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작품일지라도 보는 사람마다 감동하는 장면은 모두 다르다. 어떤 관객은 뮤지컬 넘버에 감동을 받기도 하고, 어떤 관객은 찰나의 대사에 마음을 빼앗기기도 한다. 그렇다면 무대를 직접 이끌어가는 배우나 연출가는 자신의 작품 속에서 어떤 장면을 인상 깊게 봤을까. 박은태 배우, 정운선 배우, 신지호 배우, 장희영 배우, 조용신 연출가에게 자신의 작품 속 명장면을 들어봤다.

뮤지컬 ‘피맛골 연가’
“김생이 읊조아리는 ‘허허 참’이라는 대사 인상 깊다”
- ‘김생’ 역의 박은태 배우

뮤지컬 ‘피맛골 연가’의 명장면을 넘버로 꼽자면 ‘피맛골’이다. 음악과 앙상블들이 에너지가 조화를 정말 잘 이룬다. 앙상블 배우들이 에너지를 뿜어내는 있는 걸 보고 있으면 저 위에 함께 있고 싶은 생각이 든다. 대사로서 가장 애착이 가는 대사는 ‘허허 참’ 하는 부분이다. 작품을 준비하면서 연출님이 이 부분을 꼭 붙여야겠다고 하셨다. ‘허허 참’하는 대사는 두세 번 정도 나온다. 처음에는 ‘도대체 이런 말을 왜 해?’라고 생각했다. 연습 시간 때 대사를 하면서도 확신이 없었다. ‘이 대사가 뭐기에 해야 하는 거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무대에서 ‘허허 참’이라는 대사를 하니까 분위기가 정말 좋았다. 그제야 왜 연출님이 이 대사를 하자고 하셨는지 알겠더라. 잠깐 연출님을 의심했던 것이 죄송스러웠다. 지금은 ‘허허 참’이라는 대사를 더 열심히 한다.

뮤지컬 ‘모비딕’
“혼자 남겨진 ‘이스마엘’의 오열 장면”
- ‘이스마엘’ 역의 신지호 배우

작품 속에 굉장히 감정적인 장면이 있다. 뮤지컬 ‘모비딕’은 마지막에 이스마엘만 남겨지고 다 죽는다. 배가 난파되면서 다친 퀴퀘그가 자신을 눕혀달라고 말한다. 이스마엘은 퀴퀘그를 눕혀놓고 구조를 기다린다. 이스마엘은 다가오는 배를 보고 퀴퀘그에게 ‘지금 우리 가야 한다’고 말하는데 퀴퀘그는 답이 없다. 죽은 것이다. 그 장면에서 이스마엘이 오열하면서 운다. 눈물 연기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이제는 그 멜로디만 들어도 눈물이 난다. 그 후 이스마엘은 구조되고 퀴퀘그가 마지막 바이올린 멜로디를 연주한다. 그리고는 이스마엘이 계단에 앉아서 퀴퀘그가 준 선물을 바라보면서 극이 끝난다. 그 장면은 개인적으로 소중한 의미가 있는 명장면이다.

뮤지컬 ‘내 마음의 풍금’
“홍연의 심리적 변화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왜’라는 넘버가 좋다”
- ‘홍연’ 역의 정운선 배우

모든 장면, 모든 넘버가 소중해서 하나를 선택하기가 어렵다. 수많은 넘버 중에서 ‘왜’와 ‘내 마음의 풍금’ 두 넘버를 좋아한다. ‘왜’라는 넘버는 홍연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심리변화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곡으로 홍연의 대표곡이다. ‘내 마음의 풍금’은 마지막 엔딩 장면이다. 전 출연진이 등장하고 무대 위로 눈이 내리는 등 세트가 정말 예쁘다. 각박한 세상에 잊고 살던 따뜻함, 소소한 행복감, 소중함, 아련함이 동시에 다 느껴진다. 다른 대형 작품에서는 줄 수 없는 아련한 잔향이 느껴지는 장면이라 정말 좋다.

뮤지컬 ‘모비딕’
“‘이스마엘’과 ‘퀴퀘그’의 연주 배틀, ‘바다의 정령’과 ‘퀴퀘그의 대화 장면 등”
- 연출가 조용신

명장면이 네 개 정도 있다. 첫 번째는 ‘이스마엘’과 ‘퀴퀘그’가 친해지는 과정을 서로의 연주로 표현하는 장면이다. 두 캐릭터는 낯선 여인숙에서 한 침대를 써야 하는 상황을 맞이한다. 그 과정에서 서로 가까워지는 과정을 연주 배틀로 담아냈다. 이스마엘은 피아노를 통해, 퀴퀘그는 바이올린을 통해 감정을 전달한다. 이 장면은 두 캐릭터를 맡은 배우에게 닥친 상황의 기본적 구성만 제작진이 전달했을 뿐, 연주는 두 사람이 매일 다르게 한다. 우리도 연습하면서 가장 즐기는 장면 중 하나다.
 
두 번째는 선장이 부르는 ‘복수의 노래’ 장면이다. ‘스타벅’이 ‘모비딕’이라는 넘버를 부르면 ‘모비딕’에게 고통을 당한 선장이 복수를 다짐하는 ‘복수의 노래’가 이어진다. 대자연의 순리에 무모하게 도전하는 선장의 모습이 첼로 연주와 독창으로 표현된다. 그 이어지는 부분이 멋지다. 스타벅이 묘사하는 흰 고래는 신비하고 특별한 존재로 묘사된다. 선장이 묘사하는 흰 고래는 악마 같은 존재로 표현된다. 같은 대상을 두고 서로 다르게 드러난 묘사도 재미있다.

세 번째는 ‘이별의 노래’라는 장면이다. 우리 작품에는 ‘바다의 정령’이 등장한다. 원작에는 없는 캐릭터다. 이 장면은 ‘바다의 정령’과 퀴퀘그가 대화하는 부분이다. ‘이별의 노래’는 11분 정도 되는 곡인데 퀴퀘그와 선장, 바다의 정령이 트라이앵글 구도로 배치돼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는 신이다. 이 장면이 정말 아름답다. 세 명의 배우가 노래를 부르고 이스마엘이 반주한다. 배우들은 각자 자리에서 연기하지만 음악적으로는 통합돼 있다.

네 번째는 극 중 인물들이 실제로 ‘모비딕’을 만났을 때다. 극 중 인물들은 ‘모비딕’을 단 3일간 만난다. 이 장면은 극한의 연주로 급박한 상황을 표현했다. 이 부분은 장면 자체가 통째로 하나의 음악이다. 음악이자 음향이자, 장면이다. 배우도 가장 빨리 움직인다. 배우의 대사와 연주, 음향 효과와 움직임이 하나가 된다. 이 장면은 압축된 움직임으로 담았다. 이 장면은 기존의 뮤지컬에서 정말 보기 어려운 장면이다.

뮤지컬 ‘코요테 어글리’
“코요테 걸들의 섹시한 무대는 최고”
- ‘에이프릴’ 역의 장희영 배우

개인적으로는 ‘코요테 어글리’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코요테 걸’들이다. 다른 역할들도 물론 멋있고 다 중요하지만 ‘코요테 걸’들의 섹시한 무대가 최고다. 나와 함께 하는 무대가 몇 번 있다. 뮤지컬이기 때문에 조명과 세트가 멋있어서 그 장면이 가장 좋은 것 같다.

뉴스테이지 정지혜 기자 newstag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