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산울림 고전극장, 산울림 뭘 보고 작품 선택한 거지. 소재 괜찮아서 궁금했던 작품이었는데, 차라리 어제 바빠서 못 보는 게 나았었어. 나 홍대까지 왜 갔지.

제가 까는 후기 정말 잘 쓰는데, 솔직히 이 극에 시간 소비, 활자 소비하는 것도 아까워서 같이 본 지인이 쓰는 글 족족 리트윗하는 걸로 넘어가려고 했는데, 지인 리뷰에 연출이 나타났네. 와, 극도 구렸는데, 지금 연출이 보낸 멘션도 구려. 혹시나 5필리어 잡아놓은 분은 취소하세요. 여러분의 돈과 시간은 소중합니다.

다섯 명의 배우가 등장한다. 여자 배우가 다섯이나 나와 여성의 목소리를 대면하는 극은 없었기때문에 각각의 서사마다 지루하다,라는 마음이 들 때마다 내가 지금 이래선 안되는데, 또 너무 심하게 검열하는 건가,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다. 그냥 지루하고 구리다. 개인적으로 첫 번째 오필리어 배우 몸선이 마음에 들어서 기대했는데, 뭘 얘기하고 싶은 건지, 지금은 알겠는데, 객석에 앉아있을 때만해도 그래서 뭘 말하고 싶은 거야. 그리고 다른 네 명의 오필리어는 현대 사회 여성으로 설정했는데, 왜 첫 번째 오필리어만 파란색 원피스에 어디 고전에 나오는 여성으로 설정한거야. 묘하게 위화감이 느껴져서 앞서 말한 것처럼 내가 너무 검열한 건가 싶었는데, 지금 그 위화감의 정체를 알아냈다.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그리는 전형적인 영국 아가씨 느낌이야. 그거 진짜 구린데, 이걸 뭐라고 풀어서 설명해야할지 모르겠다. 인형의 집,을 배경으로 했다고 해도.

두 번째 오필리어는 데이트 강간과 폭행의 피해자, 네 번째 오필리어는 시인 지망생으로 유명 시인이자 교수의 강간 피해자, 다섯 번째 오필리어는 배우로 성상납 피해자로 그렸는데, 시발, 소외받은 여성하면 얘기할 게 "강간" 밖에 없죠? 솔직히 말해서 첫 번째 오필리어 마임에도 그럴 여지가 보이는 느낌이 있어서 쎄했는데, 그저 내가 예민해서 그랬다고 말해줘라.

세 번째 오필리어가 세월호 피해자인 건 진짜, 물론 모든 에피소드가 강간으로 시작해 강간으로 끝나도 나오면서 내가 왜 이걸 보러왔지,라는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만, 극이 말하고자하는 주제와도 상관없고, 심지어 그 에피소드에 대한 충분한 고민이 느껴지지도 않았고, 지금 뭐하는 거지. 그리고 강간 묘사 이건 너어어어무 포르노적 시각이잖아. 피해자가 느끼는 공포가 아니가, 그저 포르노적인 마임을 무대 위에 적나라하게 전시해놓은 거다. 말그대로 게으르고 무능력한 전시. 지금까지 나는 피해자들의 고통을 이런 식으로만 봤고, 이렇게 소비해왔다고 말하는 거랑 뭐가 달라. 나는 적어도 오필리어가 다섯 이나되면 말그대로 소외된 여성"들"을 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거 아니잖아. 물론 그게 아니었고 다섯 모두 성폭행, 성희롱의 피해자여도 괜찮은데, 이미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들 여성을 소비하는 시각에서 그칠 뿐이었잖아? 심지어 가해자에 대한 증오도 어정쩡하게 포장하고 만다. 내가 작년 산울림 극장에서 헤카베를 봤는데, 2018년에 이렇게 구린 극을 보다니. 아아, 슬프다. (심지어 이젠 헤카베를 좋게만 기억도 못해. 곽지숙 배우 나한테 어떻게 이러죠. 하.)

쓰다보니까 갑자기 현타온다. 아, 진짜 내 시간, 활자가 아깝네. 후. 그리고 다 떠나서 대본 너무 구려. 이걸 판다고 올린거야. 무대에 올리는 문장의 무게를 얼마나 가볍게 보는 거야.

내가 예민한 걸 수도 있는데, 오필리어라고 어린 여자 배우들 다섯 데려와놓고, 중년 남성 배우 한 번 멀티 시키는 것도 별로였다. 굳이의 느낌? 그리고 남자 배우 있는데 굳이 연출이 목소리 연기하는 것도 이해 못하겠고, 남자 배우 실루엣도 필요없이 그냥 목소리만 나와도 되는데 왜 장막 친 거죠. 심지어 처녀 못 잃어. 광광. 환장하는 줄. 셰익스피어 극을 인용해서 그렇습니다. 개소리하지 말길. 창작진들 다른 건 현대화 시키면서 처녀 앞에서는 순한 양 되는 거 진짜 짜증난다. 정확히 말하자. 여자 서사 앞에서만 갑자기 순한 양이지. 다른 거 다 바꿔도 되는데, 처녀, 얌전하고 순종적인 여자, 남자의 서사를 위해서는 희생당하는 여자 앞에서는 정말 순한 양이 되어, 고전 원작이 그런 걸요. 아, 그리고 이건 개인적으로 빡친 건데, 시인 지망생이 분노랍시고, "선생님 시는 원고지에 쓰세요. 여자들 몸에 쓰지 마시고."이러는데, 난 솔직히 손목을 분질러서 시를 못쓰게 해야하는 거 아닌가. 원고지에 쓰라니, 저렇게 순한 표현이. 하하하. 데이트 강간 피해자도 이미 정도를 넘어간 상태에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내 엄마를 죽였어."라는 대사도 존나 구리다고 생각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워딩은 가해자나, 가해자의 데이터 폭력이 얼마나 좆같은 건지 모르는 사람이 쓰는 거 아니야. 후. 피해자가 자책할 수는 있는데, 솔직히 이 극에 쓰인 워딩 전부 다, 가해 쪽에 있거나, 혹은 가해자가 그럴 수도 있겠네,라는 평범한 한남이 봤으면 이렇게 심각한 문제야!가 아니라 쟤네 속으로 "여자가 잘못했네."라고 생각할 여지 오억오천 개라 빡쳤다. 심지어 비슷한 대사 칠 때, 건너편 남자 다리 꼬는 거 훤히 보였는데, 그것도 뭣같이 느껴졌어.

전에 준비하고 있던 소설에 성폭행 당한 피해자가 나오는 장면 때문에 피해자들 인터뷰랑 영상 봤는데, 그때 내가 가장 먼저 했던 건, 연재 중단과 잠깐의 절필이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소재가 아니고, 무엇보다 그때(지금도 마찬가지지만)의 허울좋은 언어로 피해자를 어떻게 그리든 그저 소비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때문이다. 그만큼 어떤 것에 대해 쓰기위해선, 특히 이런 이야기는 조심스럽고, 많이 배우고 생각해야할 수 밖에 없다. 현실에 피해자가 존재하고, 내가 쓰는 문장은 몇 명이나 보든, 그 문장이 누군가에는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그게 허울 좋은 문장이라도. 어제 내가 화났던 건 이거였다. 작가가 어떤 문제에 대해 쓰고 싶었다면 적어도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보고, 조심스럽게 문장을 다룰 줄 알아야한다. 소극적이 되라는 소리가 아니다, 그만큼 많이 생각하고 고민해야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 극은 "소외된 여성"에 대해 말한다고 떠들어놓고, 안일하게 문장을 사용했다. 난 이 얘기가 하고 싶으니까,라고 무대 위에 "소외받은 여성의 목소리"가 아닌 그저 "제 목소리"를 전시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걸 객석에 앉은 관객이 훤히 느끼는데, 산울림에서 극을 선택할 때, 그조차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실망했다.

이 소재로 이것밖에 못 다루다니... 자극적으로 전시하는거 외에 한게 뭐죠? 지금 문제 되는 사건들을 겉핥기식으로 보여준단 느낌밖에 안 들었어요 배우들은 무슨 죄고 보는 나는 무슨 죄야... 강간에 폭행을 적나라하게 전시하는것밖에 할 줄 모르면 연출을 왜 하죠

완성도를 높여가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공연을 어제 보고 왔습니다.
같은 내용이지만 두 번 보니 더 와닿는 기분이었습니다^^
배우님들 연출자님 외 스탭님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도대체 이런 식으로 여자를 소비하면서 본인이 예술한다고 착각하는 연출이 누군가 궁금했는데 트위터에 그 답이 나오네요. 그 트윗이 사실이라면 그런 전적을 지닌 남자가 이런 작품을 연출하다니, 연출님 떳떳하십니까??? 진짜 화가 나네요.. 내 돈과 시간이 아깝습니다 배우들은 무슨 죄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