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10년 만에 대학로에서 본 연극.
추운 날씨였지만 모처럼 나간 대학로를 한바퀴 돌면서 지난 날을 잠시 되돌아보기도 ^^,

대학 때 자주 접하고 직접 무대에 올렸던 이 강백 님의 작품이라서 반가웠고
예전 공연 후기를 접하고 많이 아쉬움이 남았던 작품이라서 설레였다.

꽃말이 하나밖에 없다는 얘기와는 달리,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이런저런 얘기가 많이 있군요.
아픈사랑, 열정, 치정, 방패, 헛된장식...

언젠가는 맨드라미를 직접 볼 수 있었으면 좋겠군요.

소극장이니까 감수해야겠지만 다리를 꼬깃꼬깃 접고 관람하기엔 많은 인내가 필요했고,
짓눌린 엉덩이의 비명이 아니었다면 좀 더 편하게 관람할 수 있었을 듯 싶네요.

전체적으로 좋았습니다.
배우분들의 연기도 좋았구요...
오래간만에 본 괜찮은 연극이었습니다..

맨드라미꽃는 예전에 내가 보려고 했더니, 친구가 나는 보지말라고 했던 연극입니다.
이 놈의 주책스러운 눈물샘 덕에 울다가 쓰러질 지 모른다는 게 제 친구의 만류 이유였지요.
하지만, 이번엔 놓치고 싶지 않아서, 맘 굳게 먹고 보러 갔답니다.

공연장은 대부분은 지하에 있다고 생각 했는데, 블랙박스씨어터는 건물 맨 꼭대기 층에 있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 극장주가 건물주 아닐까...하는 엉뚱 상상도 했었다는 ^^;


꽃이 아닌 것 같기는 한데 또 꽃이기도 한 맨드라미꽃. 누구에게는 꽃이기도 누구에게는 꽃이 아니기도 한 그것은 각자가 사랑에 대한 표현 아닌가 생각 했습니다.
그런 사랑의 다양한 모습을 맨드라미꽃으로 표현하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1) 미스박과 장팔의 사랑 : 사랑을 사랑이라 인식하지 못하는 ....

사랑이라고 하는 건 서로 밀고 당기기를 잘 해야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미스박과 장팔의 경우에는 장팔은 계속 당기기만 하고 미스박은 계속 밀기만 합니다. 보고 있으면 답답 하리 만큼 무작정 들이대고 당기기만 하는 장팔.
또 그런 장팔에게 호감은 있으나, 이것 저것 부담 스럽고 귀찮아서 특별한 이유 없이 계속 밀어내기만 하는 미스박.
당기면 딸려가기도 하고 밀면 밀려나기도 하면서 그렇게 알콩 달콩해야 사랑이라는 게 무르 익을 수 있는 건데, 앞으로도 그렇게 평행선에서 계속 아웅다웅 거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미스박은 마당에 핀 꽃을 맨드라미가 아닌 해바라기로 봤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장팔은 마당에 핀 꽃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그 둘은 서로에 대한 사랑을 사랑이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2) 정민의 사랑 : 스스로를 고달프게 만드는 ....

자신의 사랑을 반대하는 아버지에 대한 반항으로 이 하숙집에서 칩거 생활을 하는 정민.
그의 사랑은 고뇌와 번민입니다.
자신의 사랑을 챙취하기 위해서 무언가와 치열하게 싸우는 것이 아니라,
골방에 쳐박혀 머리싸매고 있으면서 스스로를 고달프게 하는 그저 생각하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결국 그는 자신의 사랑에 대한 해결책으로 자살을 선택 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사랑은 단지 고뇌와 번민 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렇게 고달프기만 한 게 사랑이 아닌 게지요. 어느 순간 행동으로 보여 줄 수 있는 사랑. 그것이 진정한 사랑인 걸...
그렇게 표현하는 것 만이 사랑이라 칭 할 수 있다는 걸 정민은 미쳐 깨닫지 못하고 죽어갑니다.
그래서 자기를 사랑한다 고백하는 주혜의 품에서 자살 할 수 있는 게지요.
제 사랑 밖에 안보고 그 안에서 너무나 고달팠으니까요.....

(3) 주혜의 사랑 : 그저 있는 것 만으로도 ....
어린 시절 부터 주혜는 따뜻한 애정과 관심속에서 자라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인지, 그녀는 사랑을 모릅니다.
맨드라미꽃을 대하는 그녀의 모습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실은 뭐 그리 새삼스러울 게 없는 맨드라미꽃의 존재를 아주 신기해 합니다.
그저 있어 주는 것 만으로도, 존재 자체만으로,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만으로 혼자서 충분히 만족하는 겝니다.
"나 그 남자 사랑하나봐"
정민의 상황을 다 알고 있는 주혜가 그 대사를 할 때, 그렇게 행복한 표정을 지을 수 있다고 하는 건,결국 주혜는 그저 사랑하고 있는 감정 자체를 즐기는 것이라 생각 됩니다.
그런 주혜의 사랑은 결국 짝사랑의 아픔은 없고, 짝사랑의 기쁨만 있는 겁니다.
그래서 제 품에서 죽어가는 정민을 보고 소리한번 지르지 않았던 거겠지요.....

(4) 할머니의 사랑 : 투박하기만 한....
담배 핀다고 구박을 하면서도 손녀에게 담배를 달래는 할머니,
어떤 방식으로든 돈을 벌어오라고 하는 할머니,
또 그 돈을 가지고 놀음에 탕진하는 한심한 할머니....
그런 그녀에게 사랑 이란 게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녀의 사랑은 그냥 생활 자체 인 거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굳이 사랑이라 명하지 않고, 그냥 먹고 살면서 서로 챙겨주고 적당이 보둠어 주는 그런 일반적인 우리네 생활.
그 자체가 그냥 사랑아니 었나 싶습니다. 그래서 할머니는 굳이 맨드라미꽃을 유심히 보지도, 아니 보이지도 않았던 게 아닐까요.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챙겨 주는 모습을 보고선 고달픈 인생을 살아온 할머니를 조금은 이해 할 수 있었던 거 같습니다.


(5) 영민의 사랑 : 가질 수 있는 ...

영민은 정민과 아버지 사이의 메신저 역할을 해 줍니다.
아버지에게 영악스럽게 덤비지 못하는 형에 대해 못마땅해 하며, 둘이 도망가서 살 것을 종용하기도 합니다.
형의 하숙집을 드나 들면서 주혜에게 억지 키스를 하고 돈으로 그 값을 지불하고 갑니다.
형의 죽었다는 거짓말을 너무도 천역덕스럽게 전하기도 합니다.
영민의 사랑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단순하고 물질적이고 소유할 수 있는 겁니다.
내가 그 값을 지불하면 가지는 사랑. 감정이라고 함은 대부분 머무는 것일 진데,
소유하는 사랑은 머물지 않습니다. 댓가를 지불하면 그 댓가 만큼만 움직이면 되는 거니까...
그래서 그의 사랑은 쉽고, 애틋하지 않은가 봅니다.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랑의 모습이 있습니다.
맨드라미꽃에도 참 다양한 모습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제대로된 사랑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영 희망이 없어 보이진 않았습니다.
맨드라미꽃이 자라듯,
그들이 그랬듯이,
그렇게 우리 사랑도 아파하면서 조금씩 자라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아픈만큼, 자라렴......

갑자기 내가 가진 사랑의 빛깔은 어떤걸까 참 궁금해졌습니다.
내가 가진 맨드라미꽃을 한번 보고 싶어졌습니다.


아픈 만큼, 자라렴.....

연극을 보고 나서 마음 속에 강한 무엇인가가 남는 좋은 연극입니다

맨드라미꽃이라는 연극은 사실 무엇보다 포스터가 눈길을 끌었다. 아픈만큼 자라렴이라는 말과 담배를 물은 눈가에 눈물을 머금고 씁쓸한 미소를 띄고있는 여자.. 하나의 사진에서 정말 만감이 교차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게된 공연은 정말 왈칵하는 격정적인 감정 변화나, 배꼽빠지게 웃어버릴 만한 장면은 없었지만 공연을 보는 중에는 숨쉬는 것까지 잊어가며 집중하게 되었고, 공연이 끝난 후에도 묘하게 깊은 여운이 남았다.
배우들의 연기는 자연스럽게 공연에 녹아들어 있어 정말 그들의 눈빛하나로도 정말 많은 감정을 느낄 수 있었고... 도그빌처럼 방의 칸을 나누어서 음향효과와 연기로 문들, 공간의 존재를 느낄 수 있게 해준 것도 매우 인상적이었고.. 그 효과는 효과에서 머물지 않고 맨드라미꽃이라는 연극을 새로운 경지로 느껴지게 해주었다. 그리고 그런 연극의 효과를 어색하지않고 너무나도 멋진 타이밍과 자연스러움으로 소화해내어 정말 놀라웠다. 배우들과 스탭들의 엄청난 노력이 바탕이 되었을 것이고, 그 노력은 일단 나에게는 정말 너무나도 멋지게 다가왔다.
공연 내내 그들의 동작하나하나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고.. 연극의 암전은 적절한 타이밍으로 나에게 잠시 휴식을 주었다. 그 중간중간 분명히 웃기는 장면들이 있었고, 웃겼지만 극 전반에 깔려있는 무거움이 그로 인한 웃음을 입안에 머금고 있게 했다. 그리고 그렇게 맴도는 웃음들이 이 연극을 조금 특별하게 느끼게 만들었다. 또 앞에 말한 묘한 느낌은 결말에서도 느껴졌다. 눈물 질질 짤만큼 슬픈 결말일 수도 있는 데 그렇게 표현을 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해피엔딩으로 볼 수는 없었지만.. 그러한 애매함과 여운들이 이 연극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가슴 한켠에 답답하면서 쓰리기도 하면서 시원하기도 하면서 아련한 느낌의 감정들을 안고 나오게 되는 연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