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제법 추워진 2011년의 마지막 달에 KBS홀에서 ''KBS 국악관현악단 제201회 정기연주회‘가 열렸다. 나는 송년의 밤을 KBS 송년 음악회를 보며 보내기로 했다.
연주회의 처음은 국악 관현악 ‘비상’이라는 곡으로 시작했다. 국악과 관현악이 함께 어우러져 새로운 느낌이 들었는데 곡목해설을 보니 지휘자인 이준호 씨가 작곡한 곡이었다. ‘비상’은 밝고 경쾌한 곡으로 자유로운 느낌이 들었다. 더 길게 듣고 싶었는데 개인적인 예상보다 곡이 빨리 끝나 아쉬움이 있었다.
다음 연주는 민요였다. 연주자는 이호연 명창과 소리꾼 박정미 씨였는데 스승과 제자의 느낌이 들었다. 첫 곡은 ‘태평가’였다. 그런데 수업 시간에 ‘태평가’는 남녀가 같이 부르는 곡으로 알고 있었는데 여성 두 분이 같이 불렀다. 내가 잘못 알고 있던 것일까?
자세히 찾아보니 ‘태평가’에는 가곡 태평가가 있고 민요 태평가가 있었다. 내가 연주회에서 들은 것은 민요 태평가로 ‘짜증은 내어서 무엇 하나, 성화는 내어서 무엇 하나, 속상한 일도 하도 많으니, 놀기도 하면서 살아가세. 니나노 닐리야 닐니리야, 니나노……’의 가사로 이루어진 곡이었다. 경기민요 태평가는 듣고 있어도 저절로 흥에 겨운 신나는 민요였다. 연주자 두 분 다 잘 불렀지만 젊은 연주자 박정미 씨의 노래는 어쩐지 음을 꾸민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호연 씨의 노래가 더 시원하고 자연스러웠다.
민요 공연의 두 번째 곡은 ‘창부타령’으로 연주회 간 날 수업에서 바로 ‘창부타령’을 배웠기 때문에 새삼 신기하고 반가운 곡이었다. ‘창부타령’은 서울을 중심으로 한 경기도 지방에서 많이 불리던 민요이다. 수업 시간에 경기민요를 창부타령조라고 배웠는데 이 ‘창부타령’이 경기민요의 대표곡이라는 걸 느꼈다. ‘창부’는 무당의 남편이면서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을 칭하며 ‘창부타령’은 본래 창부 굿에서 불리던 무가가 후에 경기민요 소리꾼들에 의해 통속 민요로 변한 것이라고 한다.
민요의 마지막 곡은 ‘자진뱃노래’였다. ‘어야디야 어기야디야 어기야디야 어기야 어기어차 뱃놀이 가잔다’라는 가사가 인상 깊었던 곡으로 이 곡을 들을 때 주변 어른들께서 이 곡을 함께 부르기도 하셨다. 나도 ‘뱃놀이 가~잔다.’부분을 부르기도 하였다.
연주회에서 공연된 민요는 세 곡 다 경기민요였는데 그래서 그런지 세 곡이 모두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연주자들의 민요를 듣다보니 우리나라 민요가 트로트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어르신들이 트로트를 좋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공연은 설장구 협주곡 ‘소나기’였다. 설장구가 무슨 뜻인지 몰라서 찾아보니 설장구란 원래 농악에서 장구잽이의 우두머리를 뜻하였으나, 농악을 치는 판 굿 에서 우두머리인 설장구가 나와 솜씨를 보이는 놀이를 한다 하여 설장구놀이라 하던 것을 줄여서 이렇게 부르고 있는 것이다. 이번 공연의 설장구는 김덕수 씨가 연주했는데 사물놀이로 워낙 유명한 분이기에 기대를 하고 ‘소나기’ 공연을 보았다. 가장 기억나는 것은 국악관현악단이 연주를 멈추고 설장구의 독주가 이어진 부분이었다. 김덕수 연주자는 어떠한 제약을 두지 않고 장단을 자유자재로 구사하였는데 그 리듬에 따라 관객들의 호흡도 달라졌다. 장구의 박자는 비트박스와 같았고 장구 소리가 커질 땐 심장도 쿵쾅대었다.
뒤이어서는 판소리 공연이 이어졌다. ‘심청가 중 황성 가는 대목’을 안숙선 명창이 공연하였다. 안숙선 명창은 자그마한 체구였지만 막상 공연을 시작하니 목소리가 쩌렁쩌렁 하셨다. 앞부분을 볼 때는 정말 옛날 얘기를 듣는 것처럼 빠져들었다. ‘심청가 중 황성 가는 대목’은 심청가의 거의 끝머리에 들어있는 대목으로 가장 해학적이고 유쾌한 대목이라고 한다. 실제로 뺑덕이네가 도망가서 심봉사가 뺑덕 어멈을 찾는 장면은 사람들의 웃음을 유발하였다.
판소리 공연을 들으며 한 대목도 이렇게 긴 데 심청가 한 공연을 다 하면 얼마나 힘들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하는 사람이 대목에 나타나는 노래, 말 들을 다 외우고 있다는 것도 놀라웠다. 판소리 공연은 이야기와 노래가 적절하게 어우러진 공연이었다.
다음은 KBS 국악관현악단의 반주에 맞추어 장사익 씨가 노래를 불렀다. 처음 곡은 ‘황혼길’이었는데 장사익 씨의 애절하고 강직한 목소리가 돋보이는 곡이었다. 이런 곡을 전에 들어본 적이 없어 생소했는데 노래를 정말 잘하는 사람들이 불러야 할 것 같은 노래였다. 이어진 ‘아버지’는 가사와 함께 멜로디가 아버지를 생각나게 하는 노래였다. 관현악단의 반주가 곡을 더욱 풍성하게 하였다. ‘국밥집에서’는 장사익 씨가 부른 노래들 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던 노래였다. 잔잔한 멜로디도 아름다웠는데 특히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부분이 좋았다. 가사부터 음악이 모두 마음에 들어 집에서도 계속 들었던 노래다. ‘찔레꽃’은 노래라기보다 시와 가깝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시에 음을 덧붙인 것 같은 곡이었다.
공연 후에 장사익 씨는 수줍은 듯 웃었는데 할아버지임에도 매우 해맑고 천진난만해 보였다. 장사익 씨는 예전엔 자신도 우리들처럼 객석에서 공연을 관람하던 사람이었는데, 노래가 너무 하고 싶어 뒤늦게 꿈을 찾았다고 한다. 꿈을 찾은 지금 매우 행복하다며 우리보고도 꿈을 가지라고 하셨다.
마지막 공연은 사물놀이 협주곡 ‘길’이었다. 김덕수패 사물놀이단과 kbs국악관현악단이 협주한 ‘길’은 경쾌하고 흥겨운 곡이었다. 깽과리, 북, 징 그리고 장구가 서로 주고받으며 조화를 이룬 연주가 재밌었던 공연이었다.
앙코르 공연은 ‘강강술래’였다. 강강술래 역시 당일 수업시간에 배운 곡이었는데, 연주회에 늦게 간 것이 굉장히 만족스러워진 순간이었다. 판소리하시는 분, 민요하시는 분, 장구 치시는 분, 노래하시는 분, 지휘자 등 전 연주자들이 강강술래를 불렀는데 나도 같이 따라 불렀다.
국악 공연은 연주자와 관객이 함께하는 점이 참 마음에 든다. 중간 중간에 우리가 참여하는 곳도 있고 박수도 서양 공연에 비해 자유롭게 칠 수 있는 분위기가 좋았다. 또한 국악 공연 전체적으로 노래의 가사가 인상적이었다. 국악과 관현악이 만나는 국악 관현악단의 연주회는 처음 보는 공연이었는데 나의 기대보다 훨씬 재밌던 공연이었다. 앞으로도 국악 음악을 자주 듣게 될 것 같다.
공연을 보며 수업 시간에 배웠던 노래들을 직접 들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이론뿐만이 아니라 실제로 공연을 보며 즐겨보는 것이 우리들에게 참 도움이 된다는 것을 느꼈다.

재미있고 감동적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