유쾌하고 당당한 카리스마가 말과 눈빛, 손짓을 통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는 직선적이라 할만큼 솔직하지만, 그만큼 뒤끝 없고 정도 많기로 유명하다. 인터뷰 중에도 자신의 일이나 좋고 싫음에 대해 솔직하게 표현한다. 그 스스로 “솔직해서 오해를 받지만 절대 뒤끝과 뒷말이 없는 성격’이라고 말하기도. 그러니 뒤에서 다른 말을 전하거나, ‘누구나 인정하는 싫은 사람’은 두 번 안 본다는 말이 놀랍지 않다. 하지만 그만큼 정도 많고 사람을 아낀다.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탈”이다.
배우로선 어떤가. 그 동안, 그가 무대를 잠시 비우기 전까진 관객을 휘어잡는 연기로 관객들의 사랑을 독차지 하다 싶이 해왔다. 그런 그가 뮤지컬 무대를 뒤로 한 건, 결혼 후 아이를 갖기 위해서였다.
“더 늦기 전에 아이를 갖고 싶었어요. 세상 모든 일이 뜻대로 되는 건 아니라 성공하지 못했지만…. 딱히 아이만을 위해 쉰 건 아니었어요. 91년 데뷔 이후 쉼 없이 해왔으니까 충전하고 싶었던 거죠. 그래서 그 당시 관계자 여러분에게 공표를 했었어요. 저 이제부터 쉰다고(웃음).”



그가 다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건 지난해 말 드라마를 통해서였다. 여기에선 초반 단 몇 회 나왔을 뿐이었지만 카리스마를 뿜는, 순간 집중력이 강한 연기은 대중의 뇌리에 각인 되기에 충분했다. 단지 몇 회 나왔을 뿐인데 ‘역시 김선경’이란 찬사가 뒤따랐고, 그를 몰랐던 사람들은 ‘김선경이 누구냐’고 묻곤 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 뮤지컬 배우로 무대에 선 그에게 이런 드라마의 폭발적인 반응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은가 보다.
“섭섭한 건, 단 하나의 드라마에 몇 회 나오는 게 뮤지컬 무대에 10년 선 것보다 더 효과적이었단 사실이에요. 대중들에게 아직 뮤지컬은 좀 멀다는 걸 느꼈어요. 이러니 많은 뮤지컬 배우들이 TV로 나가는 것도 탓할 순 없는 거 같아요. 그래도 그들이 무대를 잊지 않고 다시 찾아주는 게 너무 고맙죠. 저도 그래요. 공연은 기본으로 하고, 그 다음으로 드라마나 영화를 찾을 거에요. 가장 즐거운 공간이 무대니까요.”

91년 [사운드오브뮤직] 이후 서른 편 이상 오른 김선경에게 있어서 무대는 그가 생생한 호흡 할 수 있는, 가장 편한 공간이 되었다. 가장 자신다운 모습을 모습을 보여주고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곳. 그곳이 무대라고 즐거운 듯 말한다.
“전 마치 유치원생이 부모 앞에서 그 동안 연습한 춤과 노래를 보여주는 기분으로 관객 앞에 서요. ‘나 이만큼 연습했어요’ ‘나 잘하죠’ 하는 들뜬 기분 있죠? 그러니 무대에 서면 할머니와 어린 아이의 모습을 모두 갖게 되요. 무대를 잘 알고, 연기를 어떻게 하는지 오랜 시간 몸에 익혔으니 이런 면은 할머니지만, 마음은 애거든요(웃음).”

“아마도, 악바리처럼 해내겠죠?”
그의 얼굴은 마흔줄에 접어든 여성이라고는 생각 못하게 할 만큼 동안이다. 이건 무대를 향한 아이 같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임이 틀림없다. 그 스스로도 “애 같은 마음이 덜 늙는 비결”라고 이라며 깔깔 웃는다.
“전 뮤지컬이 기가 막힌 장르라고 생각해요. 이 곳을 택한 건 나에게 축복이고 특권이죠. 내가 이걸 안 했으면 뭘 했을까 싶을 정도니까. 관객에게도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고. 많은 사랑을 받기 때문에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해요. 김선경이 어떤 배우냐라고 하면 관객이 사랑해 주는, 그 사랑을 먹고 사는, 개인적으로 보면 정말 이거 아니면 할 거 없는 사람이죠.”

오랜만에 서는 뮤지컬 무대. 그는 [맘마미아] 도나로 서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습한다. 공연 중간에 투입된 만큼 다른 때보다 더 열을 올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그 스스로 가장 잘 알고 있다. ‘김선경은 어차피 잘 할거다’라는 시선이 부담이 되지만 그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거 같다. ‘관객을 위해서 악바리처럼 해내고 말 것’ 이라는 사실을.
말을 하는 그의 목소리가 약간 쉬어 있다. 아바의 노래로 만든 작품이기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배우 입장에서 [맘마미아]는 쉽지 않은 작품”이라며 “쓰지 않던 둔성과 가성을 쓰느라 목소리가 좀 갔다”고 한다. “해미 언니도 이 작품 하면서 살이 빠졌다는데 나도 기대하고 있다”며 웃어 보이기도.

그는 현재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앞으로 예정된 드라마와 연극만 해도 일년이 훌쩍 지나 그 동안의 공백 기간을 모두 메우고 있는 것이다. 장기적인 플랜도 있다. 어린이재단 합창단을 만들어 아이들과 콘서트를 하고, 무대에선 신뢰받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것.
“앞으로 저는 시간이 갈수록 좋은 사람이 될 거 같아요. 지금보다 더 넓은 가슴을 가져서 더 많은 사람들과 정을 나누고, 배우로선 신뢰받는 배우가 될 거에요. 무대가 너무 좋고, 특히 무대에 서기 전까지의 두근거림을 사랑해서 절대 무대를 포기하는 일은 없을 거에요. 그 생각을 하면 엔도르핀이 돌고 에너지를 받으니까 천상 연기가 천직이겠죠?”
충전 끝에 돌아온 그는 웃고 있었다. 관객 앞에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선 김선경은 2008년 도나가 되어 무대 위를 거닌다. 가장 ‘김선경’다운 모습으로 말이다.



글 : 송지혜(인터파크ENT song@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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