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윅> 심야공연을 앞둔 금요일 저녁, 연습을 위해 미리 극장에 도착한 송용진을 만났다. 릴레이공연 방식으로 역대 헤드윅 배우들이 한달씩 오르는 이번 공연에서 송용진은 7개월간 주 2회의 심야공연을 맡았다. 지난 1~3시즌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헤드윅>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송용진이 있는 것이다.
‘송용진= 헤드윅’이란 등식이 배우로서 부담스럽지 않냐고 하자 ‘좋은데. 평생 그렇게 불렸으면 좋겠다’라고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그에게서 이 작품에 대한 애정을 의심할 틈 같은 건 없어 보인다.

7개월 간의 심야공연을 맡았다. 짧지 않은 기간인데 출연을 결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주 2회씩 심야공연을 한다는 게 사실 쉽진 않다. 그래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야 이 작품에 의리를 지키는 것 같다. 그리고 지금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시즌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일단 드라마가 압축이 돼서 스피디하게 전개 된다. 음악이야 그대로지만, 내가 가장 많이 바뀐 거 같다.

스스로 어떻게 바뀌었다고 보나.
그냥… 헤드윅을 더 잘 표현하는 거 같다. 1~4시즌을 하고 있는데 이번에 제일 잘 하고 있단 생각이 든다. 지난 시즌이 끝난 이후로 다른 작품들도 많이 했지만 그 동안 헤드윅을 했던 게 어디 도망가진 않았다. 지난 시즌에 놓쳤던 것들, 못했던 것들을 이번 시즌에 하고 있다. 이지나 선생님이 연습하는 걸 보시더니 정말 좋다고 해주셨다. 첫 공연 보시고 ‘넌 됐다’ 이러면서 아예 안 오신다(웃음). 그만큼 믿어 주셔서 감사하다. 배우란 직업이 이게 참 좋다. 머물지 않고 발전할 수 있는 거.

오는 8월에 송용진의 <헤드윅>이 200회 공연을 맞는다. 그 원동력은 무엇인가.
석준이형이 8월 초에 100회를 맞고, 다현이가 이번 시즌에 100회를 맞았으니 다른 배우들의 두 배를 공연한 거다. 헤드윅은 나에게 특별하다. 이 작품은 2002년 영화로 먼저 만났다. 그리고 내가 힘들고 방황하던 시절에 큰 자극이 되고 용기를 줬다. 

이 작품의 어떤 점에 끌렸나.
오리진 오브 러브(The Origin of Love)가 '플라톤의 향연'에 아리스토파네스의 연설인 거 아나. 마침 대학 수업에서 플라톤의 향연을 배우고 있을 때 이 영화를 봤다. 굉장히 충격적이고 노래 하나하나가 가슴에 와 닿았다. 헤드윅이 모든 걸 해탈하듯 도로로 나가는 장면을 보고 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방황하던 시절 방향을 제시해 줬던 거다. 이후로 완전히 마니아가 돼서 헤드윅 전도사를 자청했다. 우리나라에서 아무도 모를 때 주위 사람들에게 DVD를 빌려주면서 이게 뮤지컬을 영화로 만든 거라고 난리를 치고 다니곤 했다(웃음).

그러다 우리나라에서 뮤지컬로 만든다는 소식을 듣고 기뻤겠다.
당연하다. 우리나라에서 뮤지컬로 한다면 헤드윅이 되는 게 내 목표였다. 그런데 생각보다 빨리 한국에서 하더라. 정말 열심히 준비해서 오디션을 봤고 합격했다. 그리고 내 삶이 또 한번 바뀌었다. 뮤지컬 배우로서 인정을 받게 해줬으니까, 헤드윅은 내 삶을 두 번 바꿔준 작품이다. 한번은 방황에서 이끌어줬고, 한번은 뮤지컬 배우로서 자리잡게 했다.

팬들에게 송용진=헤드윅이란 이미지가 굳어지는 게 부담스럽지 않은지.
그렇지 않다. 평생 그렇게 불렸으면 좋겠다(웃음). 헤드윅은 그냥 나의 출세작 이상이기 때문이다. 내 팬의 70% 이상이 헤드윅 때문에 생긴 분들이다. 그래서 사람들한테 문자 보낼 때 그런다. ‘저의 출세작 헤드윅 시즌 4가 시작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합니다’라고(웃음). 나랑은 인연이 참 깊은 공연임이 틀림없다. 심지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영화시사회에 당첨됐는데, 그게 헤드윅이었다. 무언가에 당첨된 건 지금까지 그게 처음이었다.

지난해와 올해 미첼 방문 때 감회가 남 달랐겠다. 
작년에는 거의 스토커였다(웃음). 너무 좋아서 (기자간담회) 인터뷰 하다 울기까지 했다. 석준형이 그걸로 아직도 놀린다. 그냥 그 사람을 만났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았다. 마치 80년대 마이클잭슨을 만난 팬 같았다고나 할까. 미첼을 만나서 공연도 같이 보고 술도 마셨다. 내가 자기를 좋아한다는 걸 아니까 날 더 챙겨주고 예뻐했다(웃음).

공연 초반 게이로 오해받은 적이 있다고 들었다.
처음에는 게이가 아니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만약 그랬다면 성격상 밝혔을 거다. 그런데 여자를 너무 좋아해서...(웃음) 사실 헤드윅 하기 전에는 게이나 트랜스젠더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지만 공연을 하면서 없어졌다. 공연을 위해 트랜스젠더 클럽에 자주 갔는데, 몇몇 분들은 나를 알아보고 반겨주곤 했다. 한번은 진짜 트랜스젠더 두 사람이 내 공연을 보러 온 적이 있다. 공연을 하면서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끝나고 나갈 때 환하게 웃으며 행복해 하는 걸 봤다. 정말 감사했다.

4번째 시즌까지 오면서 에피소드도 많을 거 같은데.
제일 문제가 되는 건 의상, 메이크업 등이다. 그 중에서도 반복적으로 문제가 되는 건 속눈썹. 땀이 많이 나니 속눈썹이 잘 떨어진다. 그게 떨어지면 그날 공연이 잘 안 풀린다. 벌거벗은 느낌이 든달까. 여자의 마음을 느끼면서 산다(웃음).
내용이 내용이다 보니 거부감을 가지는 관객분들도 계신다. 심지어 석준이형 공연 때는 한 남자분이 문들 꽝 닫으며 나가버린 적이 있다. 회사 단체 공연으로 오셨다가 ‘이런 반사회적인 공연을!’ 이러면서 나갔다고 한다.
이외에도 관객들 에피소드는 많다. 한번은 공연을 하려고 무대에 들어섰는데, 앞에 헤드윅이 앉아 있는거다(웃음). 코스프레를 한 일본 관객이었다. 그 다음날은 이츠학으로 분장해서 앉아 있더라(웃음).

이 작품은 수많은 헤드헤즈들이 헤드윅을 응원하는 걸로 유명하다.
굉장히 많은 분들이 있다. 인터넷만 봐도 몇 만 명은 된다. 내 팬 중에서도 헤드윅을 100번 이상 본 분들이 꽤 있으니까. 시즌 1때 인터넷에 ‘이제 겨우 헤드윅을 여섯번 본 헤드헤즈 후보입니다’라고 올라온 걸 보고 정말 놀랐다. 이 사람들에게 10번은 봐야 헤드윅 좀 봤다고 하는 거 같다. 오죽하면 10번 공연보면 한 번 무료가 있겠나. 그렇게 본 분들이 꽤 많다. 헤드윅 마니아들은 특히 대단한 거 같다.

그 중에서 송용진의 헤드윅을 사랑하는 사람이 특히 많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다른 배우들도 헤드윅을 진심으로 좋아한다. 하지만 헤드윅을 연기했던 아홉명 중에 가장 헤드윅을 사랑하는 사람은 누굽니까 물으면 나라고 대답할 거다. 다른 좋은 기회도 포기하고 헤드윅을 한다. 그게 공연에서 묻어나올 거다.

앞으로 얼마나 계속 헤드윅으로 설 것으로 보나.
지금 마음 같아서는 이번 시즌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 곧 200회를 맞을 만큼 많이 무대에 서서 오래 쉬었다 해도 될 것 같다. 지겨워서가 아니고, 대한민국 남자배우들 중에 헤드윅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진짜 많다. 내가 안 해도 되겠다라는 생각이 어느 순간 들었다. 이번 시즌을 후회 없이 해보고 헤드윅을 당분간 쉬어볼까 한다. 물론, 마음이 약해질 수도 있지만(웃음). 7개월 동안 불 한번 지르고. 확 불태우고 싶다. 재도 남기지 않게.

이제 뮤지컬 배우 10년 차다. 헤드윅의 꿈은 이뤘고, 다른 꿈이 있다면.
뮤지컬 중 가장 하고 싶은 역할이 헤드윅, 렌트, 마지막이 록키호러쇼 였다. 앞에 두 개는 했고, 록키호러쇼에 프랑큰퍼트로 곧 설 예정이다. 뮤지컬 배우로서의 꿈은 다 이룬 게 아닌가 한다. 최근에는 작품을 하나 구상하고 있다. 극/곡/연출까지 내가 하는 소규모 저예산 락 뮤지컬이다.

나름 틈새시장을 파고 든 건가(웃음)
투자를 안 받고 하려니 저예산이 될 수 밖에 없다(웃음). 나는 무엇을 만들어도 인디스럽다. 밴드도 인디고, 내가 만드는 뮤지컬도 인디가 될 거다. 독립영화 중에 백만원 영화제 아나? 난 천만원 뮤지컬을 만들려고 한다(웃음).
요즘 우리나라에 창작뮤지컬이 많이 올라가고 있지만 내가 추구하는 음악이 등장하는 작품이 별로 없다. 락 뮤지컬 말이다. 락밴드로 20년을 활동했고, 뮤지컬 배우로 10년을 무대에 섰으니 이 경험을 살려 송용진표 초저예산인디뮤지컬을 만들 예정이다. 시놉시스도 완성됐다. 거의 노래로 이루어진 B급코미디가 되지 않을까(웃음). 내년 하반기에는 작은 클럽에서 꼭 올려보고 싶다.

솔로앨범도 나온다.
‘유라’라는 이름으로 7월 말에 4곡짜리 싱글이 나온다. 2달 안에 정규앨범 1집도 나올 예정이다. 쿠바 밴드에서 하고 싶은 음악이 있고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음악이 따로 있다. 쿠바보다는 덜 강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곡들이다. 많이 팔려야 할텐데(웃음)

마지막으로 헤드윅 관객들에게 한 마디.
이번 시즌 많이 사랑해 주셨으면 한다. 그리고 이번에 오디션에서 합격한 이주광군이 합류하는데 막내 잘 거둬주시고 예뻐해 주셨으면 좋겠다. 주광이 연습하는 거 보면 나 처음 할 때가 생각난다. 나는 이제 퇴기다. 이지나 선생님이 연습하는 거 보시더니 ‘아휴 저 퇴기들’ 그러시더라(웃음).

글: 송지혜 기자(인터파크INT song@interpark.com)
사진: 다큐멘터리 허브(club.cyworld.com/docuher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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