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호아킨 코르테스의 ‘라이브’, 2005년 카르멘 모타의 ‘푸에고’, 2007년 아이다 고메즈의 ‘카르멘’ 등 세계적인 플라멩코 스타들의 잇단 내한공연은 한국에서 플라멩코 고정 팬들을 확보해나가기 시작했으며, 2011년 10월 내한 예정인 스페인 국립 플라멩코 발레단(Ballet Nacional de Espana)의 공연도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런데 웬만한 플라멩코 스타들의 춤을 보아온 한국 관객이라면 반드시 놓치지 말아야할 공연이 하나 있다. 스페인 플라멩코의 젊은 피! 로하스와 로드리게스의 춤이다. 앙헬 로하스 (Angel Rojas)와 카를로스 로드리게즈(Carlos Rodriguez)는 플라멩코 남성 듀오라는 독특한 형태로 무용계에 등장, (독자적 활동도 겸하고 있지만) 두 사람이 함께 했을 때 그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 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 2010년 9월 첫 내한 공연을 가진 그들을 만나보았다. 두 사람 모두 자리에 나왔지만 인사를 마치자 심층적 인터뷰를 위해 로드리게스 혼자 대화에 응하고 싶으며, 그의 이야기가 곧 두 사람의 이야기라고 했다. 필자가 느낀 인상에서도 고전적이고 과묵한 로하스 보다, 날렵하고 현대성을 가진 로드리게스가 인터뷰에 더 적합한 쪽이었다.

90년대 후반 이 둘의 춤을 처음 보았을 때 잘생긴 미소년 둘이 거울처럼 똑같이 추는 춤에 매료되었었다. 시간이 흘러 두 사람의 체형과 춤이 그 무게를 달리하며 개성을 드러내자, 같은 춤을 다른 색으로 즐긴다는 또 다른 볼거리로 다가왔다. 사실 두 사람은 처음부터 서로의 춤이 달랐다고 말한다. 통학 열차에서 만나 10대에 데뷔하며 춤 인생 대부분을 함께 해온 두 젊은이는 수도 없이 싸우고 부딪히면서도 떨어질 수 없는 샴쌍둥이와 같은 관계를 하고 있었다.

이들은 1994년 함께 '전 스페인 플라멩코 최우수 무용가상'을 수상한 것을 계기로 이듬해 '누에보 발레 에스파뇰'을 설립, 현재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며 플라멩코 콤비로 활동하고 있다. 2003년 초연된 뮤지컬 ‘돈 주앙’의 안무와 춤을 맡으며 한국에도 그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지만 아직 그 팬들이 많지는 않다. 섹시와 관능뿐인 호아킨 코르테스나, 전통을 고집하는 카르멘 모타와 비교하자면, 조명과 악기조합의 다이내믹한 현대성, 장면구성의 속도감과 밀도 등 현대 관객의 욕구를 이해하고 있는 이 당돌한(?) 두 젊은이의 무대가 더 매력적일 것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나 이들의 무대가 열린다면 망설이지 말고 달려가시길 권한다.

(다음은 월간<춤과 사람들> 2010년 10월호에 게재된 글의 일부이다.)
 
‘누에보 발레 에스파뇰(Nuevo Ballet Eapanol)’은 어떤 무용단인가요?
- 저와 제 춤의 동반자 앙헬 로하스(Angel Rojas)가 1995년 창단한 무용단으로, 전통적인 플라멩코 정신과 본질을 바탕으로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플라멩코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작은 무대에서 솔로위주였던 플라멩코를 군무중심으로 대형 무대화 시켜 민속무용에서 예술춤으로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저희 공연은 “플라멩코가 전통을 뛰어 넘어 세계화로 가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최고 플라멩코 및 스페인 무용단상(1999)’, ‘빌라드 마드리드 최고 무용상(2005)’ 등 스페인 내 권위 있는 시상식에서 여러 차례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다른 플라멩코와 어떤 점이 다르다고 생각하나요?
- 우리 무용단은 플라멩코의 현대화를 가장 큰 특징으로 꼽습니다. 춤에 있어서는 전통 플라멩코에 다른 춤들을 영입해서 표현을 극대화 시킨 점이 그렇고, 음악적으로는 전통 플라멩코 연주에 첼로, 드럼, 플롯 등의 악기를 추가한 것이 다른 플라멩코 공연과는 다른 점입니다. 의상도 현대적으로 해석한 것이 많고, 조명이나 무대미술도 대형화, 현대화 시킨 점이 우리 무용단의 경쟁력이라 생각합니다.

두 명의 남성이 주역인 체제가 특이하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 그렇습니다. 두 남성이 TOP을 이루는 플라멩코는 흔치 않은 형식이죠. 그것 때문에 유명해졌다고도 할 수 있어요. 이런 형식은 서로 부족한 점을 채워줄뿐더러, 두 스타일을 동시에 보여주는 것으로 관객의 취향에 있어서도 더 넓은 영역을 수용할 수 있습니다. 관객은 우리 둘 중 좋아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되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이 각자 활동하기도 하나요?

- 물론입니다. 저는 스페인 국립발레단 출신이고 로하스는 정통 플라멩코 무용수로 ‘누에보 발레 에스파뇰’을 창단하기 이전인 10대때 부터 이미 프로 무용수로 이름을 알려왔습니다. 우리 둘의 춤은 조화를 이루지만 서로 다른 개성을 갖고 있어요. 이번 공연처럼 ‘투 탑’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도 있지만, 그 밖의 시간에는 각자의 작품성을 표출하는 작업을 따로 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춤은 어떻게 다른가요?
- 나의 춤이 좀 더 섹시하다고 생각해요.(웃음) 그리고 상체의 움직임에 다른 장르의 춤들이 섞여있는 것이 특징이죠. 로하스는 더 전통적인 플라멩코를 춥니다. 남성적 무게감과 정확성 등이 그의 춤 특징이라 할 수 있어요.

플라멩코 이외에 어떤 춤을 추었나요?
- 현대무용, 발레, 재즈, 펑키, 스페인 전통무용 등을 배웠습니다. 그 중 현대무용을 가장 좋아합니다. 플라멩코를 안했으면 아마 현대무용수가 되었을 겁니다. 테크닉이 다양하다는 점도 좋지만 감정표현의 방법이 즉흥적이라는 점이 특히 좋습니다.

‘샹그레 플라멩카(Sangre Flamenca)’는 어떤 작품인가요?
-샹그레(Sangre)는 스페인어로 ‘피’라는 말입니다. ‘샹그레 플라멩카’는 집시의 피 속에 흐르는 뜨거운 열정과 자유로운 정신을 플라멩코 음악과 춤으로 형상화한 작품입니다. 1997년 초연된 이레 세계 순회공연을 통해 ‘누에보 발레 에스파뇰’을 대표하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전통적 플라멩코를 초월하여 클래식과 현대 스페인 무용까지 흡수하는 다양한 플라멩코의 진화를 보여줍니다. 로하스와 저를 포함한 6명의 남자 무용수와 4명의 여자 무용수가 출연합니다.

플라멩코는 음악의 비중이 큰 춤이지요?
- 그렇습니다. 제 안무도 음악에서 시작됩니다. 음악에서 영감을 받은 후 무용수에게서 적절한 표현을 찾죠. ‘상그레 플라멩카’에서도 음악은 빼 놓을 수 없는 매력입니다. 두 명의 싱어(칸테)와 두 명의 기타(토케), 그리고 바이올린, 첼로, 퍼커션으로 구성된 7명의 뮤지션이 라이브로 연주하는 음악은 집시들의 뜨겁고 강렬한 내면세계를 넘나들며 플라멩코 음악의 진수를 들려준다고 자부합니다.

공동안무란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을 말하는 것인가요?
- 우리 무용단의 대부분 작품은 로하스와 저의 공동 안무작입니다. 이번 작품의 경우 8개의 곡으로 구성되었는데, 로하스와 제가 한 곡씩 번갈아가며 안무 한 것입니다. 물론 한 곡을 두고 같아 안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스타일이 달라서 의견충돌도 있을 것 같군요.
- 물론 수 도 없이 부딪히고 싸웁니다. 그러나 이제는 어느 정도 해결 방법에 도가 텄어요. 일단 안무 작업을 중단하고 대화를 많이 합니다. 우리가 정한 가장 중요한 규칙은 ‘솔직하자’는 것입니다. 때로는 직설적인 것이 힘들게도 하지만 솔직한 것이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라 생각해요. 이제는 신뢰로 뭉쳐있습니다.

두 사람은 어떻게 만나서 무용단을 만들었나요?
- 우리는 마드리드 근처의 작은 마을 출신으로 어린 시절에는 한 동네에 살면서도 서로 몰랐어요. 마드리드로 오가는 통학 기차에서 만나 매일 춤이야기를 하면서 친해졌고 함께 춤추게 되었습니다. 1994년 함께 공연한 것이 ‘전 스페인 플라멩코 최우수 무용가상’을 수상하며 무용단을 만들기로 결심했죠. 16살에 처음 만났으니 이제 19년이 흘렀네요. 

한국 사람도 플라멩코를 출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 물론입니다. 플라맹고는 국적, 인종에 상관없이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생김새 보다는 정신적인 면에서 플라멩코를 출 준비가 되어있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작업이 있나요?

- 저는 스토리가 있는 뮤지컬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돈 주앙’에도 안무와 출연을 했었어요. 앞으로는 스페인의 창작 뮤지컬 작업에 참여할 것입니다. 스토리가 있는 가운데 춤추면서 노래할 수 있는 작품을 많이 만들고 싶습니다.

어떻게 춤을 시작했나요?
- 어머니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어요. 어머니는 카바레의 스트립 댄서로써 1970년대에 아주 유명한 분이셨죠. 제가 플라멩코를 좋아해서 9살 되던 해에 어머니가 학원에 데려가주셨는데, 처음부터 너무 잘 때라하자 선생님께서 언제든 오고 싶을 때 오라고 환영해주셨어요. 그렇게 춤을 시작했고 나중에 발레를 배워서 스페인 국립발레단에 최연소 단원으로 입단하기도 했습니다.

한국관객이 당신의 춤에서 무엇을 보기를 바라나요?
- 저의 공연은 인간 감정의 표현에서 시작 합니다. 매번 주제는 다르지만 살면서 느끼는 사랑, 슬픔 등의 감정을 음악과 춤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것들은 국적을 불문하고 모두의 피에 녹아있는 것입니다. 한국관객들이 나와 로하스의 춤을 통해 플라멩코의 아름다움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공연으로 관객의 가슴에 작은 씨앗이 던져질 것이고, 언젠가 꽃을 피우리라 믿습니다.

다음 공연계획은 무엇인가요?
- 올 해 새로 안무한 신작으로 유럽순회를 할 것입니다. <깜비오 데 떼르시오cambio de tercio> 라는 작품인데 ‘처음으로 돌아가다’라는 뜻의 투우의 용어입니다. 소의 등에 깃발을 꽂는 시점을 말합니다. 그 순회공연 후에 저는 스페인 국립발레단의 초청으로 안무를 할 것이고, 로하스는 악사 4명과 솔로공연을 준비 하고 있습니다.

비평가의 의견을 의식하기도 하나요?
- 관심을 가지고 읽기도 하지만, 지난공연에 연연하기 보다는 미래를 위해 참고 합니다. 가장 인상적인 평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요. 영국 메트로의 아트 에디터 쇼반 머피(Siobhan Murphy)가 평한 것인데, “모두가 호아킨 코르테즈를 좋아하지 않는다.  또 모두가 사라 바라스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만약 이 둘을 합친다면 완벽해 질 수 있을 것인데, 로하스와 로드리게즈가 그렇다. 로하스의 전통성과 로드리게즈의 현대성은 플라멩코의 새로운 비전을 전달하며, 관객은 확실히 더욱 만족해한다.”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춤에 확신을 준 평이었습니다.

춤은 당신인생에서 무엇인가요?
- 춤은 나만을 위한 치유법(therapie)입니다. 나 자신과의 소통이며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