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저지보이스’는 1960년대 미국 팝 음악계에 혜성처럼 등장하여 당시 팝 차트를 휩쓸었던 전설적인 그룹 ‘포시즌스’의 이야기다. 네 명의 멤버들이 어떻게 만나 팀을 결성하게 되었는지부터 시작하여 우여곡절 끝에 그들의 화려했던 성공 가도를 거쳐 팀의 와해와 해체, 그리고 재결합하는 과정을 그들의 사실적인 이야기와 음악으로 그려낸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작품은 뉴저지 뉴어크(Newark) 거리에 살던 가난한 촌뜨기 아이들이 어떻게 로큰롤 최고의 명예의 전당에 오르게 되었는지를 그린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그들의 팀명에 맞게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에 빗대어 네 명의 멤버들이 시즌별 해설자로 등장한다. 자신만의 시선에서 지나간 과거를 회상하는 일종의 다큐멘터리 방식을 취하고 있다.
 
멤버들의 이야기는 ‘포시즌스’의 데뷔 시절부터 다채롭고 풍성하게 시작한다. 그들이 활동했던 근 40년간, 개인과 팀의 삶과 사랑, 그리고 성공과 팀 해체의 위기를 거쳐 오늘날까지 최고의 히트곡을 가지고 있는 전설적인 그룹으로 회자되고 있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펼친다. 매우 독특하고 설득력 있는 구성과 잘 맞춘 퍼즐을 풀어내는 것 같은 기막힌 타이밍에 그들의 노래가 적절하게 어우러지며 흘러나온다. 드라마와 음악적 구성이 매끄럽고 유기적으로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척척 아귀를 맞추어낸다.

거기에 트러스의 프레임을 활용한 상징적이고 기능적이며 세련된 무대장치가 인상적이다. 팝아트와 만화적 일러스트를 담는 미학적 LED와 이중적 철망 패널의 적절한 활용, 상하부 전환의 수랭식 오토메이션을 통한 부드럽고 매끄러운 무대 운영과 각 신(Scene)마다 착착 감기는 조명의 옷을 입고 전체적으로 세련된 무대 미장센을 일구어냈다. 뮤지컬 ‘저지보이스’는 기존 주크박스 뮤지컬의 대명사 ‘맘마미아’와는 또 다른 차원의 역작을 만들어냈다.

흥미롭게도 지금 블루스퀘어 극장에서는 주크박스 뮤지컬의 대명사로 불리는 ‘맘마미아’와 ‘저지보이스’ 두 작품을 동시에 공연하고 있다. 그동안 국내에서도 주크박스 뮤지컬과 무비컬(영화 원작), 노블컬(소설 원작), 드라컬(드라마 원작)이 유행하며 많은 뮤지컬이 무대에 올랐다. 하지만 음악과 드라마의 골계가 매끄럽지 못하거나 무대화하는데 억지스러움이 많아 전반적인 조합이 잘 맞지 않은 경우가 다반사였다. 위 두 작품은 주크박스 뮤지컬의 방향이 무엇을 어떻게 잡아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모범적인 전례를 보여준 듯하다. 앞으로 주크박스 뮤지컬을 만들 제작자나 창작자들은 위 두 작품의 구성과 흐름을 반드시 참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뮤지컬 ‘저지보이스’는 각본가 ‘릭 엘리스’와 ‘마샬 버릭먼’, 그리고 토니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던 연출가 ‘데스 맥아너프’의 빛나는 무대화의 내공과 저력이 빛난다. ‘포시즌스’의 음악을 듣고 자란 중장년층뿐 아니라 2030 세대들의 취향까지 확실히 사로잡아 명실공히 전 세대를 아우르며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하루아침에 뚝딱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작품에는 1차 창작자들의 창의적이고 빛나는 혜안뿐 아니라 그것을 관철하기 위한 오랜 준비와 설득 등이 있었다. 이러한 노력 끝에 홍수처럼 쏟아지는 일련의 다른 주크박스 뮤지컬과 확실한 변별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사실을 왜곡하거나 과장하지 않고 또한 덧붙이지 않으면서도 그들만의 가장 진솔한 스토리와 적합한 음악적 배치에 세련되고 창의적인 무대 운영의 노하우가 더해졌다. 이러한 연출로 잘 빠지고 딱 맞는 옷을 입은 듯한 볼거리와 감동, 자칫 기억에서 멀어져 갈 수 있는 그룹 ‘포시즌스’, 그들을 새롭게 각인하게 하고 세대를 넘어 관통할 수 있는 새로운 주크박스 뮤지컬의 전형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뮤지컬 ‘저지보이스’는 2005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하며 주크박스 뮤지컬 최초로 2006년 토니상에서 최고작품상을 비롯해 4개 부문을 석권했으며 OST는 그래미상에서 베스트뮤지컬앨범상을 수상했다. 뮤지컬 ‘저지보이스’는 영국 웨스트엔드 올리비에상 등 전 세계 42개 주요 시상식을 휩쓸었으며, 그 후광으로 최근에는 영화배우이자 감독인 클린트 이스트우드에 의해 영화화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그 뜨거운 인기를 실감하고 있다.

이처럼 텍스트와 음악, 캄보밴드의 뛰어난 연주, 단순하지만 재치있고 유니크한 안무와 무대 미장센, 또한 무대 전환과 운영 등의 세련된 테크닉의 무대 연출은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 타이밍과 세련미를 자랑했다.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무대의 꽃인 배우들의 가창이 기대했던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는 점이다.

‘Can't Take My Eyes Off You’나 ‘Sherry’ 등 자주 들어 귀에 착착 감기는 익숙한 솔로곡 들은 물론이거니와 단순하지만 멋지게 편곡된 4중창의 음악적 각 파트의 화성이 조화롭거나 브랜딩이 딱 떨어지지 않았다. 특히 메인 보컬을 맡은 ‘프랭키 밸리’역의 얼터(대역)인 ‘이코 밴 렌스버그’는 발성이 제대로 되지 않고 쥐어짜며 내지르는 비음 섞인 샤우팅과 상당 부분 조금씩 떨어진 피치로 인해 음악적 앙상블을 이루지 못했다. 이 역할에서 기대되는 가창력은 폭넓은 음역을 아우르는 내추럴 벨팅 창법과 알맹이 있는 팔세토 창법이다. 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놀라운 기량의 가창에 대한 기대는 엇나가고 ‘포시즌스’의 음악적 완성도를 오히려 저해하고 있어 많이 아쉬웠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주크박스 뮤지컬로 기대할 수 있는 음악적 진정성이 느껴졌다. 세련되고 모범적인 텍스트와 자로 잰 듯한 송 모멘트의 흩어지지 않는 유기적인 흐름, 거기에 완성도 높은 무대 미장센과 세련되고 깔끔한 무대운영의 레이아웃으로 국내 주크박스 뮤지컬 시장에 또 한편의 매우 우호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극제인 것만은 확실하다.

뮤지컬 ‘저지보이스’는 1월 17부터 3월 23일까지 블루스퀘어 삼성카드홀에서 공연된다.

유희성 he2sung@hanmail.net

사진_노오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