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뮤지컬이 된 뉴욕타임즈 2006년 최고의 문제작
뉴욕타임즈 1위, 2006년 최고의 문제작. 미국의 한 도서관에서는 금지도서로까지 지정할 만큼 논란이 됐던 한 레즈비언 만화가의 자전적 그래픽 노블(만화와 소설의 중간형태)이 뮤지컬로 만들어진다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그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2009년부터 5년에 걸친 작품 개발 과정을 통해 작년 10월 뉴욕 아스톨 플레이스에 위치한 오프 브로드웨이 극장 퍼블릭 씨어터에서 선보인 뮤지컬 <펀 홈(Fun Home)>은 수많은 비평가로부터 ‘2013년 최고의 뮤지컬’이라는 찬사를 얻었다. 뿐만 아니라, 그 후 수차례 연장 공연 끝에 ‘이 작품이 브로드웨이에 가지 않는다면 참으로 이상한 일일 것이다’라는 기대와 함께 최근 막을 내렸다. 미국 뮤지컬의 아버지 뮤지컬 작가 스티븐 손드하임을 비롯해 수많은 유명 연예인들이 이 작품을 봤고, 기립박수를 보냈다.

원작의 방향성을 잃지 않은 음악과 글
화제의 원작은 만화가 앨리슨 벡델의, 뮤지컬과 동명의 그래픽 노블 <펀 홈>. 몇 년 전 우리나라에서도 <재미난 집: 어느 가족의 기묘한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판되었다 절판된 만화책이다. 주인공인 조앤은 자신이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가족에게 알린 뒤 4개월 후, 사고인지 자살인지 알 수 없는 아버지의 부고를 접하게 된다. 어머니로부터 듣게 되는 아버지의 비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리지 못하고 고통 속에 갇혀 살아야만 했던 아버지를 이해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게 되는 이야기이다.

한 리뷰에서는 이 작품을 ‘어린 레즈비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첫 번째 메인스트림 뮤지컬’이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단순히 ‘동성애자에 관한 뮤지컬’이라고 한 줄로 요약할 수 없다. 작가 앨리슨이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아직도 여자의 이야기를 듣는 데 인색한 이 시대에 전하는 한 여자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 작품이 뉴욕 뮤지컬팬을 열광하게 만드는 이유가 여러 가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음악과 글(대본과 가사)이 원작이 말하고자 하는 이 한 여자의 이야기를 그대로 무대 위에 펼쳐내, 관객들이 감동 깊게 흡수할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날아오를 것인지, 나락으로 떨어질 것인지…
작가 리사 크론은 대본에서 세 명의 앨리슨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구조를 선택했다. 치마보다는 바지 입기를 좋아했던 어린 앨리슨, 동성에 호감을 느끼는 대학생 앨리슨, 그리고 아버지의 자동차 사고 후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되는 성인 앨리슨의 구조는 아버지와 딸이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서정적으로 이끌어간다. 첫 장면에 아버지가 어린 조앤을 비행기 태워주는 장면 또한 흥미롭다. 이 장면은 작품 후반부까지 ‘과연 나는 날아오를 것인지, 아니면 나락으로 떨어질 것인지’라는 테마로 이어지며, 동성애자인 아버지와 딸, 두 사람의 개인적인 갈등과 동시에 부녀간의 이해의 과정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데, 그 감정라인을 잡아가는 작가 리사 크론의 가사와 대사는 정확하고 또한 아름답다.

뮤지컬 <슈렉 더 뮤지컬 (Shrek the Musical)>, <캐롤라인, 오어 체인지(Caroline, or Change)>의 작곡가 지닌 테소리의 음악은 리사 크론의 글과 앨리슨 벡델의 이야기가 한 여자의 이야기로 방향을 잡고 갈 수 있게 한다. 수많은 명곡들이 이어지지만 그 중에서도 아버지 브루스의 자동차 사고장면에서 나오는 넘버 ‘Edges of the World’의 사고 직전 브루스의 혼란스러운 심경을 전달하는 선율은 소름끼칠만큼 복잡하고 처연하다.

아역 배우 시드니 루커스의 명품 레즈비언 연기
이 작품의 또 다른 볼거리는 아이들의 연기다. 특히 치마보다는 청자켓과 바지를 좋아하는 어린 레지비언 앨리슨을 연기하는 시드니 루커스의 춤과 노래는 어린 여자아이가 어떻게 저 복잡한 감정을 이해할 수 있는지 보는 이들을 놀랍게 만든다. 흠잡을 데 없는 이 작품을 보는 내내 <펀 홈>처럼 특별할 것 없지만 모두의 가슴을 울릴 수 있는 우리만의 한국적인 가족 이야기를 뮤지컬로 표현한 작품을 빨리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 4월 브로드웨이 기대작, 지닌 테소리의 뮤지컬 <바이올렛>
올 4월이면 작곡가 지닌 테소리의 초기 작품 중 하나인 뮤지컬 <바이올렛(Violet)>이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다. 원작은 <디 어글리스트 필그림(The Ugliest Pilgrim)>이라는 단편이다. 사고로 어린 나이에 얼굴에 큰 상처를 입게 된 소녀가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자 오클라호마의 튤사로 텔레비전 전도사를 찾아 떠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이야기다. 뮤지컬 <쏘롤리 모던 밀리(Thoroughly Modern Millie)>와 <애니씽 고우즈(Anything Goes)>로 두 차례 토니어워즈를 수상한 수튼 포스터(Sutton Foster)가 주연으로 캐스팅돼 더욱 관심을 모은다. <펀 홈>에서 받은 감동이 <바이올렛>을 더 기대하게 만든다.

사진제공: 뉴욕퍼블릭씨어터(www.publictheater.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