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이 끝났다. 박수가 나오지 않았다. 암전된 조명이 켜지고 배우들의 커튼콜이 이어졌다. 그제야 관객들의 박수가 이어졌다. 연극 ‘왕은 왕이다’는 이처럼 작품이 끝나는 지점이 모호하다. 기존의 다른 극과 같이 클라이맥스로 치닫다가 해소되는 그 흔한 구성양식을 갖고 있지 않아서다. 평행선 위를 요리조리 위트 있게 걸어가다가 어느 순간 탁, 하고 멈춰 서는 느낌이다. 연출가 최용훈은 “마지막에 관객들이 박수를 안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연극 ‘왕은 왕이다’는 국내 최초로 소개되는 아랍현대극이다. 세헤라자데가 들려주는 ‘아라비안나이트’를 절묘하게 반전시킨 극의 결말이 특징이다. 서울시극단은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나라들의 현대희곡을 소개하자는 취지 아래 지난해 스페인 작 ‘다윈의 거북이’를 공연했다. 올해는 아랍현대극 ‘왕은 왕이다’를 선보인다.

“러닝타임이 조금 길잖아요? 낯선 이야기니까 이국적인 느낌을 주고자 했어요. 처음엔 여기에 흥미를 갖고 스토리라인을 따라 가다보면 ‘왕자와 거지’나 ‘옹고집전’ 같은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의 원형을 발견하게 돼요. 두 인물이 혼동돼서 바뀌는 것들이요. 우리와 다른 문화권에서도 그런 이야기들이 존재하고 있고, 거기에서 오는 변형적인 재미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 있어서 주변의 권력과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단계들을 거치기를 바랐어요. 연출할 때 이 부분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이번 무대는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아랍문화권의 작품이기 때문에 볼거리가 특히 인상적이다. 신밧드를 연상시키는 의상과 화려한 전통춤 등 눈이 즐겁다. 관객들은 낯선 나라의 문화를 접할 때 느끼는 호기심으로 극을 지켜본다. “아랍권 문화가 우리에게 많이 생소하잖아요. 이야기자체도 아랍의 옛날이야기에서 따왔기 때문에 의상이나 무대장치, 소품 등에서 아랍느낌이 많이 나도록 신경을 썼어요.”

그는 실제 의상을 제작하고, 아랍문화를 재현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고 전달했다. 실제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아랍인들을 만나 인터뷰도 하고, 직접 제작한 소품들을 보여주며 확인에 확인을 거듭했다. “의상 디자이너들도 이런 작업이 처음이다 보니 걱정을 많이 했어요. 고증하고, 자료도 찾고, 제작하는데 있어서 굉장히 어려움이 많았어요. 어차피 아랍이라는 게 이십 몇 개국을 통칭하는 건데 고증을 한다고 했음에도 시대적으로 조금 섞여 있는 것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까지 구하고 찾아낼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해 다 했다고 볼 수 있어요. 기본적으로 아랍권에서 통용되는 디자인과 컬러 쪽으로 신경을 많이 썼죠.”

이 작품을 시작할 때 최용훈 연출의 첫 번째 과제는 아랍어를 한국어로 번안하는 일이었다. 아랍희곡을 전공한 구민란이 번역을 마쳤고, 이렇게 1차적으로 나온 대본을 최용훈 연출이 무대 언어로 조금씩 다듬어 현재 대본이 완성됐다. 연극 ‘왕은 왕이다’는 ‘시니컬코미디’라는 기본 장르를 표방한 작품답게 아랍식 유머가 군데군데 녹아 있다. “아라비안나이트를 보면 정말 뜻밖의 상황이나 어이없는 상황들이 자주 등장해요. 어차피 이 작품이 아라비안나이트에 수록된 이야기기 때문에 우화적이거든요. 그러면서 풍자적인 코미디라고 할 수 있는데 특별히 아랍적인 뉘앙스라기보다는 그 문화에서 빚어지는 코미디가 섞여 있어요. 예를 들어 아랍은 남자보다 여자의 권위가 낮은데 이 작품에 나오는 아부잇자의 아내는 남자를 능가할 정도의 파워나 힘으로 남자를 몰아세우고 목소리가 크죠. 이런 것들이 아랍에서 볼 때는 아이러니한 코미디 코드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연극 ‘왕은 왕이다’는 마지막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다. 모태가 된 아라비안나이트의 원전을 살펴보면 신분을 바꿔 ‘놀이’에 푹 빠져 있던 아부잇자는 궁궐의 현실을 직시하게 되고, 왕의 도움을 받아 원래의 자리(상인)로 돌아간다. 하지만 연극 ‘왕은 왕이다’는 기존의 결말에 전복을 시도함으로써 권력에 대한 풍자를 아끼지 않는다. “극중극의 이야기 흐름은 아부잇자가 왕이 됨으로서 강력한 왕권을 갖고 끝이 나잖아요? 또한 작품 안에는 혁명을 이야기하는 두 젊은이가 등장하지만 말만 할뿐 어떤 것도 실행에 옮기지 않아요. 행동하지 않는 지식인들과 행동하지 않음으로 군림할 수 있는 왕의 모습, 결국은 일반 민중들이 어떤 행위만이 외곡된 구조를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메시지를 이 마지막 장면을 통해 강화시켜보고자 했어요.”

그래서 관객들은 잠깐의 시간동안 고민한다. 익숙한 반전이나 클라이맥스가 없기 때문이다. “작품이 끝날 때 관객들이 ‘이건 뭐지?’라고 생각하고 들여다보게 되는 게 전 오히려 더 맞다고 생각해요. 사실 이 극중극은 풍자코미디기 때문에 그 부분은 즐겁게 봐주시길 바라고, 왕이 바뀌어도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고, 정말 어이없는 사람이 왕이 됐어도 권력을 휘두를 수 있고, 아무도 거기에 대해 말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가 생각해볼 거리가 있을 것 같아요. 즐겁게 보시다가 문득문득 그런 상황들을 떠올리시고 생각하시면서 극장을 나가셨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