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덫-햄릿에 대한 명상 >의
햄릿과 망령을 만나다.

< 덫-햄릿에 대한 명상 >의 연습이 한창인 대학로를 찾았다. 연출을 맡은 김아라와 여배우 서주희 그리고 정영두, 하성광을 만날 수 있었다. 오늘은 남자 배우들만 얼굴에 철판을 깔고 유린하여 나왔다. 대학로가 내려다 보이는 넓은 창가 맨 구석에 앉아 남자들만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정영두는 2005 햄릿 프로젝트가 주목하는 인물 중에 하나이다. 그는 이미 한국 무용계에서 인정하는 안무가로 폭넓은 무용관객을 확보하고 명실공히 무용계의 스타로 군림하고 있다. 이번 작품에서는 극의 중심축이 되는 연극 <햄릿>의 제작자이자 배우 서우림(서주희)의 남편으로 분한다.

“고등학교 때부터 현장, 노동의 새벽, 꽃다지에서 연기를 시작했어요. 춤은 군대 제대 후 시작했었죠. 제가 안무가, 무용수라는 말 보다는 연기자? 아니 배우? 정확하게 무슨 단어로 정의할지는 모르겠지만 무대에 서서 하는 작업을 하기 위해 연기도 했고, 춤도 배웠고, 안무도 한 거라고 생각하시면 될 게예요.”

정영두는 춤을 추고 있는 것도 연기의 한 선상으로 생각하면 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는 무용작품으로서는 드물게 관객들을 울린 ‘달지 않은 공기’로 화제를 모았으며, 일본 ‘요코하마 댄스컬렉션 솔로 앤 듀오 컴페티션 대상 및 주일 프랑스대사관 특별상(2004)’을 수상하며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무용스타로 발돋움 했다. 그는 두 댄스 씨어터 대표이자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정영두는 우리 무용계 풍토에서 아웃사이더나 다름없다. 마당극, 노동극 배우이자 문화운동가로 활동하다 뒤늦게 무용에 빠졌다.

“연극을 했었다가 무용으로 돌아 섰다는 표현은 안 쓰고 싶어요.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저는 움직임. 연극 무대나 춤 무대나 다를 것이 없어요. 아직 뚜렷하게 정의할 수는 없지만 움직임에 관심이 많은 만큼 연극과 춤을 분리해서 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는 연기의 기법이 들어간 춤을 춘다. 춤의 기법이 들어간 연기를 한다. 그 맛을 알고 있기 때문에 연출 김아라가 망령으로 찍었는지(?)도 모른다.

배우 하성광은 독립군 스타일이다. 문화계에서 메이저나 언더그라운드로 표현한다면 언더그라운드이다. 연출 김아라는 이 언더그라운드에 있는 배우 하성광을 가차없이 찍어버렸다.

“전 작업 중에는 거절하지 않는 속성이 있어서요. < 덫-햄릿에 대한 명상 >. 이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 하셨을 때 거절하지 않았죠. 편하게 생각했는데 지금은 앞도 깜깜하고 장난이 아니라고 생각이 들어요. 가벼운 마음으로 감사하게 역할을 하겠다고 한 것이 지금은 정말 어려워요”

하성광은 언더그라운드다. 그렇지만 관록이 있는 배우이기도 하다. 군대를 제대하고 25살. 연극으로는 늦은 나이에 시작했다. 단원모집 포스터를 보고 전화해서 극단을 스스로 찾아간 그는 인생에 있어 놀기에 좋겠다 싶어 시작한 것이 10년을 훌쩍 넘어 버렸다. 그 동안 <사천의 착한사람<, <인간 오델로>, <주인 푼틸라와 하인 마티>,<꽃다방 블루스>,<관객모독>등의 연극을 하였고, <나쁜 영화>, <웰컴투 동막골>등에 출연했다.

“햄릿이라는 인물을 대하였을 때부터 떠오르는 동물이 ‘들개’였어요. 혼자 다니는 ‘들개’요. 그렇게 되니까 다른 사람들과는 관계가 없어지더라고요. 다른 들개와 만나서 이야기하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죠. 그런데 그건 생각일 뿐 어떤 동물이 건 내 안에 있는 것이지 동물이 아니란 생각이 들더군요.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것이 단 두 마디의 말이라도 진실되게 던져질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모든 예술가들이 그것을 잘 알고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찌그러진 깡통을 그리든 종이비행기를 그리든 자기가 사랑하는 대상을 그 내부까지 묘사해보려고 할 때 비로소 떠도는 자기의 영혼이 자기 육체 속으로 불려 들어지게 되는 거겠죠.
(이외수의 들개 중에서)

하성광은 < 덫-햄릿에 대한 명상 >에서 햄릿으로 또 햄릿을 연기하는 남준호로 녹아 들어 간다. <햄릿>이라는 고전은 훌륭하다고 이야기하는 배우 하성광. 현대에 이르기까지 셰익스피어의 진가는 드러나고 있다.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이 자그마한 부분이라 할지라도 조그마한 영향력이라도 가지게 된다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

정영두는 제작자와 <햄릿>에서 망령의 역할을 한다. 제작자는 모든 걸 가지고 있다. 부를 가지고 있으며 권력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아내이며 <햄릿>에서 거투르트 역을 맡고 있는 여배우 서우림(서주희 분)을 순수하게 사랑했던 때를 생각한다. 서우림은 많은 남자를 만나지만 제작자는 신경쓰지 않는다. 그러나 남준호의 출연으로 제작자는 질투한다. 복수를 하게 되는 제작자 정영두.

< 덫-햄릿에 대한 명상 >은 제작자이자 망령의 복수심의 이야기이다. 끝내는 비극을 부르는 인간의 본성 중 소유와 지배에 관한 폭력성을 말하고 있다.하지만 동시에 한 남자의 가슴 아픈 러브 스토리이며 결국 비극을 부르는 인간의 욕망으로부터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사랑’이라는 단순한 진리와 희망적인 메시지를 남기게 된다.

“첫사랑을 찾죠. 상처를 입고 내 귀에 독약을 들어 붙는 것과 같은 행동을 하게 되죠. 남준호는 덫에 걸립니다. 결국 서로에게 덫을 놓은 결과가 되는 거겠죠.”

제작자이자 망령의 정영두는 서로에 대한 덫을 이야기하고 있다. 정영두는 만약에 자기 자신이 제작자의 입장이라고 한다면 떠날 것 같다고 이야기 한다. 솔직히 나도 그렇다. 떠날 수 있으면 떠나버리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랑하는 거죠.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 유부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불륜이라고 이야기하겠죠. 사실은 덫이 아니라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사랑한다고 누가 나를 나쁘게 평가할 수 있고 돌을 던질 수가 있을까요?”

하성광은 지독하게 사랑을 선택한다. 어쩌면 지독하게도 인간의 삶을 잘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순박하고 순수한 느낌을 가진 영혼의 소유자인 하성광을 다시 보게 된다.

< 덫-햄릿에 대한 명상 > 우선 보고 싶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연출 김아라의 작품 세계를 한 번 더 엿보고 싶고, 정영두의 언어와 몸의 언어를 느끼고 싶다. 또한 하성광이 연기하는 속에서 순수한 영감을 가져가고 싶다.

“영감을 가지고 갔으면 좋겠어요. 삶의 일부분들을 얻어 가는 거죠. 사랑에 대하여 뒤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문화계에 계시는 분이라면 영상과 춤, 연기에 청각, 시각적인 이미지를 얻어 가셨으면 해요. 이번 작품에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각, 청각의 이미지가 풍부하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영감을 얻어 가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성광이 표현하고 말해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 햄릿에게서 그 순수한 영혼을 보고 싶다. < 덫-햄릿에 대한 명상 >이 막을 내리면 인간 하성광으로 돌아왔을 때 무엇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노래하고 춤을 추는 것처럼 < 덫-햄릿에 대한 명상 >에서 몸의 언어로 보여드릴 겁니다. 춤추는 춤꾼으로 생각하지 마시고 춤과 연기를 함께 하는 모습을 봐 주셨으면 합니다. 표현하는 것이 다를 뿐. 무대에서 연기하는 것은 똑같다고 생각해요. 배우와 관객의 교감이 필요한 극입니다. ‘찰라’의 시간이 배우와 관객들에게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 ‘찰라’를 놓치지 않고 호흡을 맞출 수 있으면 좋겠어요.”

텍스트에 근거한 움직임. 그 움직임으로 보여주고 싶어하는 정영두. < 덫-햄릿에 대한 명상 >을 통해 성숙하게 되는 자신을 보고 싶어했다. 5월 초에 문예진흥원예술극장 대극장에서 ‘평론가가 뽑은 제8회 젊은 무용가 초청공연’도 준비하고 있는 정영두. 그가 고르고 선택하는 찰라 또는 포즈를 꼭 찾길 바란다. 공간과 공간의 여백, 말과 말의 여백을 그는 몸의 언어로 때로는 언어로 표현 또는 멈춤으로 표현할 것이다.

< 덫-햄릿에 대한 명상 >의 하성광과 정영두를 인터뷰하고 나올 때 <햄릿>을 한 번 봐야겠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 덫-햄릿에 대한 명상 >이 시작되기 전 봐야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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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준한(인터파크 공연팀 allan@interpark.com)
사진 : 정원직(C&Com실장 artwork001@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