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무대예술은 내러티브보다 감각적인 요소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일부 작품은 화려한 의상으로 어린이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거나 일관성 없는 음악과 춤만 나열하기도 한다. 주의가 산만한 아이들에게 작품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나 ‘방법’만을 부각시키다 보면 ‘본질’을 잃어버릴 때가 많다. 수많은 아동극이 단발성 이벤트에 그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음악동화 ‘피터와 늑대’는 이야기, 감각, 교육적 효과를 두루 갖춘 새로운 장르의 작품이다. 작품은 초등학교 4학년 교과서에 수록된 원작 ‘피터와 늑대’를 무대에서 재현한다. 이번 공연은 뮤지컬, 연극, 동화 등 다양한 장르의 경계에서 어린이 관객을 만나고 있다. 어릴 적 동화의 기억이 아련하게 떠오르던 여름날, 압구정 윤당아트홀에서 9월 1일까지 공연하는 음악동화 ‘피터와 늑대’를 만났다.

‘음악동화’가 선사하는 독특한 효과

원작 ‘피터와 늑대’는 1936년 러시아 작곡가 ‘프로코피예프’의 작품이다(작품번호 67). 모스크바 아동극장 초연 당시 소규모의 관현악단과 낭독자가 무대에 올랐다. 원작 ‘피터와 늑대’는 피터, 할아버지, 사냥꾼, 늑대, 고양이, 새, 오리 등의 주인공들을 각각 특정한 악기로 표현하고 내레이션으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음악동화 ‘피터와 늑대’는 실제 연주 대신 배우들이 작품 속 동물로 분해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무대에서 실제로 연주를 하는 것이 원작의 핵심이라면 이번 공연은 아이들의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절충안을 선보인다. 그렇다고 원작의 의미가 퇴색된 것은 아니다. 배우들은 공연 시작에 앞서 원작자 ‘프로코피예프’의 이름을 재미있게 따라하며 원작의 오리지널리티를 강조한다.

작품은 뮤지컬과 클래식, 연극을 접목하며 ‘음악동화’의 특성을 살려낸다. 피터는 바이올린, 피터의 할아버지는 바순, 새는 플루트, 오리는 오보에, 고양이는 클라리넷, 늑대는 호른, 사냥꾼은 큰북 소리를 빌어 대사를 표현한다. 어린이 관객은 공연을 보며 다양한 악기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아담한 소극장에서 펼쳐지는 음악의 향연은 어린이들에게 ‘재미’와 ‘교육’의 일거양득 효과를 선사한다.

‘권선징악’보다 ‘공존’을 이야기하는 작품

음악동화 ‘피터와 늑대’는 ‘공존’을 이야기한다. 숲 속 마을에는 인간인 피터와 여러 동물들이 어울려 살고 있다. 평화롭던 마을은 늑대의 등장과 사냥꾼의 총소리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숲 속 친구들은 늑대가 자신들의 생존을 위협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늑대를 잡기 위해 비밀 작전을 짠다. 이 과정에서 인간 피터와 동물 친구들 사이에 ‘대장’과 ‘대원’의 권력 관계가 형성된다. 이들은 권력구조에 갈등하며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강한 우정을 바탕으로 힘을 모아 작전에 성공한다.

원작은 권선징악적 교훈을 강조한다. 동물원을 탈출한 늑대가 약한 동물을 잡아먹다가 피터에게 잡혀 동물원으로 끌려 들어간다는 내용이다. 이번 공연은 원작과 다른 결말을 맺는다. 작전에 성공한 숲 속 친구들은 늑대와 대화를 시도한다. 자신들에게 위협적인 줄만 알았던 늑대가 나쁜 사람들에게 쫓겨 가족과 이별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이번 공연에서는 사냥꾼의 덫에 걸린 늑대를 도와주며 모두가 친구가 된다는 따뜻한 이야기로 마무리한다.

숲 속 친구들의 늑대 포획 작전은 한국의 전래 놀이를 통해 재치 있게 그려진다. 배우들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칙칙 폭폭 기차놀이’ 등으로 마을에 일어난 해프닝을 표현한다. 어린이 관객들은 배우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에 흥미를 느끼며 웃음을 터뜨린다. 음악동화 ‘피터와 늑대’는 혼자 할 수 있는 컴퓨터 게임보다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건강한 놀이문화를 전달한다.

노오란 기자 newstag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