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디토 페스티벌 - 정재일, 지용, 성민재 '언타이틀드'(Untitled)>
클래식이 지루하고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는 사람들도 충분히 흥미를 가지고 지켜봐도 좋을 무대, 슈베르트의 '마왕'을 끼와 실력이 출중한 세 명의 아티스트들이 저마다의 색으로 변주해 눈과 귀와 감성이 모두 자극될 공연이 바로 <디토 페스티벌 - 언타이틀드>이다.

감미로운 말로 아들을 죽음으로 유혹하는 마왕, 그런 마왕을 보고 무서움에 떨며 신음하는 아들, 아들을 품에 안고 집으로 빠르게 말 달리는 아버지. 하지만 아버지가 집에 도착했을 땐 이미 아들은 세상을 떠난 후라는 것이 슈베르트의 '마왕'이 담은 이야기다. 곡 초반 말 구르는 소리를 긴박하게 표현한 빠른 템포의 음과 함께 청중들은 단숨에 이 곡 안으로 빨려 들어가곤 한다. 

정재일은 판소리와 한국 전통 타악기, 서양의 현악기 등을 사용해 이색적으로 '마왕'을 해석하고, 무용이나 시각 장르에 남다른 관심을 보여왔던 피아니스트 지용은 뉴욕에서 친구들과 함께 촬영한 영상을 피아노 연주에 더할 것으로 보인다. 더블베이스는 다른 악기들보다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아 성민재의 이번 연주가 악기와 사운드를 제대로 음미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다.

<프로즌>
제대로 된 연극 한 편을 보고 싶다면. 이 공연을 주목해보자. <프로즌>은 1998년 영국에서 초연된 작품으로 이번이 국내 초연이다. 연쇄살인으로 어린 자녀를 잃게 된 엄마,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학대를 당한 연쇄살인범, 다양한 사례의 연쇄살인범을 연구하는 정신과 의사의 삶을 교차해 보여준다.

<프로즌>은 극 초반부까지 배우의 독백으로 진행되는 독특한 형식으로, 연기 하나는 끝내주게 잘하는 극단 맨씨어터 배우들과 최근 서울시극단 단장에 선임된 김광보 연출의 시너지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연쇄살인, 정신분석 등의 소재로 극 내용이 무겁고 어둡지만 그러기에 보고 나면 여운이 길게 남는다. 안타까운 점은 연장 공연까지 전석 매진으로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야심한 새벽 때때로 올라오는 취소표를 노려보자.

<스피킹 인 텅스>
사람의 마음은 간사해서 때로는 그 자신조차 속이기 쉽다. ‘사랑’에 관해서는 더욱 그럴지도 모르겠다. 올해 국내 첫 무대에 오른 연극 <스피킹 인 텅스>는 불륜, 애증, 집착 등 다양한 관계로 얽힌 남녀들의 모습을 통해 사랑 이면에 있는 온갖 모순된 감정들을 엿보게 하는 작품이다. 등장인물들에게 사랑은 증오이기도 하며, 두려움이기도 하며, 미련 혹은 핑계이기도 하다. 총 3막에 걸쳐 펼쳐지는 그들의 이야기를 보다 보면 인간의 감정이 얼마나 예민하고 복잡한 것인지, 그러므로 누군가를 ‘안다’고 말하거나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섣부른 행동일 수 있는지 새삼스레 생각하게 된다. 각기 다른 시공간에서 펼쳐지는 1~3막의 이야기가 절묘하게 교차되는 짜임새도 놀랍고, 1인 2~3역을 맡은 네 남녀배우의 연기를 보는 것도 즐겁다. 사랑에 대해, 관계에 대해 한번쯤 깊이 곱씹어보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

글 : 황선아, 강진이, 박인아 기자
사진: 플레이디비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