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한류 뮤지컬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2010년이다. 당시 동방신기 출신의 김준수가 출연한 뮤지컬 <모차르트>가 나오면서 한류 뮤지컬에 전환점을 가져왔다. 동방신기의 일본 팬들은 앞다퉈 <모차르트>를 보러 서울에 왔고, 이것은 다른 한류 스타의 뮤지컬 공연에도 영향을 미쳤다. 한국 대형 뮤지컬 제작사들은 이제 해외 팬에게 인기있는 K팝 스타나 한류 배우를 캐스팅하는 것을 당연시하게 됐다. <모차르트> 이후 일본 공연 기획사들은 한류 뮤지컬이 새롭게 수익을 낼 수 있는 분야라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한국 한국 공연 기획사 입장에서도 규모가 큰 일본 시장을 개척해 매출을 확대할 수 있다는 것을 반기고 있다. 다시 말해 한일 양국의 공연 기획사들의 이해가 맞아 떨어지면서 한류 뮤지컬은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 상태다.  

팬덤뮤지컬을 만든 김준수의 <모차르트>

2009년 8월부터 불거진 동방신기와 당시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의 분쟁 끝에 김준수, 박유천, 김재중은 JYJ를 결성했다. 하지만 한국 연예계의 최대 파워인 SM의 영향력 때문에 이들이 무대에 서는 것은 한동안 어려워 보였다. 실제로 일본에서 JYJ의 공연이 지난해 겨우 성사됐으며, 한국에서도 가수로서 TV 출연은 요원해 보인다.   
따라서 <모차르트>는 아시아권에 강력한 팬덤을 형성하고 있던 동방신기 팬들에게 노래하는 김준수를 실제로 볼 수 있는 귀중한 기회였다. 당시 한국관광공사는 <모차르트>를 계기로 일본 후지TV 계열사인 산케이 리빙신문과  함께 ‘한국 뮤지컬 관광 투어’ 프로그램을 기획해 팬덤 관광을 더욱 부채질했다. 
사실 김준수의 <모차르트>가 팬덤 뮤지컬의 시초는 아니다. 2007년 PMC의 소극장 뮤지컬 <뮤직 인 마이 하트>에 그룹 신화의 앤디가 출연한 적이 있다. 당시 앤디를 보러 대학로에 나타난 일본과 중국 팬들을 보며 한국 공연 제작사는 아이돌 마케팅의 위력을 깨닫게 됐다. 

이후 2008년 YG 소속인 빅뱅의 승리가 서울시뮤지컬단의 <소나기>, 대성이 설앤컴퍼니의 <캣츠>에 출연해 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빅뱅이 아직 아시아권엔 열렬한 팬덤을 구축하지 못했던 상태라 해외 팬의 관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여기에 2008년 SM 슈퍼 주니어의 김희철과 강인이 출연한 뮤지컬 <재너두>와 2009년 승리가 다시 출연한 뮤지컬 <샤우팅>도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 때문에 한국 뮤지컬계에선 아이돌 마케팅이 다소 주춤하는 듯 했으나 <모차르트>를 계기로 다시 불붙게 됐으며 이젠 대세를 이루고 있다. 

2011년 창작뮤지컬 <천국의 눈물>은 김준수의 파워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줬다. 당시 일본을 비롯해 아시아 각국에서 김준수 팬들은 김준수와 관련된 MD상품을 싹쓸이해가는 등 스타 마케팅에 토대를 둔 새로운 수익 모델을 보여줬다.

한류 스타의 뮤지컬 캐스팅 붐은 일본 진출을 노리는 한국 뮤지컬에도 바로 반영됐다. 2010년 도쿄에서 공연된 창작뮤지컬 <카페인>은 한국 드라마 제작사 SH크리에이티브웍스가 강지환을 배우 겸 공동제작자로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다. 강지환은 드라마 <커피하우스> <굳세어라 금순아> <쾌도 홍길동> 등이 일본에서 방영되면서 새로운 한류 스타로 급부상했던 때라 한류 팬들을 도쿄 글로브좌로 불러모았다. 이 작품은 앞서 일본에서 공연된 한국 뮤지컬이 길어봤자 도쿄에서 1주일 정도 공연했던 것에 비해 장기간인 23일간 공연됐다.

한국 뮤지컬과 손잡은 일본 공연 기획사들 

일본 공연 기획사들이 한국 뮤지컬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이즈음이다. 한류 붐이 드라마에서 K팝까지 확산되며 팬층이 넓어진데다 한국으로 뮤지컬을 보러 가는 일본 팬들의 수가 빠르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지난해 인터파크와 서울시공식관광정보사이트인 아이투어서울에서 판매된 공연 티켓은 35억원이었는데, 올해 이미 상반기에 그 수치를 훨씬 넘어섰다. 여행사 등 대행사를 거친 티켓은 집계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전체 금액은 훨씬 클 것으로 보인다.   

2011년이 되면 그동안 일본 무대에 산발적으로 오르던 한국 뮤지컬이 잇따라 공연된다. 이 가운데 일본에서 영화 및 가부키 제작사로 유명한 쇼치쿠가 <궁>과 <미녀는 괴로워> 등 2편의 공연에 참여한 것이 눈에 띈다. 두 작품 모두 쇼치쿠의 초청 방식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한국 제작사는 개런티를 받는 형태였다.  

뮤지컬 <궁>은 동명 드라마의 제작사인 그룹에이트가 2010년 초연한 작품으로 동방신기의 유노윤호가 왕세자로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일본에서는 6월 교토 미나미좌와 12월 도쿄 국제포럼홀C에서 공연됐는데, SS501 출신의 김규종과 초신성의 성모가 왕세자로 출연해 관객들의 환호를 받았다. <궁>은 올해 8월 도쿄 유포트홀에서 재공연될 예정이다. 
가부키 전문 제작사로 유명한 쇼치쿠가 한류 뮤지컬 공연에 뛰어든 것은 젊은 관객을 붙잡아야 된다는 위기의식에서 나온 것이다. 가부키는 전통예술 가운데 유일하게 상업화에 성공했고 지금도 큰 인기를 누리지만 관객층이 거의 중년층 이상이다. 따라서 이대로 가면 지금의 젊은 관객이 중년 이상이 됐을 때 외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해외 뮤지컬의 경우 웬만한 대작을 이미 시키와 토호가 선점하고 있는 것도 쇼치쿠가 한국 뮤지컬에 눈을 돌리게 한 요인 가운데 하나다. 

쇼치쿠는 국내 최대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CJ엔터테인먼트와도 손잡고 뮤지컬 <미녀는 괴로워>를 12월 오사카에서 공연했다. 일본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카라의 박규리와 초신성의 김성제가 출연해 화제를 모은 이 작품은 또다른 문제로도 연일 일본 언론을 달궜다. 바로 뮤지컬 <미녀는 괴로워>에 대해 일본 출판사 고단샤(講談社)가 원작 만화의 저작권 침해라며 공연금지가처분소송을 도쿄지방법원에 냈기 때문이다. 
당초 뮤지컬이 원작으로 삼은 동명영화는 만화 <칸나씨, 대성공입니다(한국어 번역본 제목은 미녀는 괴로워)>의 저작권을 사온 것이다. 일본에서 영화가 개봉될 때도 <칸나씨, 대성공입니다>였다. 영화 제작사이자 뮤지컬의 공동제작사인 KM컬처는 “뚱뚱하고 못생긴 여자가 전신성형을 한다는 것 외엔 스토리가 원작과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저작권 침해가 아니다”라고 맞섰고, 법원은 KM컬처의 손을 들어줬다. 비록 한국 측이 소송에서 이겼고 수익 면에서 좋은 성과를 거뒀지만 <미녀는 괴로워>를 둘러싼 저작권 논란은 일본의 반한류 세력을 자극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토호, 쇼치쿠와 함께 일본의 대형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하나인 호리프로는 한국 뮤지컬헤븐의 <쓰릴미>를 일본어판으로 선보였다. 9월 도쿄 롯본기에 있는 소극장 아틀리에폰테인에서 선보인 이 작품은 일본 신국립극장 예술감독을 지낸 유명 연출가 쿠리야마 타미야가 연출을 맡았으며 올해 3월 같은 극장에서 재공연됐다. 

<빨래> 등 한국 뮤지컬의 일본 진출 방식 다양화

올 들어서는 일본에서 한류 뮤지컬의 흐름이 점점 가속화돼 작품을 일일이 거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게다가 일본에서 공연되는 방식도 점점 다양해졌다. 
지난 2월 도쿄와 오사카에서 공연된 <빨래>는 창작뮤지컬로는 <사랑은 비를 타고>에 이어 두 번째로 라이선스 계약을 맺어 일본에 진출했다. 일본 공연제작사 퓨어메리의 호사카 마리코 대표가 대학로에서 <빨래>를 관람한 뒤 명랑씨어터 수박 측에 적극적으로 제안해 성사됐다. 퓨어메리는 티켓 매출의 8%를 라이선스 비용으로 지불한다. 
<빨래>의 일본 공연이 흥미로운 것은 오리지널 작가 겸 연출가인 추민주가 직접 일본 배우들을 조련한 것이다. 그동안 일본 측과 라이선스 계약을 맺어도 한국 연출가가 연출을 맡았던 적은 없었다. 서울 소시민들의 팍팍하지만 따뜻한 삶을 그린 이 작품은 관객들의 호평을 받아 5월 도쿄 롯폰기의 하이유좌에서 재공연됐으며 오는 8월 미츠코시 극장의 요청으로 또다시 재공연될 예정이다. 

<빨래>를 시작으로 올 한 해 창작 뮤지컬의 일본 진출이 이어지고 있다. 9월 인기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 <파리의 연인>, 10월 DJDOC의 노래로 만든 <스트릿 라이프>, 11월 작곡가 이영훈의 노래로 만든 <광화문 연가> 등이 예정돼 있다. 이 작품들은 한국 배우들이 출연할 예정이다. 또 한국의 원작 드라마의 판권을 사서 일본에서 뮤지컬로 만드는 사례도 등장하고 있다. 4~5월 <커피 프린스>와 7월 <드림하이>는 뮤지컬 <테니스의 왕자>로 유명한 일본 공연제작사 네르케 플래닝이 한국의 CJ엔터테인먼트와 공동제작에 나섰다. 
라이선스 뮤지컬로는 9월 M뮤지컬컴퍼니의 <잭더리퍼>가 도쿄 아오야마 극장에서 공연될 예정이다. 일본 후지TV 계열의 공연제작사인 쿠오라스와 제작비를 공동투자하는 형식이다.  원조 한류스타인 안재욱과 슈퍼주니의 성민 등이 출연할 예정이다. 

이외에 토호가 2월 공연한 <햄릿>은 EMK가 공연한 한국 버전을 일본어판으로 선보였다. 이 작품의 연출을 맡은 쿠리야마 타미야는 <쓰릴 미>의 연출도 맡았다. <쓰릴 미>는 3월 앙코르 공연에 이어 7월 호리프로가 운영하는 은하극장으로 무대를 옮기게 된다. 특히 7월 공연에는 일본 배우 세 팀과 한국 배우 한 팀이 함께 공연하는데, 한국의 김무열과 최재웅이 27회 공연 중 5회를 소화하게 된다. 호리프로는 내년에도 한국 배우팀을 초청할 예정이며, 한국의 뮤지컬헤븐도 내년부터 일본 배우팀을 초청할 예정이다.

현재 극단 시키를 제외한 대부분의 일본의 주요 뮤지컬 제작사들은 한국 뮤지컬의 일본 공연에 관여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의 한류 뮤지컬 붐도 좀더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2006년 시키가 <라이온킹>으로 한국에 진출할 때 국내 뮤지컬계가 반대 성명을 내는 등 논란이 일었던 것을 떠올리면 감회가 새로울 정다. 
다만 아직까지 일본의 한류 뮤지컬은 작품보다는 한류 팬을 의식한 스타 캐스팅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 때문에 한류 팬이 아닌 일반 뮤지컬 팬들 사이에선 한류 뮤지컬에 대한 관심이 아직까지 높지는 않다. 게다가 한류 스타가 출연하는 대형 뮤지컬에 비해 라이선스로 공연되는 소극장 뮤지컬은 큰 주목을 받지는 못한다. 하지만 한국 뮤지컬 배우들의 기량을 인정하는 일본 뮤지컬 팬들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여서 한류 뮤지컬 자체에 대한 관심으로도 연결될 것으로 보인다. 

한류 뮤지컬을 전문적으로 소개하는 일본 잡지들도 나올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유명한 영화 잡지인 ‘키네마 준보’와 대형 출판사인 신쇼칸(新書館)에서 각각 올 여름 잡지를 낼 예정이다. 두 회사 모두 창간호는 파일럿 잡지이긴 하지만 계속 고정적으로 낼 계획이라는 게 일본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끝으로 한류 뮤지컬의 확산을 위해 국내 제작사들에게 일본 팬들의 목소리를 경청할 것을 제안한다. 친분이 있는 일본 공연계 관계자나 팬들과 대화를 나눠 보면 최근 한국에서 공연되는 뮤지컬에 일본어 자막이 들어가서 좋긴 한데 대부분 표현이 이상하다는 지적이 많다. 한국 제작사들이 일본어 자막에 대한 감수를 좀더 신경써야 할 것 같다. 이외에 최근 김준수가 출연한 뮤지컬 <엘리자벳> 티켓이 일본의 공식 판매사이트(Lookkorea)에서 2만7000엔에 팔렸는데, 한국에서도 구하기 어려운 만큼 이해한다는 입장도 있지만 일본 팬을 ‘봉’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불만도 많았다. 한류 뮤지컬의 장기 흥행을 위해 한국 뮤지컬계가 좀더 아이디어를 모으고 정보를 교환하는 자리가 만들어졌으면 한다. 

글/ 장지영(국민일보 기자)
# 일부 이미지 출처 : 각 공연 공식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