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10월16일오후3시 #대구오페라하우스 #니벨룽의반지 #라인의황금 #라인골트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연락이 와서 150분동안 인터미션 없이 한큐에 간다고 해서 염려했었다. 물을 많이 마시고 목 마른 것을 잘 못 참고 화장실 자주 가는 나에게는 꽤 힘든 난관
같이 간 선생님과 극장 근처에 일찍 도착했지만
오랜만에 만나서 너무 깊게 대화에 몰입한 탓에 로비에 늦게 도착해서 표도 늦게 찾고 프로그램 북은 이미 다 팔렸고
그 덕에 물도 못 사서
못 마시고 150분 화장실 안 가고 잘 봤다.
4개를 다 보고 싶었지만 최종적으로 1개만 보기로 했기 때문에
그 한개를 잘 보기 위해서 예습을 많이 했다. 대본을 다 읽어보고 싶지는 않아서 줄거리를 읽어보고
유튜브에서 #유진우 선생님의 해설을 참고하고
대신 여러 개의 녹음들을 많이 들어봤다.
솔직히 반지 같은 스타일의 내용에 몰입을 잘 못 하는 편이고
반지의 제왕 같은 영화를 끝까지 못 보는 편이다. 그래서 이야기에 공감하고 감동을 받겠다는 기대는 없었고
오케스트라 공연 보러 가듯이, 그냥 abstract 음악을 들으러 갈 때처럼 갔다.
그런 식으로 관람해도 충분히 재미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이유는 바그너의 orchestration을 엄청 좋아해서 잘 하는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것을 라이브로 듣기만 해도 즐거울 것 같았고
만하임에서 반지를 아무나 부르게 했겠는가.. 잘 부르는 가수들이 오겠거니..
그런 느긋한 마음이었다.
오케스트라는 기대 이상이었다. 예상보다 너무너무 좋았다. 역시 라이브로 들어야 함
이걸 쓰는데 3시간 뒤에 발퀴레를 할 것이라고 생각하니 씁쓸하다. 솔직히 음악은 발퀴레를 더 좋아하는데 😭😭
발퀴레는 7시에 시작해서 30분짜리 인터미션 두번 있고 12시 넘어서 끝난다고 함
가수들의 수준은 다들 좋았다. 로게가 소리가 좀 작아서 답답했지만 전반적으로 다 좋았다. (프로그램 북 못 사서 가수들 이름 한개도 모름)
알베리히 역을 맡은 #요아힘골츠 #joachimgoltz 는 놀라웠다. 다 이름을 모르는데 이 사람 이름은 꼭 알고 싶어서 알아냄
영상을 이것저것 볼 때는 알베리히가 주인공이라는 느낌이 별로 안 들었는데, 직접 실연으로 보니까 알베리히가 주인공이더라는 ㅋ
어제 보고 너무 피곤해서 후기는 못 쓰겠고 공연 여운이 많이 남아서 다른 사람들의 후기를 이것저것 읽어봤는데, 연출에 대한 부정적인 평들이 많았다. 연출이 이해하기 힘들다는 평들이었는데..
그걸 읽으면서 내가 얼마나 독일 스타일 연출에 대해서 기대감이 약했는지 다시 느꼈다. 그동안 독일에서 제작된 오페라 영상들을 보면서 (이탈리아 작품들도) 무대가 너무 칙칙하고 내 기준으로는 많이 우울해서
독일에서 제작되었다고 하면 무대 미술에 대해서는 아예 기대를 안 하고 동시에 연출에 대해서도 별 기대가 없음
그런데 그런 것에 비해서는 물론 칙칙하지만 무대는 다른 영상들보다는 괜찮았다. 원래 무대에서 스크린으로 영상 사용하는 스타일의 연출을 매우 싫어하는데
본 중에 제일 독창적이고 효과적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연출에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에 대해서 매우 자세하게 적어놨던데
나는 오히려 왜 나는 그런 부분들을 보면서 별 거부감이 안 들었는지 돌아봤다. 나도 이해가 안 되기는 마찬가지..
음악과 가사 위주로 집중을 하고 있어서 그랬는지
연출에 대해서는 너무나 기대감이 없어서 그랬는지
가수들의 동선이나 전체적인 연출은 꽤 마음에 들었다. 난해한 부분은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던 듯..
그러면서 내가 그동안 정말 여러가지 연출들을 많이 봐서 난해한 연출에 대한 tolerance가 많이 좋았졌나보다 싶어서 변태적으로 흐뭇했음
자막이 아주 훌륭했는데, 원래 대본을 잘 모르지만, 자막에 공을 많이 들인 것이 많이 느껴졌다.
나에게 있어서 연출이나 자막은
나를 지루하게 하지만 않으면 충분한 요소인가보다. 물론 연출이 너무나 창의적이고 놀라우면 즐겁다. 그렇지 않아도 크게 실망 안 하는 편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
역시 소리 위주로 감상하는 편
그러나 조명이 지나치게 칙칙하고 무대가 선명하게 보이지 않게 연출하는 것은 극혐한다.
그런 점에서 어제는 150분 동안 한번도 쉬지 않고 음악이 흐르지만, 조금도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나에게는 매우 고마운 작품이었다. 오히려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걱정되었다. 그 좁은 곳에서 쉬지 않고 150분 연주하는 것은 나름 빡실 것 같은 느낌
대구에서 오페라 본 중에 어제 표가 제일 좋았다. 정중앙 앞에서 4째줄..
어쩌다 한번식 좋은 프로덕션 보는데 이왕 보는거 집중해서 가까이에서 잘 보고 싶었다. 자리는 매우 마음에 들고
어제 4열에 앉아보니 1열에 앉고 싶었음.. 그러면 오케스트라 소리도 더 자세히 듣게 될 것 같은 착각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ㅋㅋ
어제 아주 거슬리는 관크는 없었는데 오른쪽과 왼쪽에 앉으신 분들이 너무 숙면을 취하셔서.. 간간히 쌔근쌔근 숨 쉬는 소리도 들림..
나야 20프로 할인해서 8만원에 샀지만, 10만원짜리 좌석인데 거기까지 와서 가수들이 고래고래 노래를 하고 오케스트라가 저렇게 크게 연주하는데도 자다니..
공연장에 도착하기까지 엄청 피곤하게 지낸 사람들인가보다 싶었다.
양쪽 다 혼자 온 것 같았는데.. (같이 간 선생님은 2층 앞열에 앉으심, 취소표 보여서 배신하고 혼자 앞으로 갔다오)
원래 이런 스토리에 별 감흥이 없는 편인데
어제 거인들끼리 싸우다가 죽이는 장면을 볼 때는 좀 뭉클했다. 울림이 있었음
어제는 기차를 타고 가서 확실히 덜 피곤했다. 광안리에서 청사포로 모시러 갔다가 거기서 부산역으로 갔다가 기차 타고 다시 택시 타고 도착, 다시 택시 타고 동대구역 가서 부산역으로 와서 차 찾아서 청사포까지 갔다가 집으로
그래서 운전을 적게 한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차 가지고 대구 갔다 온 것에 비하면 훨~~~씬 덜 피곤했다. 앞으로 대구는 되도록 기차 타고 가기로..
혼자 가면 동대구역에서 지하철 타고 가도 될 것 같았는데 택시도 많이 비싸지는 않았음..
너무 좋아하는 분과 오랜만에 만나서 갔기 때문에 오가는 길은 매우 즐거웠지만, 아주 진한 작품을 보게 되니까 집중력이 모자라서 혼났다. 마음 맞는 사람과 같이 가면 즐거운데, 공연에 대한 집중력은 조금 떨어짐..
외롭게 집중할 것인가.. 즐겁게 함께 할 것인가..
찔끔찔끔 써서 지금은 6시 15분이다. 45분 뒤에 어떤 사람들은 발퀴레를 보기 시작하겠지.. 아고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