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또 볼 수 있을까요ㅠㅠ

청소년에 대해 많이 연구한 티가 났습니다.
성의와 정성, 청소년을 향한 사랑이 담뿍 들어있는 느낌이었어요.

매진이라니ㅠㅠ

들어서자마자 눈을 사로잡았던 건 스트로폼 퍼즐로 구성된 무대였다. 학교에 속해있는 사진반이 있던 공간 아래 촘촘하게 맞춰진 퍼즐들, 그리고 마치 자유롭게 풀어져있던 빈 공간에 퍼즐들, 무대 뒤 쪽에 위치한 엉망으로 쌓인 퍼즐들. 무대란 또 다른 비명을 지르는 요소와 같아서 매력적인 무대만큼 극의 주제를, 그리고 관객에데 다가가는 마음을 미춰주는 것이 없는데 「옆에 서다」의 실험적인 퍼즐 무대는 그 모두를 충족시키는 매력적인 무대였다.

아이들의 일그러지는 관계 속에서 뉴타운이 들어서기 위해 낡은 건물을 때려부시는 효과음도 인상적이었다. 비가 쏟아지는 소리, 천둥이 치는 소리, 날카롭게 울리는 고양이 소리. 특히 건물 때려부시는 소리는 누군가의 관계를 돈독하게 만들어주기도 하고, 또 누군가의 관계를 잔인하게 끊어내기도 하는 장면에서도 어김없이 이런 곳이야, 라는 듯 우직하게 제 소리를 내고 있었다. 호진과 지태가 함께 갔던 팥빙수집, 지태와 현수가 알고 있는 팥빙수집이 있는 그 곳이 무너지고 뉴타운이 들어서고 있다는 시간의 흐름과 그들의 처한 아슬한 상황을 극대화 시켜주는 시끄럽고 한편으로는 너무나도 익숙한 소리.

「옆에 서다」에 나오는 인간의 군상은 다양하다. 공부 좀 잘하는 아이 덕 좀 봐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 엘리트 코스를 밟는 아이, 왕따를 주도하며 혼자가 되지 않으려고 했지만 결국 혼자가 된 아이, 과거에 왕따를 당했던 기억 때문에 주도권을 잡은 아이에게 필요에 의해 붙어있던 아이, 제 자신 속의 잔인함에 놀라면서도 굽히는 것 없이 곧기만해서 왕따를 당하는 아이.

아이들은 하나 같이 안쓰럽고, 하나 같이 자신들이 어른들에게 받았던 상처, 기억, 말과 행동을 타인에게 스스럽없이 뱉는다. 그렇게 타인에 고통에 무감각해지는 장애를 끌어안고 산다.

의사인 부모 아래서 자란 다연은 평생을 인간에게도 계급이 있고 그 계급에 의해 인생이 결정된다 배워오면서 부모님의 기대치에 떨어지면 어쩔까 하루하루 불안해하면서도 반대로 기대치에 밀린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다거나, 왕따가 된다거나, 혹은 성적이 좋지 않거나) 아이들을 무시하고, 차별하고, 서스럼없이 대한다. 아버지의 폭행 속에서 그리고 그 폭행을 묵인하는 가족 속에서 자란 호진은 내면의 폭력에 대한 분노를 타인에게 상처 줌으로써 우위에 서려고 하지만 결국 진정한 친구 하나 없이 폭주하고 만다. 과거 호주 유학 시절 다르다는 이유 하나로 왕따를 당했었던 지태는 한국에 돌아와 다시 그런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해 소위 말하는 짱인 호진에게 붙어있다. 외고에 다녔다 일반고로 전학 온 현수는 가난한 현실 속에서 주변의 기대감에 눌려 자신이 아끼던 고양이를 찍어 죽이게 된다.

이야기는 단편적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끌어들이지만, 적극적으로 해결점을 찾진 않는다. 그들의 추억이 담긴 낡은 동네는 어김없이 무너지고, 시간이 지나면 그 곳에 반짝반짝한 뉴타운이 들어설거고, 다연의 문제도, 호진의 문제도, 지태의 문제도, 현수의 문제도 사실상 해결되지 못한 채 남아있었다.

물론 친구보단 꼬봉의 위치에 가까웠던 지태가 호진에게 적극적으로 마주쳤단 점과, 왕따로 혼자 돌아다니기만 했던 현수가 지태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 마지막엔 지태와 함께 사진을 찍는 점은 각자에게 한 발짝 나아가는 터닝포인트가 되었지만 내가 주목하고 있던 인물은 지태와 현수가 아닌 다연과 호진이었다.

부잣집에 자라 남부럽지 않게 살았지만 네 아이 중 가장 물질만능주위에 폐해에 노출되어, 어느새 자신을 불안의 낭떠러지로 밀어넣었던 부모님, 바로 어른의 모습과 닮아있던 다연과 연약함을 숨기기 위해 타인에게 들이밀었던 칼이 결국 자신도 모르게 유일한 친구라 여겼던 지태까지 잘라내고 결국 혼자가 된 호진. 그 둘의 문제는 변하지 않고 그대로 곯아가고 있었다.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는 다연과 호진을 묶고 있던 건 사실 풋내기 사랑이라기 보다는 곯아갈 수 밖에 없는 모습들에서 느끼는 유대감이 아닐까. 그랬기에 이 극은 지태와 호진에겐 희망을 주고 끝났지만, 다연과 호진에게 그저그런 날들의 연속으로 마무리 됐으리라.

의도적인 부분이었을지 모르겠지만, 호진과 지태의 관계성이 회복되지 못한 채 끝나버렸단 점이 개인적으로 아쉬웠다.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한 때 왕따를 당했었던 지태와 현재 왕따를 당하고 있는 현수 사이의 차츰차츰 쌓이는 유대감과 관계보다는, 이상하게 자꾸 어긋나고 결국은 부러진 호진과 지태의 관계에 대해 눈길이 갔었다. 해피엔딩을 바랬던 건 아니지만, 학교가 아닌 공간에서 호진과 지태는 친구같았다. 떠들고 장난치고 특정한 상하관계에 얽매어있는 것이 아닌 동등한 입장의 친구. 호진이 말과 행동이 거칠고, 욱하는 성질머리에 지태를 깔보고 지태에게 상처내는 말을 거침없이 내뱉었지만, 호진이 가출했을 때 그런 호진을 따라 같이 밖에서 자러 나왔던 지태, 그 공간에서 이제는 없어질 빙수 집에 대해 떠들었던 시간, 같이 사진을 찍어러 나가던 둘의 공간, 그 짬짬의 시간들 속에서 호진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친구가 지태가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나보다.

​ 청소년극이라고 하면 어딘가 미묘하게 불편한 긴장감과 목소리 톤이 늘 맘에 걸렸었는데, 「옆에 서다」의 배우분들이 너무 연기를 잘해주셔서 처음에 반하고, 보면서 다시 한 번 반했다.

* 기회가 되면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예매창을 켰는데 매진.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