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쉽게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가 누구도 쉽지 않은 길을 거침없이 걸어온 사람의 손에서 다시 태어난다면 어떨까. 국내초연 이후 10주년을 맞은 2011년 ‘버자이너 모놀로그’가 지난 2일, 뮤지컬 프로듀서이자 평론가로 잘 알려진 이유리 연출을 만나 새롭게 태어났다. 공연이 오르기 전까지도 무수한 고민과 수위의 조정을 거듭했다는 이번 작품이 관객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남다르다. 이유리 연출을 만나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할 말이 남아 있다는, 불편하지만 한 번쯤은 꼭 해야 한다는 2011년 ‘버자이너 모놀로그’의 숨겨진 이야기를 들어봤다.

-국내 초연 이후 10주년을 맞은 2011년 ‘버자이너 모놀로그’의 막이 올랐습니다. 현재 관객 분위기가 어떤가요.

“다행스럽게도 관객반응이 좋아요. 다른 공연과 달리 관객반응이 굉장히 중요한 게 ‘버자이너 모놀로그’에요. 이 작품은 공연 전반이 관객과 소통하도록 콘셉트와 구조가 짜여 있죠. 연출가로서 여성의 성에 대해서, 성에 대한 원초적 발언과 여성 폭력에 대한 사회적 발언을 어느 수위에 맞춰야 할지가 숙제였어요. 공연 올리기 직전까지도 여러 변수를 가지고 각색 작업도 많이 하고 배우들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죠. 배우들도 어려워했어요. 방향을 이렇게 저렇게 잡아 보면서 결국에는 소신 있게 선택하는 수밖에 없었죠. 결과적으로 다행스러운 것은 관객의 반응을 미리 가늠하고 예상한 수위가 적중했다는 겁니다. 관객들이 그런 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어요”

-지난 프레스콜 행사의 인터뷰에서 “작품이 관객의 반응에 따라 다시 조절되거나 변경될 수도 있다”고 하셨는데요. 실제로 공연 이후 변경된 부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사실은 공연 전에 수위에 대해서 자기검열을 참 많이 했어요. 그런데 막상 공연이 오르고 최근 공연 후기를 보면 오히려 관객들이 더 과감한 거예요. 관객들이 사회적 발언이든 의식적 발언이든 원초적 표현이든 무엇이든 강도 높게 하자는 반응이에요. 관객의 의식이 정말 많이 변했고, 어느 면에서는 관객이 앞서간다고 생각합니다. 막을 올리기 전보다 관객을 맞으면서 안심하게 됐어요. 나름 어렵게 수위를 조절하고 선택했던 부분들이 관객과 잘 들어맞았어요. 대신 어제도 배우들에게 말했지만 여성의 가장 원초적인 느낌, 깨달음에 대해서 좀 더 몰입해서, 좀 더 과감하게 원초적으로 표현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가령 신음소리라든지 말이죠. 이제는 관객이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고 봐요”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에서 관객 변화를 느끼시는지요.

“첫날 초연 배우 서주희 씨가 게스트로 출연해줬는데 올해 ‘버자이너 모놀로그’가 굉장히 충격적이라고 말했어요. 첫째, 남성관객이 많아졌다는 겁니다. 전체 관객의 평균 30% 정도가 남자관객이죠. 그리고 관객의 반응이 너무 적극적이라는 거예요. 배우들과도 자연스럽게 소통해서 놀랐다고 해요. 최근 굉장히 많이 빠른 속도로 관객들의 성향이 바뀐 것도 있겠죠. 하지만 무대 조명이나 극장 자체도  영향을 줬어요. 극장 구조가 굉장히 길고 깊어요. 무대나 조명의 전반적인 콘셉트를 여성의 자궁처럼 꾸몄습니다. 여성의 자궁이라는 것은 우리가 태어난 근원이에요. 누구나 무의식적으로 근원에 대한 안온함, 그리움을 가지고 있어요. 관객들이 그 공간이 들어오면 판타지 속에 들어오는 것처럼 근원적인 편안함을 느끼게 됩니다. 뭐든지 소통되고 공유되는 분위기를 가지도록 의도한 것이 잘 적중했다고 생각해요. 그 안에서 관객은 배우들이 유도하는 무엇이든지 참여해 주고 있어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관객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관객도 있을텐데요. 비교적 성 인식이 보수적인 국내에서 ‘버자이너 모놀로그’가 가지는 사회적 영향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우리 사회는 우선 여성의 성과 관련해서 여성 비하적인 사회풍토가 뿌리 깊습니다. ‘버자이너 모놀로그’는 그 부분에 대해서 자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작품이에요. 그동안 여성의 성기는 수치심 또는 놀림의 대상, 희롱의 대상이었고, 여성 스스로도 저항적이라기보다는  편견을 받아들이고 부끄러워했습니다. 작품 속에 구체적으로 이런 대사가 있어요.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구멍일 뿐이었다’, ‘축축하고 칙칙한 동굴이다’와 같은 부분들이죠. 바로 그렇게 생각했던 여성들이 공연을 보면서 자신의 성기를 새롭게 인식하게 되는 겁니다. 성기를 자신의 몸 일부로 사랑하며 자랑스럽게 여기는 계기가 될 수 있는 작품이에요. 원초적으로 성기에 대한 의식 전환을 할 수 있죠”

“또한, 한국 사회는 여성 폭력문제가 심각합니다. 이번 공연은 아동성폭행, 여성할례 등을 다루면서 남편에게 폭행당하는 여성의 모놀로그도 새롭게 삽입했어요. 여성 폭력에 대한 사회의식을 공유하자는 의미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게 전면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하는 게 연출로서의 의도였죠. 관객들이 앞에 선 세 배우들이 교훈적으로 무엇을 가르친다고 느끼지 않고, 마치 놀이를 하듯이 진행되도록 일종의 놀이 콘셉트를 도입했어요. 자연스럽게 이웃의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자연스럽게 수다를 떨듯이 말이죠”

-좀 전에 이번 공연에 남성관객이 의외로 많다고 하셨는데 남성관객의 반응은 어떤가요?

“이건 에피소드인데요. 대학생인 제자가 첫 공연을 보러왔었어요. 남자친구를 데리고 커플이 보러 온 거죠. 공연이 끝나자마자 남학생이 매우 흥분해서 제 여자친구에게 더 잘해줘야겠다고, 여성을 존중하고 아껴야 되겠다고 말하더라고요. 그리고 이틀 뒤에 학교를 갔더니 그 여학생이 저한테 그러는 거예요. ‘교수님, 남자친구가 연극보고 나더니 나한테 너무 잘해줘요’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공연 봤다고 며칠만 그러지 말고 그 마음 영원해라’(웃음). 그런 일을 계기로 이 공연이 남성관객들에게 어떤 마인드를 주는지를 느꼈습니다”

(인터뷰-②에서 계속)

박세은 기자 newstag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