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모비딕’은 출연하는 모든 배우가 연기, 노래는 물론 악기를 직접 연주하는 형식의 ‘액터-뮤지션 뮤지컬’로 화제를 모았다.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을 원작으로 하면서 모던하고 초현실주의적인 원작의 분위기를 다양한 음악적 기법으로 표현했다.

이스마엘 역을 맡은 배우 신지호는 자신의 캐릭터에 대해 “모비딕에서 이스마엘은 ‘화자’다. 실제 허먼 멜빈이 쓴 원작에서도 첫 문장이 ‘내 이름은 이스마엘이다’로 시작된다. 원작은 배에서 겪은 일들을 쓴 일기다. 이스마엘은 도시에서 직장에 치이고, 갈 곳을 잃어 자신의 어렸을 적 꿈을 이루기 위해 바다로 간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은 이스마엘의 눈으로 바라본 슬픈 항해기다. 흰고래 모비딕을 찾아 떠난 여정에서 그는 과연 무엇을 얻고 돌아왔을까.

- 목격자, 투명한 물처럼 타인의 감정을 비추다

배우 신지호의 말대로 이스마엘은 여리고 선한 큰 눈망울로 사건을 차례로 목격하는 ‘화자’다. 이스마엘은 사건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은 아니지만, 관객이 감정을 쉽게 이입하게 되는 캐릭터다. 이스마엘은 타인의 슬픔과 외로움, 괴로움을 모두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투명한 물과 같다. 이교도이자 원주민 부족 추장의 아들인 퀴퀘그에게서 믿음을 얻어낼 수 있는 것도 그가 지닌 ‘투명한 힘’ 때문이다.

이스마엘이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표정은 다양하다. 그러나 객석을 떠날 때 관객의 뇌리에 남는 것은 그의 우는 얼굴이다. 그의 슬픔은 이스마엘이 뒤집어진 보트 위에서 모비딕이 동료를 습격하는 과정을 모조리 지켜보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이스마엘은 거대한 흰고래의 존재감이 주는 공포와 홀로 남겨진 자의 불안, 외로움, 친구 퀴퀘그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고통 등을 하나의 ‘슬픔’으로 엮어간다. 그의 슬픔은 때로는 지켜보는 관객의 가슴이 저릿하도록 메마른 공허함으로, 때로는 관객마저 울리는 격정적인 울음으로 터져 나왔다.

- 격정적인 피아노 연주로 천진하게 노래하다

이스마엘을 이야기할 때 신지호의 피아노 연주를 빼놓기 어렵다. 특히, 퀴퀘그와의 첫 만남에서 들려주는 둘의 대화는 바이올린과 피아노 간의 연주를 통해 대사보다 더 많은 ‘감정의 교류’를 보여준다. 격정적이면서도 천진한 그의 연주는 그가 연기하는 이스마엘 그 자체로 표현된다. 문명인을 상징하는 이스마엘은 자연을 상징하는 퀴퀘그에게 말을 가르치고 책을 읽어주지만, 결국엔 음악으로 교류한다. 그의 피아노는 퀴퀘그는 물론이고 객석의 마음도 쉽게 열어 버린다. 퀴퀘그와 이스마엘이 서로 경계하다가 하나가 되어 가는 과정을 연주 베틀로 표현한 대목은 그들의 섬세한 감정이 건반과 현을 누르는 것처럼 생생하고 설득력 있게 관객에게 전달됐다.

- 외로움과 아픔을 지고 청춘을 표류하다

이스마엘이 느끼는 근원적인 외로움은 자신의 고향에서조차 떠나왔다는 상실감에서부터 시작됐다. 그의 외로움은 절친한 벗 퀴퀘그를 잃고, 함께 항해한 갑판 위의 식구를 모두 떠나보내야 하는 것으로 발전된다. 끝내 그는 홀로 살아남지만 그렇기에 더욱 고통스러운 캐릭터다. 혼자 길을 떠나 혼자 길에 남았다. 이스마엘은 홀로 남겨진 아픔을 눈물과 독백으로 메운다. “퀴퀘그, 너와 나는 언제나 함께야”라고 말하던 다정한 이스마엘은 “추억을 바다에 묻는다”고 독백한다. 흰 고래 ‘모비딕’을 쫓았던 피쿼드 호에서의 항해기는 그에게 있어서 표류하는 청춘의 아픈 성장과정이자 남은 생을 극복할 소중한 추억이 될 것이다.

이스마엘은 사건을 지켜보는 ‘화자’이자 ‘기록자’이다. 하지만 객관적이고 냉정하기보다는 타인의 감정을 그대로 비춰낸다. 감정의 파도가 일렁이는 이스마엘의 눈빛은 관객이 사건을 더욱 생생하게 느끼게 한다.  물처럼 투명한 힘을 지닌 이스마엘과 격정적인 피쿼드호의 일대기를 만날 수 있는 뮤지컬 ‘모비딕’은 두산아트센터에서 오는 8월 20일까지 공연된다.

뉴스테이지 박세은 기자 newstag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