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60 이 다 되어 가는 시점에서 실물로 교향악단 연주를 관람한 것은 처음인 것 같다.
클래식 매니아인 친구 덕에 오페라, 실내악, 피아노 리사이틀, 바이올린 리사이틀 같은 건 몇 번 있지만 풀 세팅의 필하모닉 연주는 볼 기회가 없었다.
뒤늦게 예매하게 되어 좌석도 거의 가장자리 뒷자석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감상하는 데 무리는 없었다.
문화회관 대극장인데도 무대 위가 꽉 찼고 그랜드 피아노가 가장자리로 밀려나 있는 것이 특이하게 보였다.
얼렁 부산 컨써트홀이 완공되어 좀 더 고퀄의 음향 시설에서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는 날이 얼렁 오기를 기대한다.
이번에 우리나라 클래식 악단 양대 산맥이 KBS 교향악단과 서울 시향인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KBS 교향악단은 너튜브에 핀란드 출신의 젊은 지휘자가 연주하는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영상이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며 자주 떠서 몇번 봤었다.
서울 시향도 귀여운 체격의 그러나 카리스마 넘치는 스타일의 네덜란드 출신 얍 판 츠베덴이 지휘자였다.
바그너의 뉘른베르그의 명가수로 귀에 익숙하고 웅장한 곡으로 스타트를 끊어 탁월한 선택이었고, 클라라 주미 강이라는 재독 바이올리니스트가 322년 된 스트라디바리우스로 부르흐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했는데 바이올린 소리도 귀에 착 붙고 연주도 엄청 서정적이면서도 정교하게 했다.
너무나 편안하게 연주를 해서 쉬운 곡을 선택한 건가 하고 생각했지만 30대 후반이라는 연륜이 주는 노련함도 있는 것 같고 연주 스타일 자체가 그렇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체격이나 의상, 풍기는 분위기 자체도 우아하고 여유 있어 보였다.
약력을 읽어보니 독일에서 세계적인 음악가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5살에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시작했다고 되어 있으니 한 마디로 음악 천재의 DNA 를 갖고 태어난 신동이었던 거다.
연주 후 쏟아지는 앵콜 박수에 뭔지 모르는 곡을 바이올린 솔로로 연주했다.
리사이틀도 아니라 한 곡 앵콜로 만족해야 했다.
다음 기회가 되면 또 클라라 주미 강의 연주를 들으러 가야겠다.
인터미션 후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이 연주되었다.
첫 부분은 CF 광고에서 들은 듯 귀에 익은 음이었지만 역시 러시아 현대음악이라 쉽지는 않았다.
스탈린 숙청 시대라 소련 사회주의 혁명의 승리를 나타내기 위해 생존 전략으로 작곡한 곡이라는데, 그래서인지 군악 연주처럼 팡파르와 여러 종류의 타악기 연주가 들렸다.
역시 우레와 같은 브라보 함성 속에 앵콜 곡으로 드보르작의 슬라브 무곡 2번과 요한 스트라우스 1세의 라데츠키 행진곡을 들려 주었다.
얍 판 츠베덴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떤 곡을 좋아라 하는지 꿰뚫은 듯...
마치고 나오는 길에 낯익은 지인들의 얼굴도 보였다.
다들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문화 생활은 누리고 사는구나 싶었다.
서을 시향은 UAE로 넘어가 11월 7-8일 양일간 사라 장과 양인모의 연주로 해외공연을 이어간다고 한다.
Good Luck !

서울시향의 풍부하면서도 세심한 연주가 시월의 마지막 밤을 황홀하게 해주었네요. 주미 강의 바이올린 협연, 쇼스타코비치교향곡5번 정말로 최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