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에 도착했더니 소나기가 쏟아진다. 다행스럽게도 가방 안에 간이 우산을 챙겨왔으나 그간 묵은 열기에 뜸이 과해 비바람 치는지라 우산은 받치나마나였다. 그렇게 찾은 극장, 어떤 장면일지 어느 정도는 그리고 왔으므로 저만치 밑으로 내 심장을 떨어뜨리고 관극한다.

혜화동 1번지 6기 동인, 기획초청공연 첫 주는 ''무브먼트당당''의 <그날, 당신도 말할 수 있나요?>와 극단 동네풍경의 <별망엄마>였다. 나는 이 ''연극이 아닌 연극''을 아주 무겁고 불편한 마음으로 본다. 이 연극의 ''돌이킨다''는 것, 묻어놓고 묵힌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과 분노를 다시 극장에서 살려내고야 만다. 그날에 대한 기억, 이제 조금은 그 격한 심정이 가다듬어질 만 했는데, 이 극장은 다시 독을 깨뜨리고 ''어제''를 꺼내고 만다. ''일상''의 수많은 이들이 ''그날''을 다시 기억해내고, 내게도 동참을 요구하며 그날의 기억을 말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한다.

''마이크''는 어제를 묶어가면서, 우리에게, 오늘, 그 세월호 참사의 기억을 끄집어내는 이유를 묻는다. 그날, 그래, 그 ''세월'' 일 년도 더 지났지만 여기저기 가는 곳곳에 노란 리본의 결삭은 풀어지지 않고 여전하다.

그날, 난 오전 강의를 마치고 동료 선생들과 학교 도서관에 있는 상담센터에서 한담을 나누며 점심때를 기다리고 있다가 ''세월호'' 소식을 듣는다. 시시각각 온라인으로 기사가 올라왔고 그 혼란 속에 우리는 혹시나 껴있을 피붙이의 이름들을 걱정하며 가족, 친척, 지인들에게 연락한다. 우리는 밥을 먹으면서도 ''설마''했다. 미처 겪게 될 공황 상태를 그때까지만 해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겨우 무능한 정부에 대한 불평들을 늘어놓기 바빴을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같은 장면만 반복되어지는 티비 보도매체를 믿지 못하고, SNS에서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아수라장이 된 현장의 모습을 보고 들으면서 이를 퍼 나르기 바빴다. 아마도 그 한 달여 시간은 온통 세월호 참사에 대한 뉴스들을 스크랩하고, 관련된 수많은 추모 공연들과 집회에 참석하기 바빴던 것 같다.

내가 그날을 그렇게 떠올리고 있을 때, 세월호 유족으로서 한 어머니는 딸의 마지막 전화와 시신 수습까지의 그날을 어렵게 증언한다. 나는 그 어머니가 돌아올 수 없는 딸을 여전히 바라고 기다리는 모습에 이 ''공연''이 의심되기 시작한다. 이렇게까지 다시 유족을 극장에 불러세워야 하는가. 나는 내 손목의 팔찌를 빼서 그 돌들을 빠르게 돌린다. 내 팔찌의 돌들을 굴리는 엄지가 좀 누그러져서야 조금이나마 <그날, 당신도 말할 수 있나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을 수 있게 된다. 나는 극장 안을 채운 이들의 얼굴을 잠시 둘러본다. ''그렇지.'' 이들은 이미 ''그날''을 공유하고 연대한 이들이었다. 여기 앉아있는 이유를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그래서 이 극장은 바로 ''기억''의 공유를 ''누구에게나''로 소모적인 확장을 하지 않고 여기 앉아 있는 ''우리끼리의 그날''로 좁히고 집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중국인 배우의 증언이 인상적이었다. 그녀가 말한 것처럼, ''다행이다''라는 말의 불편함을 새삼 느낀다. ''내가 아니라서'',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니라서''라는 ''전제''를 오늘까지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저 그 참사의 시공간을 객관화했을 뿐, 온전히 ''우리''로서 ''동일화''하지 못했기 때문에 여전히 ''세월호''가 저 바다에 가라앉아 있다. 그날의 ''트라우마''에 대한 회복을 결코 이 연극은 말하지 않는다. 이미 우리는 ''회복 불능''의 상태인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뒤에 남은 작품들은 내가 극장을 벗어나도 저 밑바닥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아챌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어제 극장을 채운 이들은 다시 그렇게 불편한 그 자리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동네풍경의 <별망엄마>는 그 극장의 무거운 공기를 어느 정도 누그러뜨리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결국 이 설화 스토리텔링 역시 가볍게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 ''기다림''을 여러 인물을 두어 부자연스럽게 엮기보다 ''엄마''의 독백이나 돌아오지 못한 ''아들''과의 대화체 정도로 연출하거나 ''굿''으로 씻김을 하는 편이 조금은 억지스러운 이야기를 더 잘 풀었을 것 같다. ''세월호''라는 무거운 주제로 우리가 침체될 것을 걱정하기보다 그 불편함을 오히려 세밀하게 다루고 직시함으로써 보다 큰 ''공감''과 ''동의''를 얻어냈으면 좋겠다. 그 장면들이 소박한 면이 없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극장에서 우연히 만난 ''애숙''이를 데리고, 극장 주변에 있는 밥집을 들러 대학로예술극장에 갔다. 그리고 이어 뮤지컬 <왕세자실종사건>을 본다. 큰 극장을 가득 채운 관객들을 보면서, 별로 재미있지 않은 드라마임에도 비천한 신분의 주인공들의 멜로 연출이 참신해서인지 그 ''이별''의 스토리에 감동하여 눈물을 찍는 소리가 크니, 세계 안과 밖이 온통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편의 눈물과 저편의 눈물은 ''상연''의 상황이 그렇게 상반될 수밖에 없는데, 그런데도 ''생이별''을 주는 그 세계의 불합리는 그대로 존속하고 있다는 것은 어찌도 이리 닮았단 말인가. 그저 저 드라마 멜로에 감동한 이들이 내가 먼저 다녀온 소극장에도 들러 ''그날''을 함께 돌아보았으면 하는 바람만 커지면서 그 고독하고 처연한 심정은 어찌 가실 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