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공작소 마방진 10돌 자축 3인
고선웅 예술감독·고강민 대표·조영규 배우
연습실 개조한 극장서 고군분투 출발
10년치 수업료 치르고 제 색깔 찾아
단원전원 동의할 때 새 단원 영입
'만장일치 입단제' 지금껏 이어져

한가족이라고 해도 믿겠다. 웃는 모습이 닮아서다. 각자 너무 바빠 이렇게 한데 모인 것이 오랜만이라는, 극공작소 마방진을 대표하는 세 남자 조영규(왼쪽부터) 배우와 고선웅 예술감독, 고강민 대표. 이들은 “지치지 말자. 건강만 해달라”라며 입을 모아 말했다(사진=김정욱 기자 98luke@).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리듬감 있는 속사포 대사’ ‘기발한 연출력’ ‘씹을수록 맛깔나는 언어유희’ ‘슬프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애이불비(哀而不悲)’는 이제 ‘극공작소 마방진’의 수식어가 됐다. 2005년 창단해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마방진은 변화 대신 깊이를 택했다. 가야 할 길은 더욱 확고해졌다. 올해 창단 10주년을 기념해 연극 ‘강철왕’(2008)과 ‘홍도’(2014)를 선보이는 것도 이런 연유다. 마방진 스타일이 시작된 ‘강철왕’과 그들이 추구하는 연극성에 가장 근접한 ‘홍도’는 마방진 10년의 처음과 끝을 보여준다.

6년 만에 돌아온 ‘강철왕’ 앙코르 공연이 한창인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예술극장 무대 위로 마방진의 숨은 주역인 세 사람을 불러냈다. 마방진 살림꾼 고강민(37) 대표와 마방진 1기 배우 조영규(39), 마방진의 레퍼토리를 구축한 고선웅(47) 예술감독이 그들이다.

△10년 마방진의 이름값…초심과 내일

“어렵고 복잡한 건 ‘가짜’ 같더라
쉽고 울림 있는 연극 하고 싶어”
고등학생 때까지 연극 한 편 본 적 없던 고 감독이 대학(중앙대 신문방송학과)에 들어가자마자 득달같이 달려간 곳은 연극 동아리였다. 그는 거기서 배우도 하고 극작·연출도 했다. 졸업 무렵 124만원에 산 컴퓨터 때문에 광고회사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첫 직장이 돼버렸다. 하지만 연극을 하겠다고 4년간 다니던 광고회사를 박차고 나와 대본만 썼다. 1999년 희곡 ‘우울한 풍경 속의 여자’로 신춘문예에 당선돼 연극계 첫발을 내딛었고 2005년 드디어 극공작소 마방진을 차렸다. 연습실을 개조해 극장을 짓고 말 그대로 전 재산을 쏟아부었다.

극공작소 마방진 10년의 처음과 끝을 보여주는 작품 ‘홍도’(2014)와 ‘강철왕’(2008). 두 작품의 주역인 마방진 단원 1기이자 ‘홍도’로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배우 양영미(왼쪽)와 ‘강철왕’의 김동원(사진=극공작소 마방진).

처음 생각했던 극단 이름은 ‘이빨과 심장’. 고 감독은 “이빨처럼 심장처럼 살아야 한다는 의미인데 지금 생각해보면 오래갈 이름은 아니었다”고 회상했다. 국문과 선배에게 밥을 먹으러 가는 길에 극단이름을 물어봤더니 단박에 나온 이름이 ‘마방진’(가로·세로·대각선 어느 방향이든 숫자의 합이 사방으로 일치하는 진법)이었단다. 그 자리에서 오케이, 그날 라면과 떡볶이를 샀다고 했다.

사실 극단을 차릴 계획은 아니었다. 원래 작가와 연출, 프로듀서로 구성한 기획집단을 만들고 배우는 아웃소싱 구조로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작품을 해보니까 이게 아니구나 싶었다. 극단이 추구하는 철학과 의지가 있고, 서로 생각을 쌓고 공유해야 제대로 된 연극이 나온다는 걸 알게 됐다”(고 감독).

2007년 첫 단원모집에서는 ‘정신과 척추가 똑바로 서 있는 자, 사랑을 해본 자, 10만원을 지금 당장 구해올 수 있는 자’를 자격으로 내걸었고, 자기소개서엔 ‘10년 후 자신의 모습을 기술하라’고 적었다. 단원 8명으로 출발했다. 지금은 46명(1~5기). 영화나 다른 작품에 참여하는 배우를 빼고도 30여명이다. “지금은 연륜도 생겼고 모집공고는 달라졌다. 하하. 우선 사람 됨됨이를 본다. 인간이 안 된 배우는 ‘만인의 적’이다”(고 감독).

배우들에게 “인간이 먼저 돼라”고 주문하는 고선웅 사단에는 조영규, 이명행, 양영미, 김명기 등 연극계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진정성 있는 연기로 주목받고 있다. 조 배우는 “전원이 동의할 때 새 단원을 받는 ‘만장일치 입단제’를 지금껏 고수한다. 연기나 작품에 대한 조언은 물론이고 인생에 대한 조언은 서로에게 피와 살이 된다”고 거들었다.

△좌절도 있었다…레퍼토리 ‘깔’로 이겨내

시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연습실을 개조해 만든 100석 내외의 극장에서 2011년 임대료를 못내 쫓겨나 1년 반 동안 떠돌이생활을 했다. 그러다 구리아트홀의 제안으로 상주단체가 됐다. 좀 멀긴 하지만 임대료 걱정이 없고, 안정적 공간이 생겨 단원들 모두 흡족해한다”(고 대표).

극공작소 마방진의 고선웅(왼쪽부터) 예술감독과 고강민 대표, 단원 1기 조영규 배우(39)가 연극 ‘강철왕’을 올리는 있는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예술극장에서 만나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김정욱 기자 98luke@).

고 감독은 “살림까지 맡자니 너무 힘들었다. 침착하고 냉정한 프로듀서가 필요했다. 2010년 고 대표가 합류한 이유다. 나와 달리 털털하고 안목도 있어 궁합이 딱 맞는다. 단원들의 민원 해소는 물론 극단이 안정감을 찾았다”고 귀띔했다.

고 대표가 합류한 그해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각색한 ‘칼로막베스’는 온갖 연극상을 휩쓸었다. 2011년 ‘푸르른 날에’로는 더 큰 찬사를 받았다. 이후 손을 대는 작품마다 ‘마방진식=고선웅표’란 브랜드가 완성됐다. “마방진의 ‘깔’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극단 10년도 직장인 10년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10년 치 수업료를 치렀다. 비로소 당황하지 않고 내 생각대로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된 거다”(고 감독).

마방진이 가고자 하는 방향은 ‘대중극’이다. 고 감독은 “어렵고 복잡한 것은 ‘가짜’ 같더라. 쉽고 단순하지만 울림이 있는 연극을 하고 싶다. 점점 더 단순해질 거다”고 말했다. 또 “기회가 된다면 영화도 만들 거다. 우리 배우에게도 기회가 생길 테니까. 언론에 자주 나가 연극을 소개하려 한다”며 관객들이 찾아준다면 삼류처럼 보여도 상관없다고 말했다.

세 남자는 서로에게 10주년 자축인사를 건넸다. 고 감독은 “고 대표가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야 내가 아프거나 빠져도 극단이 굴러간다. 어디를 가든 배우들은 올바른 생각과 주관으로 나아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고 대표도 “예전에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생기면 걱정이 앞섰는데 돌아보니 그것 덕분에 발전할 수 있었다. 새로운 주문 많이 해달라”고 당부했다. 조 배우는 고 감독이 지난해 과로로 쓰러진 이야기를 꺼내며 “형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단원들도 다치지 말고 늘 화이팅하자”며 환하게 웃었다.

※극공작소 마방진은 2005년 창단, 이듬해 마술적 사실주의를 표방한 ‘모래여자’를 창단공연으로 연극 놀이를 시작했다. 2008년 집을 담보로 연습실을 차린 이후 소극장으로 개조했으나 임대료 문제로 2011년 폐관했다. 1년 반 동안 떠돌이 생활을 지내다 2013년 구리아트홀 상주단체로 선정돼 터를 꾸렸다. 2015년 창단 10년, 많은 상을 받고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많은 호평을 받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연극놀이 중이다.

10년 동안 공연 보니…

△모래여자(2006) △마리화나(2006 외 3회) △강철왕(2008 외 3회) △팔인(2008 외 1회) △들소의 달(2009 외 2회) △춘성(2009) △락희맨쇼(2009 외 1회) △칼로막베스(2010 외 10회) △워크숍 스미스 납치사건(2011) △워크숍 구름(2012) △워크숍 전쟁종결자, 리시스트라타(2012) △ 리어외전(2012) △영호와 리차드(2013 외 2회) △고독청소부(2014 외 1회) △홍도(2014 외 6회).

마방진 10주년 기념작으로 6년만에 앙코르 공연하고 있는 연극 ‘강철왕’에 출연중인 배우 조영규의 연습모습(사진=극공작소 마방진).

한가족이라고 해도 믿겠다. 웃는 모습이 닮아서다. 각자 너무 바빠 이렇게 한데 모인 것이 오랜만이라는, 극공작소 마방진을 대표하는 세 남자 고선웅(왼쪽부터) 예술감독과 고강민 대표, 조영규 배우. 이들은 “지치지 말자. 건강만 해달라”라며 입을 모아 말했다(사진=김정욱 기자 98lu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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