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왜 ‘쓰릴’을 원했는가

‘그’는 뮤지컬 ‘쓰릴미’에서 말하는 자로 등장하지 않는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자는 ‘나’다. ‘그’는 ‘나’의 기억 속 한 편린으로 관객에게 전달된다. ‘나’의 시선 속에서 대사와 얼굴로 전해지는 ‘그’의 이야기는 곱씹을수록 서글프다.

뮤지컬 ‘쓰릴미’는 시카고에서 있었던 실제 유아납치살인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극 중 ‘그’로 표현된 실제 인물 ‘리처드 롭’은 시카고 남부의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다. 강압적인 가정환경에서 자라 거짓말이 잦았으며, 범죄 조직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뮤지컬 ‘쓰릴미’ 속에서 천재로 등장하는 것처럼 17살에 미시건 대학을 최연소로 졸업할 만큼 영리한 학생이었다.

뮤지컬 ‘쓰릴미’의 ‘그’는 ‘리처드’처럼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인물이다. 빼어난 외모와 타고난 말주변으로 주변 사람을 시선을 빼앗는 청년이다. 하지만 그를 유일하게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은 ‘범죄’다. ‘그’는 자신에게 만족과 흥분을 가져다주는 ‘범죄’를 완벽하게 저지르기 위해 자신에게 빠져든 ‘나’를 끌어들인다. 그렇다면 ‘그’는 왜 ‘쓰릴’을 원했던 것일까.

‘그’는 완벽하고 강한 인간으로 비치고 싶어 한다. 물질적으로 모자란 것 없이 살아왔지만  강압적인 환경에서 자란 탓이다. ‘그’는 어쩌면 자신을 압박하는 현실을 지워버리기 위해 ‘쓰릴’을 원했을지도 모른다. ‘그’의 범죄는 자라온 환경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그’는 협박 편지를 쓰며 ‘나’에게 묻는다. “내가 만약 유괴되면 우리 아버지는 어떻게 할까?” ‘그’의 질문은 ‘아버지’의 존재에 대한 조심스러움과 두려움이 묻어난다. 돌아오는 ‘나’의 위로에 ‘그’는 “우리 아버지는 사회적인 시선에만 신경 쓸걸?”이라고 대답한다.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하지만 ‘그’의 말끝은 씁쓸하다.

뮤지컬 ‘쓰릴미’에서 ‘그’는 ‘어머니’라는 단어에 약한 모습을 보인다. 살인 계획을 세우는 장면에서 ‘그’는 동생을 죽이자고 제안한다. ‘나’가 그를 저지하기 위해 ‘엄만 볼 수 없겠지’라고 말하면 ‘그’는 금세 자신의 주장을 번복한다. 이와 같은 ‘그’의 모습에서 ‘어머니’에 대한 남다른 트라우마가 존재함을 알 수 있다.

‘그’는 어쩌면 심각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빠진 소년일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그’에게 강압적인 환경을 제공한 인물이며, 어머니를 빼앗아 간 ‘적’이다. 동생도 ‘그’에게는 ‘어머니’의 사랑을 나눠 가져야 할 대상으로 여겨졌을 수도 있다. 특히, 작품 속에서 ‘그’는 끊임없이 동생에 대한 비난을 퍼붓는다.

뮤지컬 ‘쓰릴미’는 캐릭터를 해석하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다. 특히, 단 두 명의 배우가 무대에 서는 만큼 배우와 연출의 색에 따라 각기 다른 매력이 드러난다. 작품은 이야기의 중심이 ‘나’에 기울어져 있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 ‘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작품의 ‘그’를 자세히 살펴본다면 뮤지컬 ‘쓰릴미’의 더 큰 매력을 만날 수 있다. 작품의 사건과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 바로 ‘그’이기 때문이다.

정지혜 기자 newstag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