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연극에 관심을 가졌을 때 내가 위로받고 있다고 느꼈다. 내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시대의 예술은 힘으로 사용되고 있다. 내가 예술가임을 증명하기 위해선 어떤한 자료와 증빙서류 등 무언가가 계속 필요하고 그 증명이 우리에겐 꼭 필요하다. 공연을 보고 집으로 오는 버스에서 한참을 생각했다. 나 또한 예술가이지만 스스로 예술가라 지칭하는 것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었으며 그 예술가라는 단어가 내 이름 옆에 꼭 붙어야하는지 사실 그러한 것들은 중요치 않다. 하지만 지금의 사회가 그렇다. 우리는 똑똑해야하며 그러면서 융통성있고 창의적이어야하며 센스있어야한다. 많은 조건들을 가져야만 우리가 무언가가 될 수 있음에 많은 고민들을 가지고 집으로 갔다.

너무도 강렬한 공연이었다. 작품의 힘이 그러했고 배우의 힘이 그러했다.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쌓인 고민의 흔적들이 역력했다. 얼마나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얼마나 많은 고민이 있었으면, 말들이 살아 가슴에 맺혔을까. 배우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더불어 가득 쌓인 생각들을 감정적으로 비치지 않게, 절제된 패턴과 행동으로 혹은 샤막을 이용해 거리를 둔 것에서 관객들은 민망함을 무릅쓰지 않고 작품에 더욱 깊숙이 침투할 수 있었다. ‘나’로 시작해 ‘그’로 흘러가는 내 모습을 무대 위에서 본 것도 같았다. 그렇게 울컥한 순간들이 있었다. 공연 시작 후 커튼콜의 자막이 나오고, 배우들이 무대를 가로질러야 할 때, 응당 나와야 했을 박수가 나오지 않았다. “혹시 배우들이 박수를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선입견의 또 다른 선입견이 작은 파장을 일으켰다.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야 할 것인가. 덤덤히 객석을 바라보는 배우들의 눈에서 나는 답을 보았다. 그리고 박수를 쳤다. 많은 시간 울컥했다. 하지만 눈물을 흘리지 않은 것은, 고마움과 자책을 쉬이 눈물로 정화해버리지 않을까 망설인 탓이다. 나와 같은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것이 새삼 큰 위로가 됐다. ‘나’로부터 도망쳐 ‘그’가 맞는 양 그를 쫓아 뛰어다닌 알고 있던 부끄러움이 가슴에 사무쳤다. 미래로 혹은 현재로 여겨지는 어떤 결말에서 어느덧 김춘수의 시는 연대의 노래가 되었다. 홀로 외롭게, 아니 이제 외롭지 않아. 우리였으면 좋겠다. 연출과 배우들이 동지가 된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연대 투쟁. 고맙습니다.

예술가가 되려고 예술인패스를 얻으려는 신인 예술가가 예술가가되고 인정받으려는 과정을 현실감각있게 연극적인 텍스트로 잘만들었네요 무엇보다 이 모든 극의 배우들이 실제로도 장애가 있는 배우들이란게 더 대단했습니다

처음에는 장애인 예술가의 이안기인가했는데 점차 예술가로 장애가지워져가는 연출이 좋았어요

<인정투쟁; 예술가 편>이라는 제목을 보고, 사실 극이 매우 추상적이고 엄숙할 거라고 추측했다. 하지만 가장 ''올드''해보이는 배우가 ''너무 올드하다''라는 대사를 반복하는 등 재미있는 요소가 많았다. 무엇보다 신체장애를 가진 배우들의 열연으로, ''투쟁''이라는 요소가 더 잘 드러나 좋았다.

이 작품은 예술가를 주제로 삼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인정받고자 하는 투쟁을 대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때로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기도 하고, 이미 소속되어 있기도 하다. 사회는 우리가 소속될 자격이 있는지 증명을 요구한다. 증명하지 않으면 인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내가 아무리 애써도 인정받기 힘들 때가 있다. 사회가 이미 짜놓은 틀이 너무 견고해서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틀을 고정해 놓을 필요가 없는 경우가 많은데도 말이다. ‘예술가라면 이런 활동을 증명해야 한다’는 말은 마치 ‘엄마라면 이래야 한다’, ‘여성이라면 이렇게 행동해야 한다’등의 틀을 읽어주는 목소리로 들렸다.

‘나’ 자체로 인정받을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현실이 그리 녹록치 않다. 정해진 틀에 몸을 억지로 끼워맞추다가 지쳐 주저앉는다. 때로는 ‘나’를 버리고 ‘너’를 택하거나, 이도 저도 안 되면 ‘그’가 되는 순간도 온다. 언제쯤 나의 존재를 나 혼자만의 힘으로 긍정할 수 있을까. 집단생활을 해야 하는 인간에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내 꿈을 좇으라는 말은 아름답지만, 참 실천하기 힘들다.

그래도 반드시 내가 잘못된 것이 아니고, 때로는 틀을 규정한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는 사실을 서서히 깨닫는다. 끊임없이 배우고 생각하고, 한 발자국씩 내딛어 변화를 꿈꿔보려 한다. 극은 막이 시작할 때마다 김춘수 시인의 시 ‘꽃’을 반복해서 읊어준다. 언젠가는 우리 모두가 각자의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이름으로 불리는 날이 오기를 희망한다. 그 때는 분명 인정을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지 않아도, 우리들은 서로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을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보는 내내 눈물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