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가두다, 는 영화적이고 다양한 장치를 사용해 시각적으로는 즐거웠으나 극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볼 때는 현란한데, 나오면 뭐야, 하는 기분이랄까.
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 는 극 자체는 한 방향을 향해 잘 집약되있었지만 그 분위기가 너무 짙어서 소소한 재미와 같은 것들이 사라지고 말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히려 보는 것보다 읽는게 재미있지 않았을까, 하는 느낌.
솔직히 이 두 작품 다 그렇게 재미있게 보지는 않았기에 체크메이트 또한 별 기대는 안했다.
그런데, 내 취향이었다. 나이스, 돈 건졌다.
마태오라는 희곡작가가 희곡을 쓰면서 희곡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가 중첩된다.
꿈을 넘어서 망상이 되고 망상을 넘어서 현실이 되어버린 그의 심상세계,
그렇다, 그의 심상세계는 '망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되어버린다.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는 희곡을 쓰고 있었던 걸까, 마태오는.
무의식중에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던걸까.
현실 속 마태오의 세계는 마치 시궁창과 같다. 그러나 그의 극 중 세계는 그를 비웃기라도 하듯 밝고 아름답다. 그러나 그 체크무늬 세계를 만들었다고 하는 왕도 결국은 죽는다. 공연이 끝나는 10분 뒤 죽는다. 작 중 죽는 왕의 캐릭터, 현실에서 죽는 마태오 자신, 그리고 우리가 지켜보는 실제의 공연이 끝나면 물거품처럼 사라질, 누군가가 연기하고 있는 왕과 마태오라는 페르소나.
결국 공연이 끝나면 무대 위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체크무늬처럼 잘 짜여져 번갈아 나타나던 실제와 망상은 마태오의 수명이 줄어들수록 점점 그 윤곽선을 잃어버리고 온통 회색으로 뒤덮인 세계처럼 하나로 변한다.
그건 마태오의 현실, 즉 죽음이다.
망상은 즐거움,
실제는 괴로움,
결국 마태오의 체크무늬 현실은 완전히 무너지고, 죽음의 세계로 들어가 마태오는 즐거움도 괴로움도 느끼지 않게 된다.
사실 보면서 꽤나 대중성 짙구나, 라는 느낌이 들었다. 죽음에 대한 탐구라고 해서 보통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죽음에 대한 관점을 제시해줄 것으로 기대했다...
...가 포기했다. 극이 진행되면서, 오히려 그 대중성을 낙으로 삼았다.
다만, 마태오의 망상과 현실이 처음에는 전혀 섞이지 않은 상태라고 여겼는데, 극 중 인물 중 그 문제의 한명이 이미 현실을 침식하고 있는 이물질이었다는 부분에서 상당한 반전충격을 먹었다.
억지로 웃기려는 부분보다는 자연스럽게 미소를 머금게 하는 장면이 많았다. 개인적으로는 이런거 좋아한다.
마지막 부분, 노아와의 대화에서, 마태오가 너무 쉽게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가...하는 불만감이 조금 생겼지만. 사실 애초부터 죽음에 대한 시선처리가 얄팍하기 때문에 그 정도 바뀐다고 해서 작품이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이런 스타일에서는 이런 결말이 적절할지도.
역시 재미있었다. 무대도 산뜻해서 좋았고, 배우들도 캐릭터를 정말 잘 살려준 것 같다.
재미있는 극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강추!
(다 재미있었는데 ...중간에 2MB 대사 뭥미... 그 부분 오히려 통일성을 깨서 지루...)
(다시 보러갈 생각. 아니, 솔직히 이거 재미있다니까)
---------------여기서부터는 이후에 추가한 부분-------------
극과 현실이 중첩된 망상증에 대한 이야기라 그런지 일본 애니메이션 '천년여우'를 떠올리게 되었다. 천년여우는 망상증에 대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한 인물의 연기 일생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특수한 형식으로, 마치 망상증처럼 보이도록 연출한 것이었는데...
솔직히 천년여우와 비교하면 천년여우가 훨씬 괜찮다.
천년여우는 여러 사랑의 유형 중, 주인공이 행하는 특정한 한 사랑의 형태를 끊임없이 파헤쳐 관찰한다. 보편적인 사랑의 형태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체크메이트는 작가가 너무 욕심이 많았는지, '보편적인 인간의 최후'를 표현하려 했다. 하지만 보편적인 인간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관념속의 세계다.
예술가들은 관념을 상상을 통해 실제로 바꾸는 사람이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보편인간의 최후라는 관념을 개별인간의 최후를 통해 표현해야 하지 않을까? 천년여우가 보편적인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한 인물이 평생 추구한 사랑에 대한 탐구를 통해 표현한 것처럼.
작중 마태오는 비록 죽었지만, 그것은 '희곡작가 마태오'라는 그 고유의 개체가 죽은 것이 아니다. 그냥 한 인간이 죽었을 뿐이다. 이 부분에서 마태오가 인생을 걸고 고민한 희곡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굳이 마태오가 죽을 필요가 있었나? 다른 자가 죽어도 상관없지 않나?
나는 작가에게 마태오의 아내가 한 질문을 그대로 들려주고 싶다.
"그런데 왜 마태오는 죽어야 하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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