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쩜 이리도 맑을 수 있을까. 정말 바이올린 잘 켜지요?”



1부 연주가 끝나고 장내의 조명이 밝혀지자 내 옆에 자리한 50대 여인이 말을 걸어왔다. 미처 가슴에 담지 못한 감흥을 주섬주섬 담으며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인의 얼굴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혼자, 왔어요?”



2011년 11월 26일 20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올해 2월에 티켓오픈하자마자 머릿속에 입력된 정보는 삭제되지 않았다. 10여 개월의 기다림을 보답하듯 바이올리니스트 스테판 피 재키브의 연주는 내 가슴에 대고 활을 문지르기라도 한 것처럼 따갑고 뜨거웠다. 나와 공통분모를 찾은 여인은 디토 페스티벌 공연 관람하고서 스테판의 연주에 반했다고 자백했고, 나도 덩달아 2008년, 그러니까 스테판이 클래식 앙상블 ‘디토’에 합류하며 한국 무대에 얼굴을 알릴 무렵 인천 공연에서 그를 알게 되었고, 그의 첫 리사이틀에 그야말로 뻑 가서 현재에 이르렀다는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전혀 모르는 사람과 친근한 대화를 가능케 하는 음악의 힘! 소녀의 설렘으로 여인의 눈주름을 사라지게 하는 마술!



Modern ＆ Modernity, 스테판의 두 번째 리사이틀은 20세기에 활동한 작곡가의 작품으로 꾸며졌다. 러시아 작곡가 이고리 스트라빈스키, 미국 작곡가 아론 코플랜드, 폴란드 작곡가 비톨트 루토스라브스키, 그리고 19세기와 20세에 걸쳐 활약한 독일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좀 힘들겠군, 싶었다. 상대적으로 덜 노출된 현대음악을 과연 귀가 반길까. 루토스라브스키는 이름조차 낯설었다. 허나 공연은 루토스라브스키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수비토’를 먼저 기억하게 만들었다. 수비토는 깜짝 놀랄 만한 기교가 돋보이는 곡이다. 2부 첫 곳이었는데, 느닷없이 맞은 소나기였다. 스테판과 반주자인 피아니스트 안나 폴론스키는 일부러 작정하고 청중이 감상할 마음의 준비를 조금도 주지 않고 무대에 나오기가 무섭게 낙뢰와도 같은 연주를 객석에 쏟아 부었다. 구름 한 점 없던 하늘이 일순 먹장구름이 드리워졌다. 암흑의 세계에서 유일하게 밝히는 섬광. 그렇다. 그의 수비토 연주는 섬광이었다.



프로그램의 맨 마지막 곡은 대개 연주자가 애착하는 작품이다. 스테판은 슈트라우스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를 선택했다. 바이올린 선율이 실바람이 되어 물결인 피아노 선율을 간질이는 2악장에 빠져들다 보면, 아침햇살을 담뿍 담고 있는 개울을 두 손을 우묵한 형태로 떠서 흩뿌릴 때 수많은 물방울이 허공을 튀기며 제각각 반짝일 때처럼 선율로 이어지는 음표 하나하나가 반짝이는 물방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문득, 훌륭한 연주는 같은 작품을 어떻게 떠내어 어떠한 형태로 다시 탄생시키는가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생각에 미쳤다.



이 외에 한없이 몸을 가볍게 유도하는 스트라빈스키의 ‘이탈리안 모음곡’, 엄숙하면서도 힘차게 나아가는 코폴랜드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도 연주자의 손끝에서 되살아났다. 스테판과 더없이 잘 어울리는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와 스테판의 연주로 세 번째 듣는 마스네의 ‘타이슨 명상곡’을 앙코르로 감상할 수 있었다.



비공식적으로 맨 마지막을 장식한 ‘타이슨 명상곡’의 마지막 음이 현에서 미끄러지며 가냘프게 울릴 때, 현에서 활이 떠났는데도 울림이 잠깐 지속될 때, 울림과 정적의 경계를 연주자와 청중이 함께 지켜볼 때, 호흡 따위는 잊어도 좋았다.



지난 3월, 유투브 심포니 오케스트라 콘서트 협연자로 선정되어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삼천만 이상이 지켜보는 가운데 연주한 그. 음악에 몰입할수록 몸으로 표현되는 또 다른 연주를 멋들어지게 선사하지만 흐트러짐을 당체 찾을 수 없는 그. 악기와 일체감을 보여주면서 늘 악기와 적당한 거리에서 직선을 만들어내며 완벽함을 우아함에서 숨기는 그. 엄청난 에너지를 작은 몸 안에 넣을 줄 아는 비상한 재능을 가진 그. 그가 바로 스테판 피 재기브다.



양파의 얇은 막 만큼도 더 빼거나 보탤 게 없는 그의 명품 연주, 그의 두 번째 리사이틀이 마치기도 전에 그의 세 번째 리사이틀을 기다린다.

현대음악이라 감상하는데 뇌가 많이 활동한거 같습니다. 처음 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듯,,, 거의 다 생소했습니다 그러나 바이올린의 선율과 피아노에 감동~많이 받을수 있었습니다.

일부 관객들이 자꾸 물건 떨어뜨려서 신경이 거슬리긴 했지만, 공연 자체는 매우 좋았습니다.
훌륭한 연주였다고 생각해요. 내년에도 멋진 공연 부탁합니다~!

좋았습니다.
생소한 곡을 듣고 알아가는 재미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음 공연이 기다려져요.

처음으로 본 리사이틀 재밌게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