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아니 그냥 현실 내가 네가 우리가 살고 있는

고기잡이를 나간 원양어선속 사람들은 한사회를 잘담아냈다 결국 배의항로는파국이었지만 지금 우리사회의항로는 똑바로가고있는지 묻고있는거같았다

일주일밖에 안남았어요! 후회하지마시고 꼭! 예매하셔서 보러가세요.

6.25 발발 70주년이 되는 해의 여름은 뜨거웠다. 기상청은 올해가 2018년도 보다 더 뜨거울 거라고 하더니 토요일의 서울 도심은 그 전조였다. 벌써 33도라니! 38선을 연상시키기에는 아직 5도가 부족하지만 휴전선 너머의 지도자는 대체 여동생 뒤에 숨어 무엇을 하는지, 세상은 조건 없는 무대이기에 특정한 공간으로 ‘연극’을 보러 가는 것 그 자체가 연극 같았다.

내 눈을 잡아끈 건 무려 21명이나 되는 등장인물이었다.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인건비가 많이 들었겠다.’였다. 그리고 대체 총예산이 얼마일까? 비밀은 금새 풀렸다. 지원을 받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순간 부러웠다. 어쨌거나 소극장에서는 공연 불가능한 작품이었다. 유니플렉스 2관은 나름 거대한 규모의 연극을 수용하기에 괜찮은 곳이었다. 우한폐렴을 코로나 19로 명명해야 직성이 풀리는 WHO의 지시(?)에 순응할 수 밖에 없는 바이러스 약자들과 함께 문진표를 작성하고 열체크를 하고 입장했다. 물론 마스크는 기본이었다. 이제는 패션소품이 되어버린 ‘가면’을 쓰고 안으로 들어가니 공연시간에 맞춰 제법 많은 사람이 자리를 꿰차고 앉았다. 등장인물보다 많은 관객수에 나는 안도했다. 그래도 적자라는데, 에이 이런 얘기는 그만 두자.

메마르지 않은 쾌적한 공간에서 어김없이 정시에 막이 올랐다.

2017년 제 38회 서울 연극제에서 ''놀라울 정도로 빠져드는 잘 짜여진 소극장 작품의 진보''라는 평을 받으며 ''작품상 대상'', ''희곡상'', ''연출상'', ''주연배우상''을 수상한 [고기잡이 배]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20년 올해의 레파토리 선정작으로 후원을 받아, 지난 2017년 공연에서 보여주지 못한 다른 모습의 새로운 연극으로 재탄생한다.

연출 기획 노트에 나오는 내용이다. 나는 2017년도 공연을 보지 못해서 직접적인 비교는 할 수가 없다. 객석을 채운 자들은 나름 연극에 일가견이 있는 분들 같았다. 침묵 속에서 박수를 치고 환호하면서도 정작 말은 아꼈다. 2시간 가까운 공연 내내 나를 사로잡은 건 ‘대사’였다. 무대를 점령한 21명은, 어부가 아니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철학자였다. 어부가 철학자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으나 그들의 목소리, 음색, 그리고 절규의 질감은 연출자의 강박적인 ‘생각의 무게’에 눌렸다. 그래서 무대가 어두웠는지도 모른다. KO로 마무리를 원하는 군중들한테는 가끔 잽을 날줄 줄 아는 복서가 멋지게 보인다.

3단으로 분리된 배의 단면은 이물과 고물 그리고 선수와 선미를 구별할 수 없었다. 계급과 권력을 상징하는 이 단차에서 유진 오닐의 『고래』에서와 같은 긴장감을 기대한 건 나의 시대착오적인 망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잠시 나를 스쳤다. 하지만 21명이 각각 활동하는 1번부터 9번까지의 방 이외에 갑자기 등장하는 ‘N번방’과 같은 뜬금포가 관객을 핥고 지나가는 것 보다는 오히려 양호하지 않을까? 연출과 극작이 분리되지 않은 동일한 존재에 의해 작품과 무대를 장악하려는 압도적인 시도는 과유불급으로 민낯을 드러내는데 애석하게도 그것이 ‘대사’라는 점에서 관객들을 일순 동요하게 만드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이런 과잉이 연출의 직무유기라고 한다면 그것은 분명 반성을 필요로 한다. 논란도 순수할 때 호응을 얻는 법이다.

망망대해에서 표류하는 배에서 벌어지는 생존을 둘러싼 갈등과 대립은 그 구성원이 한국인이건 조선족이건 간에 긴장감과 절박감의 원초적 개연성이 부족한 것에서부터 한 수 접고 들어간다. 연극의 초점은 참치잡이 원양어선인 광현호, 일명 페스카마의 선상 반란 팩트를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포커스가 가해자들의 ‘인권’에 맞춰진 까닭이다. 왜 살인을 개인적인 사유의 교집합을 끌어내 정당화 하는가? 그래서 ‘N번방’과 같은 뜬금포가 작렬했는지도 모르는 일. 만일 이 연극을 피해자인 한국인 어부의 가족들이 본다면 공감할 수 있을까? 연극이 다큐멘터리는 아니지만 변호인의 리포트도 아니다. 이제는 이방인들이 원주민을 가르치는 세상이다. 그 상상만으로도 실외보다 머리가 더 뜨거워진다.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다는 뜻의 이름 페스카마, 연극은 말미에 이르러 21명의 독백 릴레이를 전개한다. 조선족 어부 한 명이 각자에게 꽃 한송이를 나눠주는 것으로 비극적 죽음과 어설픈 화해를 시도한 이 액션은 극작가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충돌을 수습하는 교리문답처럼 다가왔다. 이 기시감을 강화하는 존재가 있으니, 바로 검은 옷을 입은 ‘유령’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상당한 감수성과 유희를 뛰어넘는 화술에도 불구하고 묵직한 스토리의 부재 때문에 단발성 히트로 관객의 심장과 머리를 하나로 꿰뚫기에는 턱이 높았다.

왜?

어부를 연상할 수 없는 옷차림, 고립감을 느낄 수 없는 경계가 모호한 공간, 그리고 생명의 공간인 바다의 리얼리티 부재. 대양에서 거대한 유조선조차 두려워한다는 삼각파도 못지 않은 이 세 가지가, 그렇다고 꼭 패착의 요인은 아니다. 이건 눈 먼 자의 넋두리이기 때문이다.

초연 이후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변화가 일어난 관념을 연출가가 다시 손보면서 무대에 올린 이 작품이 눈길을 끈 외적인 요소는 당시 사건을 변호한 사람이 문재인 대통령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슬그머니 2020 한국문화예술위윈회 올해의 레파토리 선정작품과의 연관성을 의무적으로 그려보게 한다. 어느 정권이던 간에 이 패턴은 이미 익숙하다. 아닌 척 하지 말자. 세상이 참, 그렇다.

3년 후, 이 연극이 다시 무대에 오른다면 그때는 정예화 된 소수의 배우에 의해서 고백이건 독백이건 간에 날 것들의 절규가 메아리쳤으면 좋겠다. 그리고 만선을 꿈꾸는 원양어선 저장고에 참치가 가득찰 것처럼 진성 관객들로 객석이 가득 찼으면 좋겠다. 언제나 그렇듯이 관점을 떠나 장단점과 상관 없이 열연을 펼친 배우와 혼신의 힘을 다해 작품을 무대에 올린 스태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아직 못 보신 분들을 위해서 강력 추천한다. 세상은 아름다운 법이기에 누구의 기록이건 역사의 그림자에는 진실이 모여드는 법이니까.

공연을 보면서 이것이 실제 있었던 일을 모티브로 했다는것이 놀라웠고, 이런 비극적인 일에 대해 무관심했던 나 자신을 돌이켜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