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터마이어가 연출한 햄릿을 보았습니다.
예전에 헤다가블러를 보면서 많이 실망을 해서 크게 기대를 하지 않고 보아서 그런지,
훨씬 더 낫더군요.
작품 전체를 햄릿이 연출한 연극으로 설정한 것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그래서 극중극인 쥐덫뿐만 아니라 극 전체가 극중인물 햄릿의 작품이기 때문에 햄릿은 마지막에 죽지 않고 살아남아서 마지막 대사를 남깁니다.

Der Rest ist Schweigen.

남은 것은 침묵이다.

무대가 순식간에 암전이 되면서 극이 끝이 납니다.
마지막 순간에 혼자 남아서 독백을 하는 외로운 햄릿의 모습은 보이첵의 마지막 장면을 연상시킵니다.

비디오 화면을 이용해서 인물들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것 역시 흥미로웠습니다.
원래 인물들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것은 초기 무성 영화에서 내면의 움직임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하던 기법이었습니다. 그걸 그대로 가져다가 연극에서 사용하니 살아움직이는 입체적인 인체와 평면의 화면이 결합되면서 묘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들뢰즈의 책 영화 I 을 보면 인물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기능에 대해 상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관객과 적극적으로 교감을 나누려고 노력하는 것 역시 인상적이었습니다.
어제 본 몰리에르 공연(프랑스 TNT 극단)에서는 관객에게 직접 건네는 대사도 프랑스어로 하더군요. 관객들은 자막을 보고 나서 조금 있다 반응을 하고 그래서 교감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연출이 웃음의 포인트를 많이 놓쳤습니다. 햄릿에서는 주연배우가 영어로 애들립을 하고 또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사소한 것이지만, 독일어를 모르는 관객들에대한 세심한 배려가 극에대한 집중도도 높이고 또 관객들과의 교감 역시 가능케 합니다. 전체 공연시간이 그래서 두시간 반정도 되었고 휴식시간도 없었지만 절대 길게 느껴지지 않더군요.

다음 번에는 예전에 샤우뷔네의 인텐탄트 였던 자샤 발츠의 공연도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연극을 보기 전에 햄릿을 읽고 영화로도 여러 번 봤던지라 이번 연극이 어떤 식으로 재구성될 지 너무 궁금하였습니다.

사실 원작의 많은 내용이 삭제되었고 극의 시작도 햄릿의 가장 유명한 대사로 시작되어 초반부터 흥미를 자극하였던 것 같습니다.

더블캐스팅, 다양한 소품의 사용, 그리고 무엇보다 주인공 햄릿이 어떻게 이미지화 되어지는지에 주목하여 보았을 때 극의 재미가 더해진 것 같습니다.

인터미션도 없이 150분이 넘는 러닝타임 동안에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몰입하여 보았던 극이었습니다.

:)

이미 책과 영화로 접해본 작품이라 연극이 지루하게 느껴질까 염려하기도 했었지만
연극 햄릿은 또 다른 충격으로 다가왔다.
배우들의 열정적인 연기가 관객들을 삼켜버리는 듯 하였으며
연출또한 극적이고 충격적이어서 엄청난 쇼크를 받은 느낌이었다.

한마디로 판타스틱했습니다.
이런 연극을 볼 수 있는 행운을 가진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배우들의 엄청난 에너지,
무대연출의 신선함,
현재 유럽 사회의 시대적인 고뇌까지,
정말 대단한 연극을 보았습니다.

연출이 좋다며 추천해주셨던 정도영님의 말씀에 맞게 무대 연출이 신선하고 재미있었습니다.
또한 그 파격이 미쳐가는 햄릿의 모습을 더 극단적을 보여주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연극의 본질에 접근하며 우리의 현재에 맞게 연출하려 노력했을지 그 능력에 감탄을 하게 되었어요.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를 자기 스스로 촬영하는 햄릿의 얼굴이 은빛 가림막을 가득채웁니다.
햄릿은 자신의 광기어린 얼굴과 왕비 숙부의 타락해가는 모습을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아내죠.
햄릿이 촬영하는 화면을 그대로 무대 뒤의 가림막에 비추는 연출.. 좋았어요.
그리고 그만큼 광기어린 햄릿과 타락한 숙부와 왕비를 잘 보여주는 화면도 없었습니다.

무대는 흙바닥에 관이 들어갈 구덩이도 만들어두었고
현대의 정장을 입고 나온 사람들이 왕의 장례를 치르지요.
이 때도 역시나 새롭고 파격적인 연출은 계속됩니다. 수도 호스를 가지고 비를 뿌려대다니.. 허허..

중간 중간 파격적인 연출도 많았고 생각지 못했던 웃음 코드도 많았습니다.
마이크를 대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숙부와 햄릿 왕비의 모습도 신선하였고요.
흙바닥을 앞뒤로 오고가는 만찬용 식탁 무대
식탁무대의 앞에 내린 은빛 발은 은막이 되어 햄릿의 촬영장면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죽은 왕의 관을 내리다가 몸개그를 하는 장면이라던지
왕비와 숙부에게 보여줄 연극을 만들 때 과감한 노출과 몸개그를 보여주는 것들.
미친 햄릿이 식탁 위에서 영어로 힙합을 부른다던지..
[햄릿을 연기하신 분 영어도 상당하시던데요. 분명 독일분일텐데.. 발음이 미국인 같았어요.]

오필리아의 오빠 레어티스와 대결하는 장면에서 펜싱검과 수저의 대결이라던지..
웃음 코드를 하나 더 짚어내자면 왕비가 갑자기 가발과 옷을 벗고 오필리아로 변한다던지
탐욕스런 숙부가 갑자기 죽은 왕의 영혼으로 나타난다던지 하는 부분?

하지만 햄릿의 대사나 햄릿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자체는
하나도 훼손되지 않았다는 점이 놀라웠습니다.
분명 같은 이야기인데 분위기가 이렇게 달라질 수 있나 싶을 정도로요.

더 광기어리고 뜨거운 햄릿을 볼 수 있었던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2시간 40분의 긴 공연이 끝나고 절반 이상이 기립박수를 보낸 멋진 공연이었습니다.
무거운 햄릿의 이야기였지만 결코 무겁지 않게 하지만 그 본질을 잘 그려낸 햄릿.
이번 연극 올림픽 최대 기대작다운 면모였어요.

오스트마이어 님이 커튼콜할 때 같이 인사도 해주셔서 잠시 얼굴을 뵐 수 있었지요.

결코 2시간 40분의 시간과 3만원의 티켓값이 아깝지 않은 올해 본 최고의 연극이었습니다.
이래서 연출이 중요하구나.. 하는 걸 다시 한 번 느끼게 된 계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