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뉴욕 통신에서는 4월말 발표돼, 최근 타임스퀘어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68회 토니상 후보작과 배우들, 그리고 최다 노미네이트된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 러브 앤드 머더>를 소개해볼까 한다. 올해는 특히 <해리 포터>의 주인공 대니엘 래드클리프, 한때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미드 <천재 소년 두기>의 주인공 닐 패트릭 해리스, 그리고 덴젤 워싱턴 같은 인기스타가 총출연한데다 굵직굵직한 신작이 많아 더욱 후보작이 궁금했던 4월이었다.

강력한 베스트 뮤지컬상 후보작
단연코 가장 눈이 가는 것은 바로 베스트 뮤지컬상. 후보작들이 쟁쟁하다. 요술램프에서 튀어나와 관객들을 홀리는 지니 덕분에 크게 인기를 끌고 디즈니사의 <알라딘>, 가수 캐롤 킹의 음악으로 만든 쥬크박스 뮤지컬 <뷰티풀: 캐롤 킹 뮤지컬>, <애프터 미드나잇> 그리고 <젠틀맨스 가이드 투 러브 앤드 머더(이하 젠틀맨)> 이렇게 총 4편이다. 1998년 <라이온 킹>의 베스트 뮤지컬 수상 이후, 다수의 작품 제작에도 불구하고 후보작 명단에조차 이름을 올려보지 못한 디즈니사에게 과연 <알라딘>의 지니는 그들의 세 가지 소원 중에 분명히 들어있을 이 영광스런 토니상 수상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을까? 하지만 아직까지 많은 이들에게 제목조차 생소한 <젠틀맨> 또한 만만치 않은 작품이다. 작년에 많은 사람들이 <마틸다>가 당연히 베스트 뮤지컬이 될 거라 장담하고 있을 때, 예상을 뒤엎고 환갑의 신디 로퍼 언니가 <킨키 부츠>로 트로피를 거머쥐지 않았던가? 모를 일이다.

과연 닐 패트릭 해리스와 겨룰 자가 있을까?
<헤드윅>팬이라면 이미 알고 있겠지만, 브로드웨이에서 재공연 중인 <헤드윅 앤드 앵그리 인치>는 토니상의 진행자이기도 한 인기스타 닐 패트릭 해리스가 출연해 현재 미스터 해리스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그의 인기에 힘입어 토니상의 명성도 나날이 올라가고 있는 만큼, 웬만하면 그에게 올해 뮤지컬 부문 최우수 남우주연상이 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전망에다, 그가 받았으면 하는 팬들의 기대와 소망까지 함께 어우러진 분위기. 하지만 <레미제라블>의 라민 카림루, <록키>의 앤디 칼도 무시할 수 없는 경쟁자다. <젠틀맨>의 두 남자 주인공 제퍼슨 메이즈와 브라이스 핑크햄도 모두 후보에 올라 접전이 예상된다.


제퍼슨 메이즈(왼쪽)와 브라이스 핑크햄(오른쪽)
서튼 포스터 VS. 캘리 오하라
뮤지컬 최우수 여우주연상 후보 중에는 이미 두 차례 토니상을 받은 바 있는 <바이올렛>의 서튼 포스터와 지금까지 네 번 노미네이트만 되고 매번 고배를 마셔야 했던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캘리 오하라가 눈에 띈다. 또한 이번에는 주로 뮤지컬 최우수 여우주연상에 이름을 올려놓곤 했던 오드라 맥도널드가 연극 부문 최우수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게 특이하다. 그녀는 연극 <레이디 데이 앳 에멀슨스 바 앤드 그릴>에서 전설적인 여성 재즈싱어 빌리 홀리데이 역을 연기하고 있다. 만약 이번에도 그녀에게 영광이 돌아가면 역사상 최초로 연기 부문 6개 토니상을 받는 수상자가 된다. 하나만 받아도 집안에 경사라는데 미세스 맥도널드가 이토록 토니상의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우리나라로 치면 이미자에 버금가는 타고난 목소리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올해 최다 부문 후보작 <젠틀맨스 가이드 투 러브 앤드 머더>
다음은 올해 토니상 10개 부문 최다 후보작으로 선정되며, 현재 최고의 화제작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젠틀맨스 가이드 투 러브 앤드 머더>. 우리말로 해석하면 <신사의 사랑과 살인 가이드> 쯤 되겠다. 후보작 발표가 있었던 4월 29일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었던 작품이다. 간혹 ‘정말 재미있었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꼭 보라는 사람들을 만난 적이 있기는 했지만, 최고 300불이 넘는 뮤지컬을 누구 말 듣고 보기는 참 그런 지라 망설이고 망설여지던 작품이다. 할인 티켓도 많이 뿌려졌던 이 작품이 지금은 브로드웨이 극장가에서 ‘정가를 주고라도 가장 보고 싶은 뮤지컬’이 됐다. 토니상의 공신력을 입증해주는 사건이다.

그래서 어렵게 티켓을 구해 본 결과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아, 정말 이 작품 이래도 되나? 뮤지컬이 이렇게 웃겨도 되나?’였다. 뻔뻔스럽게 재밌고, 침 튀겨가며 관객들의 혼을 빼놓는 뮤지컬코미디였다. 특히 침 튀겨가며 관객들의 혼을 빼놓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은데, 그건 우리나라 관객들이 꼭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젠틀맨>은 당연히 10개 부문, 아니 그보다 더 많은 부문 후보작에 오를만한 작품이다.

돼지도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말리라!
<젠틀맨>의 원작은 1907년 소설 <이스라엘 랭크>를 영화화했던 영국의 고전 코미디 <카인드 하트 앤드 코로넷>(Kind Hearts and Coronets)이다. 영국 코미디 냄새가 폴폴 풍기는 이 작품의 배경은 1909년 런던, 주인공은 연쇄살인범 청년 몬티. 그가 연쇄살인을 시작하게 된 결정적인 동기는 우리나라 막장 드라마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바로 그것,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부터다. 땡전 한 푼 없고 직장도 없는 그가 영국의 명문가 다이스퀴드 가문의 서열 아홉 번째 백작이라는 것!


몬티는 그 사실을 알리기 위해 제일 먼저 그가 사모하는 시벨라를 찾아간다. 하지만 그녀는 오히려 몬티에게 자기는 사랑보다 돈과 명예가 있는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하며, “네가 백작이 되려면 네 앞의 여덟 명이 죽어야되는데, 그런 일이 어떻게 일어나? 차라리 돼지가 하늘을 난다면 믿겠어!”라고 말하며 몬티의 자존심을 할퀸다. 그래서 그 순간 몬티는 결심한다. 자기 앞에 여덟 명을 모두 제거해버리고 돼지가 하늘을 날 수 있음을 입증해보이겠다고! 그리고 이때부터 2004년 연극 <아이 엠 마이 오운 와이프>로 토니상 최우수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제퍼슨 메이스의 팔색조 연기가 펼쳐지며, 본격적으로 살벌하게 웃긴 코미디가 시작된다.

제퍼슨 메이스는 이 작품에서 참 다양하게 죽는다. 그리고 그 여덟 명이 남자였다 여자였다 목사였다 배우였다 노인이었다 버라이어티하다. 그 다양한 여덟 명이, 그것도 매번 더 웃기게 죽어야하니 얼마나 힘들겠는가? 하지만 제퍼슨 메이스는 굴하지 않고 매번 ‘저 다이스퀴드는 또 어떻게 웃기게 죽을까?’ 궁금증을 유발하며 점점 더 큰 웃음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한다. 목소리를 바꾸고, 연기스타일을 바꾸고, 믿을 수 없이 재빠른 의상체인지에 눈이 의심스러울 정도다.

명장들의 손길이 느껴지는 뮤지컬 코미디의 진수
<젠틀맨>이 이토록 웃길 수 있는 데는 원작과 배우들의 연기력도 있겠지만, 그 외의 많은 요소들이 명장이 제작한 시계처럼 잘 맞아 돌아가기 때문이다. 먼저 로버트 프리드만과 스티븐 루트백의 탄탄한 대본, 코믹한 클래식 음악과 가사가 살벌한 뮤지컬 코미디가 될 수 있는 기본을 완성시킨다. 거기에 스티븐 손드하임의 작품을 주로 오케스트레이션 하는 조나단 튜닉의 터치가 음악을 완벽한 코미디로 완성시키고 셰익스피어 스페셜리스트라고 불리는 달코 트래슨 잭의 연출이 이 작품만의 고유한 코미디 스타일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세트와 의상이 이 작품이 최고가 될 수 있도록 그 모든 디테일을 채운다.

하지만 작품에 대해 알게 된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작품의 기본이 순수한 열정을 토대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젠틀맨>은 상품을 찍어내듯 만드는 브로드웨이의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다. 이 작품에 참여한 창작자들은 대부분 처음으로 브로드웨이에 입문하거나 그렇게 유명하지 않은 사람들로, 순수한 열정만을 가지고 10년의 제작과정을 거쳐 이 작품을 탄생시켰다. 마치 오래 전 뮤지컬 <유린 타운>을 처음 접했을 때의 신선함과 열정이 느껴졌다. 그래서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과감하며, 젠체하지 않고 시원하게 웃겨주기에 굳이 작품 속에 녹아있는 영국 계급 사회 풍자를 논하지 않아도 이미 얼마나 이 작품이 영리한지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스위니 토드> 이후로 가장 살인을 잘 뮤지컬화한 작품이라는 호평을 받는 이유이겠다.


휴 잭맨, 68회 토니상 진행 예정
이번 토니상의 사회는 닐 패트릭 해리스가 <헤드윅>에 출연하는 관계로 휴 잭맨이 대신 한다는 소식이 또 하나의 화제가 되고 있다. 과연 <젠틀맨>은 10개 부문 중에 몇 개의 상을 받게 될까? 닐 패트릭 해리스가 남우주연상을 받게 될까? 그 결과는 6월 8일 뉴욕 라디오 시티 뮤직홀에서 열리는 시상식에서 확인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