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평균이하 남자 여섯 명이 펼치는 ‘무한도전’, 덤앤더머 몸개그로 뜬 부실한 패밀리 등 2% 부족한 캐릭터가 먹히는 요즘. 제목에서 부터 위풍당당하게 잘났음을 외치는 연극 <모범생들>, 명문외고에 다니는 모범생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반장이었던 민영(홍우진)의 특급호텔 결혼식장에서 마주친 명준(이호영), 수환(김슬기), 종태(김종태)의 불편한 만남으로 극은 시작된다. GQ잡지에 나온 신상양복을 똑같이 빼입은 수환과 명준의 만남은 누구의 지갑이 더 두툼한가를 재려는 듯, 은근한 경쟁심이 느껴진다. 모나미 볼펜을 쥔 종태와 몽블랑 볼펜으로 으스대는 명준의 대면에서 묘한 긴장감마저 느끼게 된다.

고등학교 시절. 시험 스트레스 때문에 명준은 자살을 시도하지만 실패하게 되고 ‘돈으로 시험지를 사는 사람도 있는데 컨닝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논리로 친구 수환, 종태와 함께 컨닝을 모의한다. 그리고 반장인 영민이 중간고사 수학 답안지를 돈 주고 샀다는 정보를 얻은 세 사람은 영민을 협박해 시험에 대한 새로운 방안을 모색하게 된다.


이야기의 핵심은 어찌 보면 소소하기만한 고등학생들의 ‘중간고사 수학시험’이다. 그러나 3%등급을 향한 아이들의 욕심에는 상위 3%계급이 되기 위한 어른들의 욕망이 담겨 있고,  아이들의 컨닝이라는 수단에는 상위 집단으로 올라가기 위한 엘리트들의 달콤한 편법이 압축되어있다. 똑똑한 아이들의 집단체인 명문외고의 ‘모범생’들의 비뚤어진 모습은 썩은 물에 빠진 소수 ‘엘리트’집단의 전형을 포착하고 있다.

서른다섯 살, 1992년 학력고사 마지막 세대인 그들의 고등학교 시절은 ‘그 땐 그랬지’라는 노래를 떠오르게 하며 소극장에서 느낄 수 있는 세심하고 아기자기한 웃음을 준다. 그리 가볍지만은 않은 이야기이기에 이런 웃음 포인트는 더욱 강력하다. ‘유쾌하게 진지하고, 진지하게 유쾌하고 싶다’는 연출의 소망은 ‘돈은 흰 봉투에 담아, 그럼 뇌물도 깨끗해지거든’,‘친구는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 같은 타이밍에 맞아 떨어지는 절묘한 대사를 타고 관객석을 관통한다. 엘리트 집합체인 카이스트를 졸업하고 연극판에 뛰어든 김태형 연출의 비주류적 이력이 모범생들의 높낮이를 조절한 요인이라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바퀴 달린 책상의 이동만을 통해 단조롭게 표현한 무대는 학교, 도로, 옥상 등을 표현한 리드미컬한 조명으로 소극장의 한계를 충분히 채웠다. 다소 낯선 배우들에 대한 의구심은 컨닝을 하는 시험 시간, 긴박한 음악에 맞춘 배우들의 표현력을 보며 한 방에 날아갔다. 특히문제 많은 명문외고생으로 등장한 종태(김종태)의 사투리와 눈빛연기는 극의 리얼리티까지 살려준다. ‘남자 고등학생들은 무조건 주먹부터 날리나?’라는 생각이 들 정로도 감정이 복받칠 때마다 반사적으로 나오는 폭력장면은 아쉬웠지만, 이 또한 다른 누군가는 공감할 수 있는 고등학생 시절, 옛 기억일 수 있다.

우등생 관객만을 위해서 도통 어려운 말만 풀어내는 연극과 관객을 열등생으로 보고 무조건 웃겨만 보겠다는 심보의 연극이 가득할 때 웃음 뒤에, 생각할 여지까지 마련해주는 <모범생들>은 쉽게 만날 수 없는 연극의 ‘모범생들'이다.

글: 강윤희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kangjuck@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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