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터의 정면으로 설레는 듯 아련한 얼굴을 한 두 남녀가 서 있다. 바로 ‘홍랑’과 ‘김생’이다. ‘김생’은 차림새를 보아하니 사대부 댁의 자제는 아닌 듯하다. 늠름한 체격과 빛나는 두 눈은 그의 총명함을 드러낸다. ‘홍랑’은 차분해 내려 깐 커다란 눈망울과 조신하게 올려진 입 매무새, 비단옷과 노리개를 보아하니 귀한 댁 여식이다. 그녀는 웃고 있지만 어딘가 서글퍼 보이는 인상이다.

포스터 정면의 두 남녀는 몸이 닿을 듯 가까이 서 있지만 서로 바라보고 있지는 않다. 뮤지컬 제목에 ‘연가’라는 단어가 붙는 것을 보면 그들은 분명히 ‘연인’일 것이다. 하지만 두 인물의 잔잔한 미소 끝을 따라온 쓸쓸함이 관객의 눈길을 붙든다.

포스터의 정 가운데에는 ‘한 천 년 서 있다 보면 만날까, 저 골목 어귀에 맺었던 인연’이라는 글귀가 있다. 포스터 속의 두 남녀가 연인임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저 골목 어귀에서 맺었던 인연’이 ‘한 천 년 서 있어야 만날 수 있는 인연’임을 말하고 있기도 하다.

여인의 옆으로는 근엄한 얼굴을 한 남자가 서 있다. 상투를 틀고 비단 도포를 걸친 것으로 보아 남자는 양반이다. 그는 뒷짐을 진 채 두 남녀의 행동을 감시하듯 보고 있다.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얼굴에는 날카로움과 냉정함이 서려 있다. 포스터의 정면을 차지한 이들 뒤로는 어딘가 신비로워 보이는 중년 여성이 서 있다. 그녀는 꽃이 피어 있는 나무 곁에 서 있다. 회색 머릿결과 더불어 그녀의 의상이 심상치 않은 인물임을 짐작하게 한다.

왼쪽 남자의 위쪽으로는 ‘당길문’이 반쯤 열려 있다. 고운 문양의 살이 놓인 창호지 위로 나무의 가지 하나가 뻗어 있다. 문틈 사이로는 이 세상 것이 아닌 듯한 환한 빛이 쏟아져 내리고 있다. 빛은 문틈 사이로 스며들어와 나란히 선 두 남녀를 조용히 감싼다. 그 사이로는 분홍빛 꽃잎이 흩날려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홍랑’의 옆에 선 남자는 그녀의 오빠인 ‘홍생’이다. ‘홍생’은 자신 대신 대리시험을 치른 ‘김생’을 없애려 한다. ‘홍랑’은 광에 갇힌 ‘김생’을 몰래 구해 돌본다. 두 사람은 신분 차이를 넘어선 사랑을 나누게 된다. 하지만 ‘홍랑’이 권문세가로 시집가야 할 상황에 놓이자 두 사람은 함께 달아나려 한다.

포스터는 살구나무의 정령 ‘행매’가 기억하는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를 전하는 만큼 전체적으로 나무의 질감을 띠는 갈색이 감싸고 있다. 또한, ‘정령’이라는 신비로운 매개체가 등장하는 만큼 환한 빛을 통해 낯섦과 따뜻함, 신비로움을 동시에 전달하고 있다. 

이번 공연은 초연 당시 참여했던 뮤지컬 드림팀이 다시 힘을 합한다.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 ‘모차르트!’의 연출가 유희성과 뮤지컬 ‘싱글즈’, ‘형제는 용감했다’의 음악감독 장소영, 뮤지컬 ‘뷰티풀게임’, ‘모차르트!’ 등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안무가 이란영, 뮤지컬 ‘몬테크리스토’, ‘맨오브라만차’ 등을 맡았던 서숙진 무대디자이너가 함께한다.

뉴스테이지 정지혜 기자 newstag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