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음 섞인 기괴한 전주곡과 붉은 조명에 이어
침대 위 야한 포즈의 여성이 읊는 단테의 신곡 ''''지옥편'''' 한 구절로 시작한다.

“벗어날 희망을 품기도 했다.
그러나 또 다른 광경에 두려움은 떠나지 않았으니,
사자 한 마리가 앞에 나타난 것이다.

머리를 바짝 쳐들고 허기져 광폭해진 입을 벌리고
나를 덮칠 것 같았으니,
그놈을 둘러싼 공기마저 떠는 듯했다.”

집 주인 시인 프랭키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피아노를 연주하듯, 격렬한 사랑을 나누듯 키보드를 두드린다. 친구 대신 파출부로 온 벨마는 매력적인 젊은 작가 앞에서 쉼 없이 참새처럼 주절주절 떠든다. 학창시절 별명 ‘벨마 스패로우’를 입증이라도 하듯 수다를 멈추지 않는다. 뉴욕주 브롱크스에서 극장 안내원이자 가사 도우미로 일하는 26살 여성이다. 일을 마치고 서둘러 귀가할 것만 같던 벨마가 다시 프랭키의 방으로 돌아온 순간부터 청춘남녀 둘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흐른다. 이미 밤 11시가 넘었고, 내일은 ‘발렌타인 데이’다. 프랭키는 자신의 공간에 잠시 체류하게 된 여자의 몸을 힐끔힐끔 쳐다보며 평소처럼 혼자 마티니를 병째 들이킨다. 벌컥벌컥 마신 마티니로 잔뜩 취기와 욕정이 달아오른 프랭키는 벨마를 향해 작업의 정석(?)을 펼친다. 에릭 클랩튼의 ‘원더풀 투나잇’에 맞춰 섹시하게 춤을 추고, “당신 귀에 속삭이고 싶어. 널 위로해 줄께.” 달콤한 구애로 여심을 흔든다. 하지만, 그의 집요한 유혹에도 벨마는 엉뚱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손길을 뿌리친다. 평소 자신을 구박해온 엄마 이야기를 후렴처럼 꺼낼 때면 왠지 모를 불안에 사로잡혀 온몸을 떤다. 몇 차례 거부당한 프랭키가 참다못해 벨마를 침대 위에서 덮치려는 순간, 예상치 못한 상황이 펼쳐진다.

깊은 상처가 있는 두 사람 모두 이야기를 나눌 상대가 필요했다. 하지만 같은 공간 속에서 남녀는 한 시간 넘게 평행선을 달렸다. 둘 다 2월생이고, 같은 음악을 좋아하게 됐고, 리듬에 맞춰 댄스를 추며 호흡도 맞췄지만 마음을 열긴 쉽지 않았다. 1년 전 헤어진 프랭키의 전 여친 캐리가 남친의 경제적 상황을 도외시하고 화려하고 멋진 결혼식에만 집착했듯이, 프랭키도 극한 상황에 처한 벨마의 갈망을 외면하고 남성의 욕구만을 채우기에 급급했다. 그런 프랭키가 홀로 어둠 속에서 키보드가 아닌 펜으로 시를 쓴다. 창공이 아닌 땅 위에서 죽어가는 새에 관한 시다. 벨마를 위한 발렌타인 카드다. 그토록 좁혀지지 않았던 관계는 고통의 교감을 통해 비로소 좁혀지고 소통하게 된다.

세속의 욕망에 사로잡혀 하루하루 살아가기에 바쁜 우리는 언제 진정으로 누군가와 소통할 수 있을까? 푸른 창공을 가르며 힘차게 날개짓 해야 할 수많은 새들이 이 땅 위에서 죽어가고 있다. 참새의 지저귐을 처절한 신음으로 들을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 관객에게 너무 많은 짐을 넘긴 극 후반부 연출의 모호함이 아쉽지만 사내의 완력과 시인의 섬세한 감성 사이에서 절묘하게 완급을 조절한 조남융과 히스테리와 죄의식에 사로잡힌 불안 심리를 사실감 있게 표현한 이해선의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 ~ 2017 6월 4일(일) 15시 대학로 요정

박가은-안요찬 배우님 공연, 저저번주에 보고왔어요 :) 객석에 앉았는데 조금 추웠어요ㅋㅋ 이제 날이 좀 더워져서 지금은 괜찮을 수 있겠네요. 시놉시스 보고 기대를했던게 많은 말들속에서 어떻게 불통을 표현을 할까? 였어요. 그리고 기대했던만큼, 두 배역의 관계가 흥미진진했구요. 불안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 많은 말속에서 정작 자신의 솔직한 얘기는 없고 보여지는 것에만 혹은 탐욕적이고 자극적인 것에만 관심있는 현대상이였어요. 많이 생각하게 하는 극이였고, 너무 길지않아서 깔끔했습니다. 다만, 남자분의 연기가 너무 부담스러워서 힘들었어요. 긴장된 상태를 표현하시려 했던건지는 몰라도 과장된 톤의 대사와 표정들이 집중을 깨곤 했구요. 그로인해, 흥미진진하고 다양할수있는 장면들이 너무 단순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둘의 관계가 아슬아슬해서 조마조마 하며 본것이아니라, 그냥 너무 격앙되어있는 프랭키때문에 단순한 긴장감만 느껴버려서... 많이 아쉬웠습니다. 다음에 또 볼 생각인데, 그때는 좀 다른모습을 기대해요!