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4대 뮤지컬 중 하나로 꼽히는 <레미제라블>을 과연 한국에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그간의 의문과 기대가 폭발적인 환호로 돌아온 지난해였다. 2012년 11월부터 2013년 9월까지 근 1년 동안의 장기 공연에 한국어로 처음 선보인 <레미제라블>은 관객과 배우 모두에게 벅찬 감동을 안겨주었고, 제9회 골든티켓어워즈 뮤지컬부문 남자배우상을 수상한 정성화는 누구보다 남다른 기억으로 무대를 온 몸과 마음에 각인한 사람 중 하나일 것이다.

“제가 공연한 횟수만 240회가 넘을 거에요. 좋은 기억과 추억이었고 배우로서 한 단계 발돋움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너무나 힘들었어요. 이렇게 고음이 많은 넘버의 공연을 원캐스트로 하는 건 정말 무리구나, 싶었죠. 목도 약간 상해서 앞으로 계속 뮤지컬 배우를 하려면 당분간은 큰 소리 지르는 일 없이 살아야 할 것 같아요.(웃음)”

올해로 데뷔 20년, 뮤지컬 배우로서 10여 년의 시간을 보내온 그는 <레미제라블> 장발장 역을 소화하며 ‘공연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 더욱 생각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무대는 즐기는 곳이지 스트레스를 받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을 하는데, <레미제라블>을 하면서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무대 위에서 뭘 못하는 걸 스스로 굉장히 싫어하거든요. 몇 개의 음이 잘 올라가지 않아 목이 상하기도 했고, 공연 중에 꾸준히 레슨을 받아 나중에는 좋아지는 것을 느꼈지만 하다 보니 ‘내가 이걸 왜 할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 가장 크게 꼽히는 단어가 ‘행복’이었어요. 예전엔 사람들이 제 공연을 보고 박수쳐 줄 때, 날 인정해 줄 때 행복하다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무대 위에서 하는 공연 자체에 행복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제가 하는 공연의 본질을 깨우치는 일종의 성찰이 아닐까, 앞으로는 연기의 본질, 거기에 초점을 맞춰서 공연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막연하기만 했던 꿈의 작품을 겪어내는 진통은, 그에게 작품 본질에 더욱 가까이 하고자 하는 깨달음을 주었다. 앞으로도 배우 정성화의 이름에 신뢰를 더할 관객들은 많을 것 같다.
“많은 분들이 제 공연을 봐 주시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 분, 한 분이 제 공연에 만족을 느끼실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100%의 관객들을 만족시켜드리진 못하겠지만, 100%에 준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상을 받은 사람에 준하는 책임감을 가지는 배우가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지금 그녀의 이름을 제하고 한국 뮤지컬 배우를 논할 수 있을까. 2010년, 2012년에 이어 지난해 골든티켓어워즈 티켓파워상 여자 뮤지컬배우 수상의 영예는 옥주현의 몫이 되었다. <황태자 루돌프>를 시작으로 <레베카> <엘리자벳> 그리고 <위키드>까지 흥행과 평단의 호평까지 함께 안고 힘차게 달려온 2013년이었다.

“<레베카>가 그렇게 잘 될 거라 생각을 못했어요. 스릴러라는 장르를 많은 분들이 좋아하실 수 있을까, 의문점도 있었고요.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사랑을 받아서 더욱 부담도 커졌고, (유)준상이 오빠, (오)만석이 오빠 등 많은 분들이 잘 이끌어 주셔서 팀워크도 아주 좋았어요.”

<위키드>는 많은 여배우들을 비롯, 옥주현도 갈망하던 무대였다. 지난해 12월부터 지금까지 초록마녀 엘파바로 변신하며 오랜 꿈을 이루고 있는 그녀이나, 그 꿈을 이뤄가는 발걸음은 ‘무사히 진행되는 공연’을 위해서만 겸손하게 내딛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게 공연이고, 공연은 라이브니까 당일에 무슨 사고가 일어날 지 모르잖아요. 모든 것이 순조롭게 돌아가는 게 당연하지 않을 수 있어요. 그런 불안한 경우의 수가 없이 공연이 잘 진행되는 것, 그게 지금 저의 가장 큰 바람이에요.”

뮤지컬 배우로 새로운 무대에 선 지 9년 째. 잠깐의 도전으로 시작한 일이 아니었기에 여전히 무대를 향한 그녀의 호흡은 조바심을 모른다.
“주변의 여건이 되고, 스스로 많이 발전이 된다면 계속 뮤지컬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언제나 했어요. 뮤지컬이라는 것 자체가 너무나 큰 다른 세상이었기에 감히 내가 정상을 향해 달려야겠다는 생각은 못했고, 지금도 그런 마음은 결코 없어요. 제가 잘 쓰임을 받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떤 작품이든 좋아요.”



“배우 말고는 해 본 게 없어. (내가) 몰라, 세상을.(웃음)”
tvN <꽃보다 할배>의 폭발적인 인기 못지 않게 배우 신구는 2013년 연극 무대에서 큰 활약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연극 <안티고네>의 타이틀롤을 맡아 일흔 여덟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강한 카리스마와 무대 장악력을 선보였으며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에서는 말기 암 환자로 죽음과 맞닿은 아버지 역을 온몸으로 연기, 많은 관객들의 가슴을 울리며 전석 매진을 기록하기도 했다.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는 세대를 막론하고 다 같이 볼 수 있는 작품이지. 젊은 사람은 젊은 사람대로, 혹 죽음을 앞둔 사람은 작품 속 인물을 보면서 어떻게 죽음을 정리해야겠다,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어. 공연을 하다 보면 객석 볼 정신은 없지만 훌쩍거리는 소리는 들리더라고.”

1962년 연극 <소>로 데뷔한 이후 50년 넘게 배우의 길을 걸어온 그에게도 수 많은 굴곡과 부침은 있었으리라. “죽지 않고 살아 있으니까 했지.(웃음) 살아 있다고 배우를 계속 할 수는 없는 거야, 나를 쓸 사람이 있어야 하지.(웃음) 멀리서 산봉우리를 보고 목표를 정하고 산을 오르기 시작해도, 가다 보면 정상이 안 보일 때가 있어. 그리고 중간쯤 갔다가 내려와서 다시 봉우리를 확인한 다음에 다시 오르는 경우도 있고. 거창한 계획이 없다고 해도 하루하루에 충실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게 중요한 거지.”

올 2월 말부터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에서 그를 다시 만날 수 있다. “우리는 이제 잘 마무리 하는게 중요해, 종착역이 곧 오니까. 그걸 두려워하지 말고 담담하게 맞아들일 수 있어야 하지”라며 80여 년을 살아온 한 사람으로서 삶을 순리에 맡기는 지혜와 “배운 게 도둑질이니 작품과 배역을 찾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환하게 웃는 배우로서의 모습이 함께 배어나온다. 그가 무대에서 열연 그 이상의 무언가를 관객들에게 선사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예술이라는 건 결국 사람들 마음을 순하고 아름답게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내가 하는 연극을 보고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고 웃음을 짓는다면 난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연극부문 여자배우상을 수상한 김혜자의 이야기에는 듣는 이의 자세를 수굿하게 만드는 부드러운 힘이 있었다. 올해로 연기 경력만 52년인 대배우인데도 여전히 '능숙해지지 않으려' 경계하는 자세가 그녀를 더욱 빛내는 듯 했다. "나는 오래 해서 능숙해지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그럴 때는 나한테 '넌 지금 잘 하고 있지 않아'라고 해요. 어제 몰랐던 걸 오늘 알고 또 오늘 몰랐던 걸 내일 알아가면서 하루하루 발전해가는 거, 그게 공부고 또 연극의 매력인 것 같아요."

김혜자는 지난해 <오스카, 신에게 보내는 편지>로 6년 만에 연극 무대에 올랐다. 백혈병에 걸린 소년 '오스카'를 비롯해 극중 1인 11역을 맡아 펼치는 이 모노드라마는 무척 외로운 작품이었다고. "모노드라마가 되게 외롭더라고요. 나 혼자 하기 때문에 어떤 때는 무대에서 내려와도 분장실에 얘기 나눌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그러면 옷 갈아입고 갈 때 약간 쓸쓸해요. 그래서 오늘 잘 했어, 하고 내가 나를 칭찬해주기도 해요."

하지만 그 쓸쓸한 무대는 동시에 큰 기쁨과 보람도 가져다 주었다. "보신 분들이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연극이다, 그 동안 아무것도 아닌 일에 울었던 게 창피해진다'라고 하세요. 백혈병 아기들을 진료하는 어떤 의사선생님은 '내가 만났던 아이들이 저런 생각을 하며 죽어갔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너무 눈물이 난다'고 하시고. 각자 자신이 하는 일을 연극에 비춰보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내가 이 연극을 하기를 참 잘했구나, 그런 생각을 해요."

"사람이 운다는 건 마음이 순해졌다는 뜻"이기에, 울고 웃는 관객을 볼 때마다 참 행복하다는 그녀는 힘이 있는 한 연극을 하겠다고 말한다. 올해도 그녀의 무대는 이어질 예정이다. "지방공연도 있고, 충무아트홀에서도 (공연을) 해야 하고. 난 연극 끝날 때까지는 아무것도 안 한다고 했기 때문에 우선은 이걸 꼭 붙들고 할 거에요. 그 다음에는 또 무얼 하게 될지 모르지요."

 

 "2013년에는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연말에 그 동안 정리되지 않았던 일들이 다 정리되어 좋았어요. 올해는 청말띠의 해인데 제가 말띠라서 시작부터 느낌이 좋네요. 게다가 이렇게 상도 받으니 정말 좋은 출발을 하는 것 같아요."

2년 연속 클래식 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이루마는 "사실은 음악상을 받아야 되는데"라며 쑥스럽게 웃으면서도 뿌듯한 표정이었다. "2013년엔 공연밖에 기억에 안 남았다"고 할 만큼 이루마는 2013년 여러 차례 공연을 통해 전국 곳곳의 관객들을 만났다. 작년 봄에는 <기억에 머무르다> 공연을 펼쳤고, 가을부터 현재까지는 정규 8집 발매를 기념하는 <블라인드 필름>을 열고 있다. 이번에는 관객들이 저마다의 추억 여행을 통해 자신만의 영화를 한 편 그려보도록 특별한 공연을 마련했다고.

"<블라인드 필름>이 존재하지 않는, 볼 수 없는 영화를 뜻하거든요. 관객 분들이 어떤 영화를 한 편 찍는다고 생각하고 각자 자신만의 시간여행을 떠나고, 저는 그 영화의 배경음악을 연주해 드리는 컨셉이에요. 8집에 담긴 신곡들을 위주로 준비했는데, 생소한 음악이라도 각자 자신만의 이야기를 상상하며 듣다 보면 더 공감하고 교감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악기도 좀 더 추가됐고요."

지난해 라디오 진행을 맡아 MBC연예대상에서 가요부문 신인상을 수상하기도 한 그는 올해 역시 다양한 작업을 이어갈 예정이다. "봄이 되기 전까지는 가요작업을 계속 해서 새로운 곡을 발표할 계획이고, 웹툰을 원작으로 한 <고양이 장례식>이라는 영화의 음악감독을 맡게 됐어요. 강인, 박세영씨가 주인공인 영화인데, 제 영화음악 입봉작이 됐네요. 드라마 음악도 얘기 중인데 좋은 결과가 있으면 좋겠어요."

잠시 짬을 내서 여행도 가고 싶다는 그는 마지막으로 지극히 '딸바보'다운 계획을 공개했다. "얼마 전에 제 딸이 TV에서 남자 연예인들의 복근을 보고 '이모부(권상우)는 저거 있지? 아빠는 없지?' 하더라고요. 그 말에 충격을 받았어요. 이제 윗몸 일으키기를 해서 복근을 좀 키워볼까 생각 중입니다(웃음)."

 

 "2013년 골든티켓어워즈 인기상,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욱 열심히 하는 모습 보여드릴게요." 어느새 아이돌 가수뿐 아니라 어엿한 뮤지컬 배우로서도 자리를 잡은 김준수는 지난해 다시 <엘리자벳>의 '죽음'을 맡아 더욱 노련한 연기를 펼쳐 보였고, 겨울에는 창작뮤지컬 <디셈버:끝나지 않은 이야기>(이하 <디셈버>)로 또 다른 변신을 시도했다.

"2013년은…아무래도 지금 <디셈버>를 하고 있다 보니 이 작품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두 번째 창작뮤지컬이기도 하고, 제가 이제까지 해보지 않은 캐릭터와 이야기라 여러모로 배워가는 게 정말 많거든요. 공연하면서 매번 가슴이 뜨거워지고, 관객 분들의 반응에도 하루하루 힘을 얻고 있고요."

이번에 그가 <디셈버>에서 맡은 '지욱'은 <엘리자벳>의 '죽음'과는 달리 생생히 살아있는, 현실 속의 인물이다. 잊지 못할 사랑의 아픔을 노래와 연기로 표현하는 것도, 1막과 2막 사이 20년의 시간차를 두고 변모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도 그에게는 여러모로 큰 공부가 되고 있는 듯 했다.

"<태양왕>이나 <마리 앙투아네뜨>도 기대되고, <드라큘라>도 궁금해요. 재미있을 것 같은 작품이 많더라고요." 또다시 많은 새로운 작품들이 무대에 오를 2014년, 그는 배우로서뿐 아니라 틈틈이 공연을 즐기는 관객으로서도 새해에 대한 큰 기대감을 표했다. 그 자신은 또 어떤 무대에서 어떤 인물로 분할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글: 매거진 플레이디비 편집부
사진: 기준서(www.studiochoon.com), 배경훈(Mr.Hodol@Mr-Hod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