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사람이 이름도 없어…. 이뿐이로 해, 송이뿐. 난 김만석이야!”
하고 얼굴을 붉히며 뒷골목으로 뛰듯이 사라지는 한 남자. 10대 사춘기도, 20대 싱그러운 청춘도, 30대의 자신감도 아니다. 일흔이 훌쩍 넘어 이제 막 사랑에 빠진 욕쟁이 우유배달 할아버지의 수줍은 고백이다.

세상의 모든 것과 ‘이별’이 더 가까운 70대 노인들의 사랑이, 봄날 어느 꽃 봉오리보다 싱그럽게 맺고 피는 연극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사랑’을 ‘또’ 이야기 하고 있지만, 단순한 사랑 노름으로 휘몰아내서는 안 된다. ‘아름다운 사랑’을 젊은이들에게만 쓰는 것에 대한 반기도 아니고, 노인들의 사랑을 더욱 우위에 두는 것도 아니다. 진실하고 순수하게 끝까지 믿음을 보여주는, 사랑 그대로의 사랑을 정직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시작되는 연인을 보여주는 한 쌍, 한 없이 가파른 언덕 길 위로 오토바이를 타고 내려오는 우유배달 할아버지 김만석과 파지 담긴 수레를 끌고 올라오는 송씨 할머니. 세상 만사는 순간의 장난으로 이루어지듯, 엇갈리는 두 남녀가 만난다.

영원으로 마침표를 찍는 한 쌍, 자식 뻘 되는 사람의 호통에 연신 머리를 조아리는 주차관리인 장군봉 할아버지와 홀로 집에 남아 벽에 그림을 그리며 세상과 멀어지는 조순이 할머니. 노부부의 진실된 사랑은 시간이 이루어내듯, 두 남녀는 늘 함께다.

강풀의 만화를 원작으로 지난 해 초연한 이 작품은 공연장에서 머리카락이 희끗한 노부부를 비롯해 중년 관객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지만, 의외로 객석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람들은 젊은이들이다. 이들은 천체를 울리는 쿵쿵대는 심장소리에 까무라치게 놀라 웃거나, 하얀 거짓말로 하얀 사랑을 지키려 하는 인물들의 모습에 눈물을 그칠 줄 모른다. 직설화법과 즉각반응, 쿨함에 얽매어 서둘러 감정을 감추고 포장하는데 지쳤다는 청춘들의 토로다.

연륜있는 배우들은 고스란히 무대 위로 그들의 저력을 펼쳐낸다. 오랜만에 연극 무대에서 만나는 최주봉은 이야기가 가진 극적 힘에 재치있는 그만의 몸짓을 제대로 녹아내어 눈물과 웃음을 실은 부드러운 롤러코스터에 관객들을 탑승시킨다.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을 모르겠는가’ 신경림은 자신의 시 ‘가난한 사랑노래’를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해서 남겼다지만, 여기에 한 줄을 더 넣어 세상 모든 이들에게 남겨보자 한다. 늙고 병들었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사랑은, 희망은 느끼는 자들의 것이며 원하는 자들의 것임을.


글: 황선아 기자(인터파크INT suna1@interpark.com)
사진: 다큐멘터리 허브(club.cyworld.com/docuher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