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목란언니’는 두산아트센터 ‘창작자육성 프로그램’ 지원 아티스트인 김은성 작가와 여신동 무대 디자이너가 함께했다. 작품은 두 작가와의 호흡이 찰지게 뭉치게 한 전인철 연출이 빚어 낸 근래 한국 연극계에 기억 될 수작(秀作)이다.

김은성 작가는 경계인 시리즈의 작품 의뢰를 받고 고민을 거듭하다 우리에게 처한 드라마틱한 경계인 철책선의 경계를 떠올렸다. 그는 상상할 수 있는 가능성의 유추로 서울과 평양을 넘어 중국으로 치닫는 조목란의 기막힌 삶을 우리 주변의 경계를 넘어 다국적 환경 속에서의 경계를 다시 한 번 인지하게 한다.

관심을 가지고 알아보면 근처에 알게 모르게 수많은 새터민과 탈북자 가족들의 삶이 결코 녹록하지 않음을 듣게 된다. 어느 한군데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경계의 중심에서 순탄치 않게 고단한 삶을 살아가야하는 그들의 이야기는 내 나라, 내 이웃, 내 가족의 이야기이기도하며 정치적인 관심을 넘어 인간애로서 적절한 대책이 필요하다.

연극 ‘목란언니’는 조목란을 둘러 싼 인간 군상들의 관계 맺기를 통해 그녀의 희로애락을 보며 세계에서 유일한 경계인으로, 현재에도 계속되는 이념과 갈등의 문제를 넘어 우리네 개인의 삶에 알게 모르게 파고드는 정치적인 해석의 폭력과 통렬히 비판하는 풍자 속에서 함께 울고 웃게 한다.

겉 표정으로는 아무런 문제없이 잘 지낸 듯 하지만 실리를 취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머릿속의 온갖 음모와 이기, 편협적인 생각들이 그녀를 덮친다. 아무렇지 않은 겉모습과 달리 감춰진 치부를 드러낸 순간, 아찔한 폭력에 섬뜩한 전율을 느끼게 된다. 동시에 밑도 끝도 없이 자행되고 있는 같은 부류 인간에 대한 잔인한 폭력과 그에 대해 유추 가능한 인물들을 쉽게 떠올리게 해 씁쓰레한 웃음을 흘리게 된다.

전인철 연출은 작가가 설정한 많은 사건과 이야기들이 쉴 새 없이 무대에서 번져 스며들게 했다. 다양한 흐름의 등장과 퇴장, 동선으로 작품의 초목표를 극대화 시켰다. 언어의 확장과 이미지의 구체성을 사방에 각인시켜 천천히 번져 나가게 했다. 또한, 사실적인 연기 양식과 작위적인 연기적 메소드를 혼용해 작가의 폭넓고 다양한 스펙트럼의 언어들을 속사포처럼 템포감 있게 쉼 없이 보여준다. 어느 한편으론 야릇한 노스텔지어에 빠져들게 했다.

작품의 전반적인 미학을 구축해 낸 또 다른 창작자 여신동의 무대는 작품의 메시지와 이미지를 한 차원 높은 과감한 미학적 접근으로 작품에 생동감을 심어 주었다. 가변형 극장을 최대한 활용해 개연성 있게 변형된 무대는 객석을 파괴하고 일직선상으로 대치한 또 다른 간이 무대를 선보였다. 김정일의 대형 초상화와 공허함으로 채워진 빈 무대를 병치시켜 작품의 본질적 이미지를 극대화 시켰다.

연극 ‘목란언니’는 2012년 다양한 수상으로 이미 검증 된 작품으로 세련된 연극적 재미에 푹 빠져들게 했다. 창작자의 역량을 펼칠 수 있는 장(場)을 만들어 준 두산아트센터의 창작자 지원 제도에 대한 예술 기업으로서의 높은 안목과 실천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유희성 he2sung@hanmail.net
사진_두산아트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