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싹함은 발레와 어울리지 않는 수식어였다. 하지만 이번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스노우 화이트> 공연장에 들어서면 오싹하고 음산한 기운, 그리고 그 기운과 함께 무용수들의 손끝, 발끝에서부터 스멀거리며 올라오는 에로틱함이 곧 무대 위를 잠식하게 되는 광경을 목격할 것이다. 발레 <스노우 화이트>가 주목 받을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그간 <제이슨 므라즈 콘서트>, <스튜디오 지브리 레이아웃 전> 등 다양한 장르의 문화 예술을 소개해 온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가 열 여섯 번째 무대로 선보이는 것은 파격 발레 <스노우 화이트>이다.

스노우 화이트, 즉 백설공주 이야기는 계모가 주는 독이 든 사과를 먹고 쓰러진 백설공주를 용감한 왕자가 구해낸다는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로 우리에게 더욱 유명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 <스노우 화이트>는 독일 그림 형제가 쓴 원작 동화에 기반하여 사랑에 눈을 떠가는 백설공주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파격 발레의 아이콘, 앙쥴렝 프렐조카쥬
무엇보다 <스노우 화이트>에 기대가 실리는 이유는 무용계에서 파격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세계적인 발레 안무가 앙쥴렝 프렐조카쥬가 자신의 발레단과 함께 선보이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1957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클래식 발레를 시작했으나 이후 현대무용으로 전환, 1984년 자신의 첫 안무작 <암거래>를 선보였으며 같은 해 프렐조카쥬 발레단을 창단했다. 그간 그가 보여준 작품들은 고전과 종교, 영웅, 사회 등 다양한 소재를 판에 박힌 시각에서 탈피한 독창적인 해석으로 풀이해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었다.

특히 1996년 작 <로미오와 줄리엣>은 앙숙 집안에서 태어난 남녀의 비극적 사랑이 아닌, 공동체가 붕괴되고 가족이 해체되는 현 사회 현상을 빗대어 폭력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내 화제가 되었고, 2001년 작 <헬리콥터>에서는 바이올린과 엔진의 굉음이 섞인 음악과 함께 헬리콥터 프로펠러가 인간의 사지를 훑고 지나가는 것 같은 격렬한 춤으로 강렬한 이미지를 관객들에게 심어주기도 했다.

에로틱 백설공주, 자극에서 그치지 않는다.
<스노우 화이트>의 특징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배경음악이다. 우주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선율 뿐 아니라 일부는 천 명이 넘는 연주자에 의해 초연되기까지 한 거대한 오케스트레이션의 교향곡, 바로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이 <스노우 화이트>의 음악이 되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때때로 낭만적인 말러의 선율은 무대가 관객들에게 더욱 섬세하게 다가갈 수 있는데 탁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피에르 가르뎅, 장 파투 등을 거쳐 1970년대 후반부터 자신의 컬렉션을 통해 프랑스 패션계의 악동이라 불릴 만큼 파격적인 이슈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장 폴 고티에가 의상디자이너로 참여한 것 역시 이색적이다. 그는 뤽 베송 감독의 <제 5원소>를 비롯해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정부>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 등의 영화 의상을 디자인하기도 했는데, 프렐조카쥬는 2008년 고티에가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에서 영감을 받아 펼친 패션쇼를 보고 그와 이번 작품을 함께 하기로 결심했다고 전해진다.

수영복의 형태와 흡사한 백설공주와 계모의 의상은 강렬함과 섹시함이 극대화되었으며, 특히 천이 몸을 자연스럽게 감고 흐르듯 떨어지는 순백의 백설공주 의상은 "관능적이면서도 굉장히 순수한 느낌, 눈에 보이지 않는 힘으로 마치 기적처럼 천이 몸에 연결된 느낌을 주고 싶었다."는 고티에의 의지가 강렬하게 발휘된 부분이다. 몸통 양쪽이 뚫린 디자인, 다리 사이를 감싸는 하얀 천 등으로 순수함과 섹시함을 동시에 내뿜고 있다.

따라서 '어른들만을 위한 동화, 어른들만을 위한 발레'로 <스노우 화이트>를 이야기하지만, 자극과 파격에서만 그친다면 2008년 초연 후 지금까지 전 세계 무대를 누비는 생명력은 얻지 못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독특하고 개성 있는 조합들이 결국 프렐조카쥬가 작품을 바라보는 색다른 시선에 힘이 되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즉 단순한 권선징악이 아닌, 의붓딸을 희생해서라도 성적인 유혹과 여성으로서의 역할을 포기하지 않는 사악한 계모, 그 사이에서 사랑에 눈 떠가는 백설공주의 모습은 '백설공주'가 왜 어른들을 위한 이야기인지를 깨닫게 해 준다. 이번 <스노우 화이트>는 11월 14일부터 16일까지 단 3일간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 예정이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제공: 현대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