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흥을 즐길 줄 아는, 용기있는 당신을 위하여>를 보고 인터미션 시간에 밖에 나와 미련없이 귀가 했다. 올해 산울림에서 고전열전을 재미있게 보고 산 채움 패키지 티켓이었으나, 오늘 공연은 도저히 관극이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었다. 이 작품을 보겠다고 퇴근시간에 눈치보며 뛰어내와 버스 두번을 갈아타고 뛰어온 자신이 너무도 처량해졌다. 속내를 좀 더 터보자면 오늘을 극장에 방문했던 기억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싶었다.

영화였다면 그냥 납득하고 넘어갔을 게다. 허나 문제는 이 게 관객과 한 공간에서 펼쳐지는 연극이라는 점이었다. 전혀 소화되지 않은 표현들, 다듬어지지 않은 감정선, 고개를 갸우뚱 거리게 만들던 씬의 전환. 산울림의 울퉁불퉁한 벽돌벽면을 무시한채 뿌려놓아 내용을 알 수 없었던 프로젝션 영상... 재즈의 ''즉흥''은 아무렇게나가 아니라 치밀한 계산 위에 펼쳐진 감정인데-''즉흥''에 열중하던 배우들에게는 참으로 미안하지만-어디에서 공감하고, 어디에서 감동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치밀하게 계산되었다기 보다는 그냥 흐릿한 무언가를 보여주려던 작품도 연출도 납득하기 힘들었다.

오늘 관극을 포기한 마지막 요인은 관객들에 있었다. 최근 몇번의 관극경험을 통해 산울림이 대학로 유명 극장들에 비해 산만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나 오늘은 그 정도가 정말 지나쳤다. 핸드폰을 당당히 켜서 인터넷을 검색하시던 어머님에, 대사의 전환보다 더 많이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던 연인, 내내 팔이 아프셨는 지 뒤에 앉은 이들의 관극엔 전혀 관심 없이 하늘로 두팔올려 기지개에 펴기에 바쁘시던 어르신과 옆 자리에 해설해 주기 바쁘신 어머님. 공연 도중에 늦게 들어와서 카톡 확인에 정신없던 여자분까지....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동안 ''그만하면 됐다''는 생각이 맴돌았다. 코흘리게 때부터 홍대라는 불모지에서 자리매김하고 있는 소중한 공간이나, 근래 들어 몇번의 방문을 통해 알게된 산울림 관극의 수준이 연극을 올리는 극장이라기 보다는 술자리에 배경음악 깔던 라이브 카페 같았다. 아쉽지만 이 공연을 계기로-산울림에 전해주고 돌려받지 못한 첫사랑 처럼, 아쉬움만 남긴채- 당분간 산울림로의 발길을 돌리려 한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 즉흥을 즐길 줄 아는, 용기있는 당신을 위하여" (부제:동물원에 가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 작:하인리히 뵐 연츨:신동일 출연:변민지, 한정현, 서병철, 정해연, 하연숙, 황위재, 이진한, 홍유진, 김채영, 유재훈, 이은정 제작:극단 창세(협력제작:공연연구소 탐구생활) 극장:산울림 소극장 별점:★★★☆☆ "즉흥을 즐길 줄 아는, 용기있는 당신을 위하여" - 작,연출:김지나 출연:전규일, 최선영, 김범석, 남승혜, 김재동, 이택우, 황재희 제작:이언시스튜디오 극장:산울림 소극장 별점:★★★☆☆) 매년 다른 주제를 가지고 젊은 예술가들의 거침없고 생동감 있는 단막을 공연하는 제2회 극페스티벌 채움 4주차 공연이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 원작은 독일의 대표적인 현대작가 하인리히 뵐의 소설이다. 마녀사냥식의 신문 기사에 의해 희생당한 어느 여인의 이야기다. 나름 추리물적인 요소가 있는데 긴장감이 없어서 아쉽다. 원작 소설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카타리나 역의 변민지 배우님의 감정을 잘 나타내어 주는 눈빛이 좋았다. "즉흥을 즐길 줄 아는, 용기있는 당신을 위하여" - 어느 가정의 저녁 식사 시간이다. 실제로 배우분들이 식사를 한다. 평범한 일상을 보여 주어서 언제 사건이 일어날지 기다리는데 예상외의 상황이 연츨된다. 그리고, 영상으로 마무리한다. 의외의 상황이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