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스산하고 얼굴에 스치우는 공기는 마냥 차갑기만 합니다. 지난 여름의 견디기 힘든 무더위가 지나고 드디어 가을이 왔구나 좋아했더니, 이 녀석, 어디론가 급히 도망가 버리고 이제 겨울이 슬쩍 모습을 드러내려 합니다. 그래서 그런가요. 요즘 들어 부쩍 사랑 이야기가 많아지네요.

사랑. 말하고 또 말해도 언제까지고 계속해서 말할 수 있는 그것. 이번엔 좀 덜 힘들겠지, 이번엔 좀 덜 아프겠지, 지난 상처를 잠시 잊고 방심했다가 수없이 또 마음 다치게 되는 그것. 좋을 땐 한없이 좋아서 여기가 천국인가 싶다가도 어디선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하면 내 이 심난한 마음속이 지옥이지 싶기도 한 그것. 누군가는 눈물의 씨앗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사랑 밖엔 난 모르겠다고 했던 바로 그 것. 참, 알다가도 모를 그것. 두 편의 사랑이야기를 만나러 스산한 바람과 찬 공기를 가르고 국립극장에 올랐더랍니다.

만일 누군가가 이 공연을 가리켜 “좋았다” 와 “별로였다” 중에서 어느쪽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그 누군가에게 제발 보기를 하나만 더 달라고 하고 싶습니다. 저는 이 공연이 “참” 좋았더랍니다.

검은색 뿔테 안경에 전형적인 소심남의 외양을 갖춘 경호(송새벽)는 시인입니다. 늦은 밤 마지막 버스를 놓친 경호(송새벽)는 같은 처지의 그녀, 인형을 만든다는 영은(조은영)을 만나게 되고 그렇게 우연히 사랑을 하게 됩니다. 당사자에게는 인생이 걸린 단어이지만 수많은 드라마에서 너무 우려먹어 이제는 통속과 진부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단어, 시한부. 경호(송새벽)는 시한부 인생입니다. 그녀에게 짐이 되기 싫어 훌쩍 떠났지만 그녀는 이미 아이를 가졌답니다. 혼자 남을 그녀가 너무 안쓰러워 지우라고 했지만 그녀는 그저 울기만 합니다. 그렇게 그도, 그들의 아이도 이젠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택시기사인 춘근(송영범)은 어느 비 오는 날 이상한 손님을 태웠습니다. 처음엔 그냥 좀 이상하다 싶었는데 정말 이상하게도 자꾸 그녀 생각이 납니다. 어떻게든 얼굴 한 번 보고 싶고 어떻게든 한 번 만나보고 싶고 말이죠. 그리고 그렇게 영은(조은영)에게 새로운 사랑이 찾아옵니다. 결혼이라는 선물과 함께 말이죠.

경호(송새벽)에게 영은(조은영)이라는 선물이 찾아왔고, 영은(조은영)에게는 춘근(송영범)이라는 선물이 찾아왔듯이, 춘근(송영범)에게도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던 선물이 찾아옵니다. 이제 곧 아이 아빠, 그것도 쌍둥이 아빠가 된다고 하네요. 자~ 이제 통속의 결정체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은(조은영)은 아이를 낳을만한 몸 상태가 아닙니다. 심지어 아이를 나으면 산모의 생명이 위태롭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아이를 낳기로 결심합니다. 이제는 그녀가 사랑을 줄 차례입니다. 심히, “병원 24시” 내지는 “인간극장” 스러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신파도 이런 신파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공연 참 아기자기합니다. 큐빅 같은 소품들로 무대 전환을 하는 아이디어도 참 좋았고 웃음이 터지게 하는 재치 있는 대사들도 참 좋았답니다. 그렇게 자칫 방심했다가 또 한참을 신파의 물결에 휩쓸려서는 울먹이며 눈물을 훔칩니다. 그런데 그 신파가, 그 통속이, 그 진부가, 참 좋았더랍니다. 신파 아닌 사랑이, 통속적이지 않은 사랑이, 진부하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랑, 그거 참, 가슴 뻐근한 거잖아요.

영은(조은영)이는 그러더군요. 헤어지고 나서 눈물이 나면 자기 몫을 남기고 사랑한 거고, 눈물이 안 나오면 정말로 모두 털털 털어서 사랑한 거라고. 그래서 그랬었나 봅니다. 나는 늘 털털 털어서 사랑하지는 못했었나 봅니다. 내 사랑은 고사하고 남의 사랑을 보면서도 이렇게나 눈물이 나니 말입니다. 이제 제 심장으로는 더 이상 사랑 같은건 견디지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열심히, 가슴 뻐근하게, 사랑하고 계십니까?




극단 더늠 <사랑합니다> 국립극장 별오름극장 2006.9.16 ~ 2006.10.29
작/연출 : 차지성
출연 : 조은영, 송영범, 송새벽

배우분들이 그리는 사랑얘기가 이뻐보였어요.
나중에 떠나고 남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해지더라구요.
화려한 볼거리가 아닌 잔잔하게 감동을 주는 연극이어서 아주 좋았어요.

작년 대학로에서 '사랑합니다'를 보고 또 봤습니다.
그 때도 코끝이 찡한 감동과 여운이 있어 한참동안 객석에 앉아있었는데
올 해도 여전하네요.

사랑합니다는 이루어질 수 없지만,
그 안에서 사랑의 본질을 발견해가는 세 남녀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사랑은 흐르고, 그래서 그 안에서 서로의 사랑을 발견하는 그들을 보니
저 또한 옛 추억이 살포시 떠오르더군요...^^


옛 사랑이 생각나는 연극,
극장 문을 나서서 맞는 바람조차 따뜻하게 느껴지는 공연.

<사랑합니다> 너무 화이팅이에요, 또 보러갈께요~

세 명의 배우가 예쁘게 사랑하고 열심히 사랑해서 슬픈 연극입니다.

연극을 본후 '열심히 사랑하면 이별해도 기쁘다'는 대사를 여러번 곱씹었습니다.

이쁘다. 사랑한다.

공연을 보시면 아마 이런 말들을 자주 하시게 될겁니다^^

일욜 4시 공연 조촐히 20명내외로 관람한 연극..
생각보다 의자가 불편하여 좀 고생을~~~
남자연극인들의 연기가 돋보인 연극 2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