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웠던 박수갈채가 아직도 뇌리에서 잊혀지지가 않는다. 2시간 남짓 보아왔던 그 어떤 오페라의 내용보다도 마지막을 알리는 막이 내려진 후, 그들에게 향하는 관중들의 한결같은 환호성과 열광이 자아낸 열기가 더 뜨겁게 느껴진 하루였다. 기껏 봐왔던 문화생활이래야 고작 영화 몇 편이 다였던 나에게 오페라 신데렐라는 기회나 마찬가지였다. 뮤지컬이 등장하기 이전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 받아왔던 오페라는, 대중성을 한결 더 가미시킨 뮤지컬이 성행하면서부터 일반인에게서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했다. 뮤지컬은 신나는 것, 허나 오페라는 조금은 지루한 것이라는 인식이 점점 자리 잡힐 즈음 모든 이들이 갈망하는 것과는 반대로 나는 오페라를 먼저 접하게 되었다.
학교 게시판에 공고 되어있던 광고 포스터를 보고 한동안 난 눈을 떼지 못하였다. 사람은 누구나가 자신의 관심사나 흥미분야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어서 그로인해 평가들은 제각기 나눠지게 되는데 애초에 관심조차 없었던 것이라면 그것을 경험해 나가는 시간이 괴롭기 한량없을 수 있고, 오히려 색다른 체험으로 다른 인상이 남게 될 수도 있으며 원래부터 두 손 들고 환영이었던 사람은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이다. 내게 오페라 신데렐라는 후자의 경우였다. 포스터는, 음악이 세끼 밥 마냥 늘 듣게 되는 필수품이 되었을 무렵 그 묘미에 또 다른 실금을 그어 줄 오페라와 작곡자를 만나게 해주었다. 내 개인적인 견해로 오페라는 뮤지컬보다도 반주곡이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여겨왔다. 뮤지컬이 노래와 춤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면 오페라는 노래와 춤, 그리고 오케스트라의 반주 음악이란 3박자가 조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로써 비교해보면 뮤지컬은 전적으로 배우의 역할이 비대한 반면, 오페라는 배우는 물론이고 반주를 도맡아하는 오케스트라도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된다. 드라마나 영화에 배경음악이 깔리지 않으면 밋밋하다 못해 이상하게 되어버리는 것처럼 오페라 반주곡도 무대 위에서 이뤄지는 드라마적인 면모로 보건대 비중이 상당하다. 오페라 신데렐라 자체도, 로시니도 의미 있게 된 이유는 아마도 음악이라는 끈이 있었던 탓이 클 것이다.
무대의 막이 오르기 직전, 울려퍼지는 시작의 종소리가 마치 이 오페라 신데렐라에선 열두 시를 알리는 시계종소리 인양 들렸다. 서곡의 웅장하면서도 호기심에 찬 멜로디가 처음을 알리는 듯하더니 곧이어 발랄하면서도 우아하기 그지없는 음률이 오케스트라피트를 넘어서 객석 바깥까지 차올랐다. 서곡 전체의 분위기는 곧 등장할 오페라 스토리의 줄거리를 간략하여 청중들에게 제공하는 역할을 하기에 내내 유심히 들어 보았다. 곡에 맞춰 아름답게 춤추는 무용수들의 움직임이 음악과 무대 간의 긴밀한 소통을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앞서 언급했듯, 서곡은 본격적인 막으로 돌입하려 할 때 주어지는 음악이기 때문에 후에 등장할 여러 가지 반주곡들보다 작곡자의 의도와 성향을 파악하기가 더 쉽다. 활기차고도 낭만적인 이 음악으로 로시니 오페라 특유의 아름다운 선율을 직접 느낄 수 있었다. 총 3막 2장으로 구성된 신데렐라는, 가족 오페라를 표방해서인지 줄거리만 대충 알고 감상 했음에도 한눈에 오페라 본래의 구성을 많이 축약했음이 보여 졌다. 심각해져 자칫 지루함을 이끌어 낼까봐 최대한 쉽고 재밌게 편작한 것이다. 분명 나 같은 초짜 감상자들에게는 더없이 보기 편하게 공연된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원작은 어땠을까싶은 아쉬움이 들게 했다. 첫 관람을 의미 있게 만들고 싶어 일부러 앞자리에 앉았는데, 너무 앞인가 싶은 걱정이 무색하게 오히려 배역들의 표정연기와 노래, 동작, 반주곡들을 더욱 잘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성악 중 작품성이 돋보인 곳은 독창곡인 아리아 부분이었는데, 주인공인 신데렐라가 아리아를 할 때면 나도 모르게 절로 눈이 휘둥그레졌다. 남자 배우들인 왕자 라미로나 돈 마니피코도 좋았지만, 신데렐라 배역의 힘차고 강한 목소리는 남자 배우들 못지않은 아름다움과 카리스마가 풍겨 그녀의 성격을 단지 그 음성만으로도 쉽사리 파악하게끔 하였다. 피날레 부분은 신데렐라의 아리아에 이어 배우들과 어린이들의 합창으로 끝나는데, 소프라노 톤으로 열창하는 아리아 부분에선 배우의 아름다운 음색에 감동이 절로 밀려왔다.
신데렐라 오페라 자체도 걸작이지만, 화려하고 멋진 이 오페라의 곡들은 여러 음악가들에게 감명을 줘 많은 변주가 이루어졌다. 내가 신데렐라라는 이 오페라에 관심을 가지게 된 실질적인 연유도 바로 신데렐라의 많은 변주곡들 가운데, 바이올린 변주곡 하나를 우연히 즐겨듣게 되면서부터였다.
극과 음악은 정말 다른 장르처럼 보이면서도 늘 상충된다. 그것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 될 수밖에 없다. 음악이란 소리 그 자체, 단지 하나의 소리에 리듬감이 부과되면 완성되며 결국 오페라라는 것도 그렇게 치면 거대한 하나의 음악세계가 된다. 노랫소리, 목소리, 말소리, 음악소리가 리듬에 의해 숨쉬는 순간을 오페라를 통해 배웠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