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비극 공연을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다는 소식 듣고 바로 예매했는데요, 진짜 보니까 완전 이거는 딱 한번 보구 끝낼 공연이 아니라 계속해서 봐야하는 그런 공연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으로 치자면 진짜 고전 명작 같아서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는 그런 무한대의 가능성을 지닌 예술 작품이랄까요....
우선 처음 시작할 때 부터 끝까지 이어지면서 미세하게 변조되는 태고의 인류의 심장 소리와도 같은 음악적 사운드가 완전 최고였구요, 개인적으로 사운드가 정말 맘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무용 동작 부분에서 어떤 전문적인 무용가들만이 해낼 수 있는 그런 동작이 아닌 인간이라면 누구나가 애초부터 취할 수 있는 동작이랄까요...직립 보행을 통한 인간 휴머니티의 완성을 보는 듯한 그런 동작들로 많이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제 자리가 좀 무대에서 많이 멀어서 배우님들 표정까지 상세하게 볼 수 없었지만....그 몸동작을 통해서 그리고 인간의 모든 희노애락이 느껴지는 조명을 통해서 아주 아름다우면서도 근원적인 물음을 던질 수 있는 그런 공연이었습니다. 이 공연을 좀 더 보구 싶은데요...다시 내한해주셨음 합니다. 진짜 한번만 보기에 넘 아깝고 너무 멋진 공연이었습니다. 완전 강추합니다 ㅎㅎㅎ

신선한 충격과 훌륭한 스토리텔링을 보여 주었습니다.

< 비극 >

4.11일 성남 아트 센터.

둥둥 북소리가 울리고 불길하고 흐릿한 조명아래 희뿌옇게 나타나는 실루엣.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전라의 무용수들이 등장한다. 객석에는 약간의 흥분감과 기대감이 흐른다.

3초의 한번씩 두들기는 단조로운 북소리와 어두운 커텐뿐인 무대를 배경으로 스무명 남짓한 알몸의 남녀 무용수들이 줄을 맞춰 전진과 후퇴를 반복한다. 패션쇼마냥 무대 뒤쪽의 커텐으로 사라지고 나타나는 무미건조한 워킹을 한 지 10분이 넘어가자, 주변에선 슬슬 지루함을 견디지 못한 한숨과 기침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또 10분이 흘러가자 나 역시 후회가 밀려왔다.
'''''''' 프랑스, 전라, 휴머니티에 낚였구만''''''''

하지만 그렇게 20분간 무대를 보고 있자니 전라의 무용수들이 점점 익숙해지다 못해 동네 목욕탕에 와있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무용수들의 몸매가 아주 인간적이라 ( 정말 옆집 아저씨,아줌마 같은분도 많다) 초반의 섹슈얼한 느낌은 사라지고 완전 편안해지기 시작. 그들의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했다.
무용수들은 주변을 보지도 않고, 교감하지 않은 채 혼자만의 반복적인 워킹을 하고 있었다. 대도시에서 바쁘게 걸어다니는 현대인들 마냥 기계적인 걸음걸이다. 손에 서류 가방만 들으면 딱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갑자기, 변화가 시작됐다.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순식간에 불규칙적이고 개별적으로 변해있었다. 감정을 전혀 표현하지 않던 스무명 남짓의 무용수들은 점점 감정에 휩싸여 격정적인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고, 무용수들간의 동작은 점점 스피디해졌고, 표현은 더 풍부해졌다. 심지어 한 무용수는 소리내서 웃기도 했다. 정교하면서도 계산된 무대 동선, 절묘한 타이밍에 맞춘 움직임. (동네 아저씨, 아줌마라는 거 취소.)
시선을 어디에 두고 누구를 봐야할지 눈이 바쁠지경이었다. 그렇게 무용수들의 움직임이 역동적으로 변해갈 수록 3초에 한번씩 울리던 오로지 북소리 뿐이던 배경 음악도 변해갔다. 기괴하고 복잡하고 신경질적인 음색으로 .
각각의 무용수들의 표현은 전부 달랐지만
그들이 느끼는 것은 하나같이 " 슬픔, 분노, 절망 "이다.
그들은 슬퍼하고 괴로워하면서도 여전히 서로를 보려하지도 않고 의지하지도 않았고, 혼자만의 감정과 세계에 빠져 있는 모습이었다.

같은 장소에 있지만 서로의 존재도 위로도 없는 상태.
그걸 보고 있자니'''''''' 고독 '''''''' 이 느껴졌다.

안타까운 마음이 생기려는 찰라, 어느새 남녀 무용수는 나눠졌다. 남자들은 무릎을 꿇은 채, 절망에 온몸을 떨었고, 여자들은 그런 남자들 앞에 한 사람씩 섰다. 여자들은 자신의 남자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남자들의 고통이 심해지자, 여자들도 차츰 그 고통을 느끼지 시작했다. 어느 새 그들은 같이 괴로와하고, 슬퍼하고, 격려하기도 하다가 때로는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기도 했다.
이것은 여지껏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몸짓을 보여줄 때도 서로에게 전혀 공감하지 않은채 혼자만의 감정에 싸여 있던 그들은 이제 변했다.
감정을 나누기 시작한 것이다.
남녀 무용수들은 슬픔의 공유를 통해 감정을 나누는 법을 배우고 자신의 파트너 외의 다른 사람의 존재까지 깨달았다. 그 들은 한 동네 사람들이 모여 잔치라도 벌인 듯 시끄럽고 부산스럽게 모두와 교감하기 시작한다. 활기차게 떠들고, 즐기고, 급기야 싸움박질까지도 한다. 처음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그들은 섹스를 나누고, 인생을 향해 광기에 휩싸여 맹목적으로 달리기도 하고 결국 지쳐 쓰러지기도 한다. 무용수들의 온 몸은 땀과 상처투성이다. 인생의 거의 모든 것을 온 몸을 불살라 보여준다.
그렇게 공연이 끝나고
성남 아트 센터의 객석은 박수로 가득찼다. 무용수들이 2번이나 인사를 해야할 정도로 열광적인 반응. 수준높은 관람객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는 방송멘트까지 나왔다. ( 이런 멘트 처음 )
초반의 지루한 40분,
대략 3초에 한번씩 두들기는 북소리를 40분만 견디면
그 뒤는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는 것이 이 공연의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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